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사태
1997년 경,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한보 그룹이 뭐죠?'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회사는 대치역 목제 의자를 만들던 회사는 아니다. 대치역에 가면 ‘한보 그룹’이라고 적힌 목제 의자가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과거 건설과 철강 등 굵직한 사업을 ‘부실하게’ 운영하던 회사였다. 짧은 기간, 성공한 기업인들을 찬양하던 언론에서도 완전히 태세가 바뀌었다. 재계 14위였던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에 대해 '로비왕, 뇌물을 믿고 점을 믿었다'는 둥 마치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공개한다는 듯... 준비된 비밀들을 빠르게 쏟아냈다.
그 회사만 문제였을까? 그 당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뉴스로 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학교 경영학 수업에서는 이런 구조조정을 ‘기업 생태계의 정화 작용’처럼 소개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만 조금 큰 형아였던 나는 이런 경제 위기를 알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집에 돌아온 오후, ‘아빠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엄마가 두 손으로 받고 있었다. 그 당시엔 가족과 회사 직원들도 친분이 있던 것 같지만, 그렇다고 회사 전화를 엄마가 받는 일이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 알고 보니... 평소와 같이 회사로 출근하는 줄 알았던 아빠가 사실은 며칠 전 ‘명예퇴직’을 당한 것이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아빠는 다양한 이유로 출근과 동일한 시간에 양복을 입고 나가셨을 것 같다. 아마도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사태를 파악하고 수습하기 위해, 동일하게 퇴직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아니면 우리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힘들어서... 그렇게 평소처럼 자체(무급) 출근을 하셨다. 이렇게 성실하신 아빠는 성실함으로 대기업 임원자리에 올라있었다. 그때가 이미 5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을 때이니, 많은 것을 책임지라고 했을 것 같다. 아니 스스로 책임감이 유독 강했던 것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물러나야 후배 몇 명이 회사를 더 다닐 수 있다고 종종 말하셨던걸 보면 말이다. 문제가 생기고 책임질 일이 생기면 리더인 자신의 잘못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반복적으로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IMF라는 풍파에서 세월을 배운 후배들은 무슨 더러운 일이 있어도 회사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걸 배운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제 그들을 욕하기 힘들어진다.
'일을 안 하시는 것도 한두 달이지!' 나는 아빠가 몇 십 년 동안 일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강하게 항의했다.
“아빠, 이제 나가서 일하면 안 돼요?”
이후엔 내 나름의 장문 편지를 써서 항의한 적도 있는 것 같다. 평소 글도 잘 안 쓰는데, 그때는 어떻게 한 장을 다 채워서 글을 적었는지 모르겠다. 시작은 아빠를 위한다는 내용이었지만, 결국은 내가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왜 이리 자랑하는 게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듣기로는 그 당시 아빠에게 몇 군데 직업 CEO 제의가 있어서 나갔지만, 이전 직장보다 작은 규모와 좋지 않은 분위기 등으로 짧게 다니시다가 그만뒀다고 한다. IMF와 동시에 모시고 살던 친할머니 마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 이 시기가 아빠에게 어떤 해였는지 나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아니 그땐 그걸 이해할 만한 나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거대한 국가 부도 사태를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민 다수가 공동의 아픔과 충격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히 나라가 망했다고 하는데... 겉으로는 모두 조용했다. 대신 아이들은 더 이상 친구를 집에 부르지 않았다. 우리가 같이 라면도 먹고, 숙제도 하던 그 자유롭던 공간에서 자유를 뺏었긴 것이다. 뭔가 크고 어두운 물체가 집을 차지한 것 같은데 아무도 그게 무엇인지, 왜 이전처럼 친구를 집에 부를 수 없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도 이것에 대해 “왜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같은 반 친구 중 하나는 삼성에서 만든 자동차 ‘SM5’를 사야만 아빠가 회사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친구는 조숙한 친구라 이 사건을 심각하게 얘기했지만, 새로 바뀐 차에 대한 자랑은 빼놓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에서 어울려 지내던 상우, 재영, 종진이는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아빠가 출근해 있을 시간인데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거나, 동네 산책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서 먼저 아빠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들 일찍부터 조심하게 됐고, 어른의 처세술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그런 고마운 친구들에게 조차 조심하고자 웅크린 고슴도치가 되어 나만 쳐다봤다. 그 당시 학교 선생님들은 무슨 공지를 받은 건지 우리를 모아놓고 말했다.
