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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두 단어 28화

인공지능과 미사일

[서울특별시]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by 바질

2023년 5월 31일, 오늘 아침은 평소와 달랐다.


국가적인 재난이 있을 때 울리는 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서울에 지진이 났나, 생각하며 더듬더듬 스마트폰을 찾았다. 시간은 6시 41분이었다.


[서울특별시]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산사태인지, 지진인지, 무엇으로부터 대피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방문 밖에서는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거실로 가보니 부모님께서 전쟁이 났나 보다, 하시며 TV를 보고 계셨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북한이 어디로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서울이래? 멍하니 속보를 보면서 우리가 휴전 국가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순간 '아, 금을 사둘걸. 현금화를 해둘걸. 달러를 살걸.'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했다. 위급할 때를 상상만 하고 전혀 대비를 해두지 않았구나. 아뿔싸. 우크라이나 전쟁은 안타깝게 생각하며 매달 후원도 하는데, 정작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이며 잠시 전쟁을 쉬는 중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무슨 일이 났구나. 그런데 국가에서 알리는 알람에서는 우리가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말이 없었다. 그저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암시 뿐이었다.


지금 집 근처 지하철로 뛰어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집에서 재난을 대비할 식료품과 생수를 많이 구비해놔야 할까. 대피할 수 있도록 필수적인 짐을 챙겨놔야 할까. 동시다발적으로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오히려 멍해졌다. 그렇게 20분간 우리 가족은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일을 했다. 아버지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출근 준비를 하시면서도 조심해, 조심해, 말을 하셨다. 나는 미리 샤워를 하고 언제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켰다. 네이버는 먹통이었다.


트위터를 켰다. 이미 추천 검색어에 '경계경보'가 떴다. 최신 순으로 콘텐츠를 필터링하니 웅성거리는 시민들과 그들이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정보들을 볼 수 있었다. 곧이어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고, [행정안전부] 6:41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 이라는 문자가 왔다.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전 국민 미라클 모닝 시키기, 문자 발송 시점도 9분이나 늦었는데 이미 저승행이다, 북한에서 미리 고지한 미사일 발사가 아니냐, 오키나와면 한국도 아닌데, 서울 아닌 사람들은 죽으라는 거냐, 등등.



살다 보면 참 다양한 일을 겪을 수 있구나, 싶다. 사실 나는 전쟁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크게 안도했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지만. 익숙한 얼굴들을 보니 오늘도 평소와 같은 하루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기분이 좋았다. 평범한 하루는 얼마나 쉽게 부스러지는지. 옆자리에 앉은 동료와 상사가 평소보다 애틋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급 상황에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들의 대응이 이렇게 미흡해도 괜찮은가. 한국은 각자도생의 사회인가, 개인의 안전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가. 정보도 스스로 찾아야 하는가.


Better Safe than Sorry. 경계경보와 경계경보 해제 알람이 울린 후 변명이랍시고 이런 이야기도 하더라. 뭐 그리 흥분하냐고? 일부는 맞는 말이다. 다만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들이 나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다 느낄 때,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챙겨두는 것도 Better Safe than Sorry로 생각할 수 있겠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집에 생수를 잔뜩 구비해 놓을 것이라 하던데, 위급 상황에 쓸만한 물건들과 약간의 현금을 미리 챙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 것. 나 자신은 나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 것.


어찌 보면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더 챙겨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북한은 인공위성을 쏜다고 낙하지점도 사전에 언급을 했는데,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던 서울시 직원이 보낸 경계경보. 많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경우 이런 어처구니없는 누락 실수를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사전에 정리된 매뉴얼대로 어떤 상황인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당장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지를 해주고, 시민이 질서 정연하게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 6시 40분에 받은 문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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