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안다. 내게 없는 것이 저친구에 있단 것을
내가 송파에서 살던 곳은 가운데 놀이터를 두고, 4개 동이 서로 마주하는 구조의 아파트였다. 어릴 적 나는 정말 그곳을 쉴세 없이 돌아다녔다. 엄마는 매일 저녁 내가 돌아오면 문밖에서 흙을 털고 오도록 시켰다. 그게 귀찮아서 몰래 집에 들어온 날이면 내 바짓단에 숨어있던 흙과 먼지들이 거실 한가운데 쏟아졌고, 엄마의 욕과 몽둥이 질도 같이 쏟아졌다. 놀이터를 그토록 열심히 갔던 것은 아무 말하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그곳에서 친구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그냥 놀이터에서 삼십 분에서 한 시간씩 기다릴 때도 많았다. 1차 모임은 놀이터지만, 친구들과 친해지면 자신의 집에 초대하던 게 그 시절엔 익숙했다. 특히 엄마, 아빠가 모두 나간 그 시간에 친구 집에서 맞이하는 자유를 요즘 친구들은 모를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친구 상우(가명)의 집으로 나는 거의 매일 하교했었다. 상우의 집은 자주 비어있었다. 우린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오징어게임에 나온 달고나(뽑기)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비디오 테이프로 녹화해 둔 만화를 다시 보며 춤을 추고 소리를 소리 지르는 시간이었다. 상우네는 3남매를 키우다 보니 1층에 집을 얻었고, 층간소음을 걱정해서 얻은 그 집에서 우린 마음 놓고 팽이를 친 적도 있다. “바닥이 괜찮았냐고?” 그럴 리가 없다. 장판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크게 혼나기도 했지만, 덕분에 상우 부모님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상우네 아버지께서 취기가 있으신 채로 상우와 나를 앉히고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를 내셨다. 아무리 친구여도 승부에는 질 수 없는지라.. 내 기억에는 내가 거의 다 이겼다고 기억한다.(아마도?) 그러고는 꼭 며칠 뒤에 상우네 고모가 집에 찾아오셨다. 아마도 상우가 부른 것 같은데... 고모께서 해주시는 청국장 냄새가 어찌나 지독하던지, 나는 웬일로 친구와의 식사를 거르고, 우리 집으로 도망을 왔었다. 나의 어린 시절 송파에서의 기억은 청국장 냄새와 약간의 소주 냄새, 그리고 라면 냄새까지 섞여서 정겹게 남아있다.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이 너무 크게 비교하며 큰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놀라는 것은 예전의 우리가 기껏해야 옷 브랜드를 비교했다면, 지금은 ‘임대아파트’ 차별, 사는 곳이 ‘구축 아파트와 신축아파트‘인지 등 어른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비교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 스스로도 무서울 때가 있다. 그 친구가 선생으로 일하는 초등학교는 학생들은 길 하나를 두고 신축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한다. 그다음은 이미 예측이 될 것이다. 길 하나를 두고 아파트가 나뉜 것처럼, 신축 아파트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구축 아파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선생님인 내 친구에게 비췄다고 한다.(물론 그걸 들은 강남 출신 친구는 그런 얘길 할만한 동네가 아닌데...라는 얘기를 하긴 했지만, 그것 역시 또 다른 계층 차별일 수 있겠다) 그런 정신은 아이들에게까지 전파되고,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그 행동을 따라 했다고 생각 한다. 사실 아이가 성장해서 부모님의 생각에서 독립할 때까지는 부모님의 말과 생각은 진리요 모든 것의 답이기도 하다. 위의 예시는 현 상태의 한 단면이기도 하고, 나도 이런 현상에 매우 가슴 아파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우린 많은 것들로부터 때 묻지 않고 순수했을까? 나는 그렇다고 자부하지만, 지금의 학부모가 우리 세대이고 우리가 지금의 비교와 분열을 만든다면 과거에 정말 순수했을지 궁금해진다. 나와 어울려 지내던 고마운 친구 ‘상우’의 아버지는 튼튼한 공기업에 다니셨고, 어머니는 선생님이셨다. 나의 두 번째 아지트를 제공했던 재영(가명)이의 부모님은 두 분 다 가락시장에서 사업을 크게 하셨다고 한다. 이걸 어떻게 아냐고? 맨날 친구 집에 놀러 가는데 모를 수가 없다. 우선 가구의 색깔부터 우리 집과는 달랐고, 집에는 주문한 것을 뜯지도 못할 만큼 많은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그중에는 가락시장 물건들도 있었는데, 그만큼 돈버시느라 바쁘셨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재영이네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 모은 티스푼을 벽에 장식해 놓은 친구네 집도 있었고, 주말이면 골프를 즐겨보는 부모님, 우리에게 조선시대 고서적과 유물을 보여주시던 분도 계셨으니 정말 그 집에 대해 속속들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되면 가방이나 시계, 자동차 처럼 나를 간접적으로 보여줄 도구들이 생겨난다. “나는 돈이 좀 있어요~” 혹은 “나는 소박해요~“, ”나는 이런 제품을 좋아해요~” 라고 나를 보여주는 어른들의 암묵적 표시 이리라.
하지만 어린 시절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에게 생겨나는 상대방에 대한 부러움, 시기심들은 초등학교 중반부터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예의 바르게(?) 어느 정도 돌려서 상대방의 배경을 물어보고 알아가지 않는다. 가락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재영이네 집에 가면 내가 갖고 싶은 플스, 엑스박스와 같은 게임기가 넘쳐났다. 내게는 항상 작년에 나온 시즌 아웃 직전의 제품을 돌아왔지만, 재영이는 21단 기어 자전거와 최신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제일 빨리 달렸다. 재영이가 자랑을 아예 안 했다고 할 순 없지만... 순수했던 그 시절의 재영이는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눈게 아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내게 없는 좋은 물건을 보고는 내 마음에 부러움이 한가득 생겼을 뿐이다. 결국 그 게임기들로 우리 사이엔 이미 계층이 형성되고, 난 부러움에 가득 차서 “그 게임기 나도 한 번만 시켜줘~”라고 노래를 부르며 매일매일 재영이를 쫓아다녔던 것이다. 이런 본능적인 부러움은 작은 비교들을 통해 성장한다. 그 시절 아이들은 그 시절 아이들의 기준으로 비교했고, 지금은 지금의 기준으로 아파트와 부모님 직업으로 비교할 뿐이다. 이런 인간의 본성은 내가 송파나 강남에 있었기에 느끼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다. 아이가 물질적, 금전적으로 뒤처지는 것이 신경 쓰인다고? 그렇기에 부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러움을 받기 위해 나보다 소득이 낮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까? 반면, 강남으로 이동하면 비교와 열등감으로 아이가 트라우마에 놓이진 않을까? 이것은 강남만의 문제일까? 대한민국의 문제일까? 나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사람들과 만나서 논의해보고 싶다. 하지만 확실한 건 상당 수의 우리 세대 어른들은 어릴 적 부러움에 대한 감정을 잘 해소하지 못한 채 지금의 부모가 됐을 수 있고, 우리가 걱정하는 열등감과 불안은 강남으로 이사갈 아이들이 아닌 부모가 갖고 있을 확률도 있어 보인다. 이후 보여줄 나의 여정에서 이런 모습을 함께 고민해보자.
부모들이 걱정하는 부러움과 비교는 물질의 소유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니 물질의 소유는 어찌 보면 시작 단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이 느낄 다른 차원의 본질적인 비교의식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내용을 알면 내가 어디로 이사하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