“지금 우리 나가라 어려움에 쳐해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어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이런 멘트는 역사 수업에 유용하게 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일은 여러분 부모님만의 잘못은 아니에요.”라는 말을 꼭 덧붙였다. 내 마음엔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이었지만 말이다.
선생님은 나와 내 친구들에게 이전보다 더 착하게 대해 주시는 것 같았다. 적어도 우리에게서 IMF가 잊혀지는 시기까지는...
반면에 내 눈에는 신축 아파트 친구들은 아무런 타격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그 친구들을 내 머릿속에서 다른 존재로 재생성했을지 모르겠다. 가끔씩 좋은 아파트에 놀러 가보면 공부하기 좋은 환경과 우리 아파트에 없는 첨단 시설이 있었다.(1990년대 기준이니 비교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사실 그 친구들이 아무 짓도 안 했지만, 나는 속으로 “우와, 너네 집 부자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속으로 만들어 냈던 격차는 아무래도 ’ 소비‘ 때문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게 모두 IMF와 아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전부터 아끼며 살았던 것은 동일한데 말이다.
사실 나의 삶엔 변한 게 별로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온 가족이 ’ 아끼는 소비 습관‘을 가졌기에 IMF로 특별히 적응해야 할 게 없어 보였다. 물가가 높아졌지만, 우린 어차피 많이 안 샀다. 아니 비싸면 안사버렸다. 이점은 우리 가족이 웬만한 상황이 와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어린 나이지만 드라마를 많이 봤다. 드라마에서 이런 경우엔 내가 당장 돈을 벌기 위해 껌을 팔고, 신문을 돌려야 할 것이라며 당장이라도 일터에 나갈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보통은 옥탑방으로 이사를 가거나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아야 할 텐데 우리 집에는 당장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엄마는 안심하라고 말해주었다. 아빠는 앞으로 먹고 살만큼 벌어놨으니 잠시 쉬신다고 했지만 난 믿지 않았다. 이런 짠돌이 아빠가 돈이 있었으면 벌써 내가 원하는 걸 다 사줬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왜 이건 없고 저건 싼걸 사주실까? 친구들한테 쪽팔린데!‘ 내가 계속 망상에 빠져있을 때 즘, 부모님께선 나를 삼촌이 계신 상해로 한 달간 여행을 다녀오게 했다.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닐 정도인데... 왜 나는 애써 우리 집이 힘들다고 생각했을까?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돈) 보다는 눈에 보이는 옷과 물건들, 겉으로 드러나는 집안의 살림살이들이 내 판단 기준이었기 때문이리라. 특히, 집안의 가장이 뭔가를 한다는 게 눈에 보이게 중요했지만, 그 가장이 집에서 한가로이 신문과 바둑을 보고 있었으니 나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졌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실망과 두려움은 내가 아빠를 그만큼 큰 존재로 여겼기 때문일지 모른다.
꿈꾸던 시대는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말을 맞았다. 아니 꿈꾸던 시대는 말 그대로 꿈처럼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진 것일 수 있다. 난 그 이후로 아빠를 내보낸 대기업조차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하게 됐다. 우리 세대 다수는 IMF 사태를 겪고, 그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거치며 그 시대 어른 들과는 다른 것을 꿈꾸는 세대가 돼버린 것 같다.
그 이후 나는 비교와 서열화 능력을 더 키우게 됐고, 나 자신을 숨기는 데에는 더욱 탁월한 능력을 갖게 됐다. 이런 능력과 함께 맞이한 송파에서의 1년 반 중학교 시절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만큼 내가 강남에서 겪을 일들이 너무나 비교 됐다. 이성관계였을까? 아니면 친구들과 주먹다짐이 있었을까? 궁금하면 조금 더 읽어주길 바란다. 그렇게 송파 이야기가 끝나면 이제 강남 이야기를 시작할 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