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잘해야

by 정돈서재

송파에서 지내던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의 일이다. 같은 아파트에는 상우, 재영이와 더불어 함께 놀던 친구 종진(가명)이가 있었다. 종진이는 앞서 설명한 재영이에 비하면 내겐 평범해 보였다. 재영이는 집에 돈이 좀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귀엽게 생기기도 해서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였다. 그때 즘부터 반 친구들로부터의 인기가 매우 중요했다. 누구는 그림이라도 잘 그리고 누구는 달리기라도 빨라야 관심도 받겠지만 외모가 좀 받쳐주고 어색하지 않게 말만 잘 걸 줄 알면 그런 특별한 능력은 필요 없었다.



평범해 보이는 종진이는 나랑 자주 어울려 다니기도 했고, 뭔가... 내겐 만만해 보이는 그런 친구였다. 재영이 때와는 달리 지금도 그 친구의 부모님에 대해 기억나 것은 별로 없다. 집안에서 특별한 가구, 전자 제품, 옷을 본 것도 아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이 친구가 나랑 ‘급’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나를 킹 받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으니... 이 친구가 나보다 잘난 모습이 하나씩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그렇지만 이 친구가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생기고, 반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게 모두 그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축구부를 동경하던 그때, 나는 후보로 겨우 입단했지만, 종진이는 달리기가 빨라서 주전으로 뛰게 됐다. 부모님이 참관하던 어느 날, 게임에서 패배가 확실 시 됐던 그날 교체로 뛴 것 이외에는 내가 경기에서 주전으로 뛴 적은 없을 만큼 나는 달리기가 느렸다. 게임은 얼마나 얄미롭게 했던지... 게임기는 우리 집 소유인데, 게임에서 종진이가 이길 때가 많았다.



그때 누군가가 내게 “네가 이성 친구들과 지내는 법이 서툴러서 한마디도 못하는 거야. 그럴 땐, 이렇게 대화하면 돼. “라고 말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달리기도 중요하지만 살면서 중요한 게 꽤 많은데, 너에겐 느리지만 꾸준히 하는 끈기가 참 좋다.”라고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말들이 선생님 혹은 엄마에게서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선생님이자 엄마였던 나의 엄마는 그런 말을 잘해주시진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본인이 정년 퇴임을 하실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나는 비로소 그런 모습의 위대함을 배우게 됐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내게도 버티는 힘이 본의 아니게 전수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나만의 좋은 기질과 능력에 대해 조금씩 찾아가지만, 어린 시절에는 내가 가진 것을 잘 들여다보지 않고, 친구들이 타고나게 잘하는 것, 나와 달리 빠른 시간에 좋은 결과를 내는 것들을 부러워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심지어 잘 나가는 재영이와 종진이는 모두 누나와 여동생이 있었으니, 이성과 말하는 데에는 나보다 앞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고 뒤늦게 좋은 이유를 갖다 붙여본다.)



요즘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제공할 물질적인 것에 대해 걱정한다. 금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겐 뽐낼 수 있는 무엇인가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친구들이 얼마나 좋은 옷을 입었는지, 겉으로 드러나는 비싼 가방을 메고 다니는지 나도 비교의 눈으로 지켜보며 지낸 건 사실이다. 자린고비 부부 아래서 자란 내겐 부모님이 절대 사주지 않는 비싼 신발로 진흙 바닥을 걷는 친구, 그 신발로 축구를 하는 친구를 보기도 했고, 우리 집엔 없어서 친구 집에 가야만 할 수 있는 게임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게임기를 가진 것보다는 게임을 잘하는 것이 친구들 사이에서 멋진 일이 됐다. 게임에서 지고는 “이 게임기 내 것이니 앞으로 너는 하지 마.”라고 말한다든지, “우리 아빠가 너보다 게임 더 잘해.”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초라한 일인지는 초등학생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위해서는 소유도 중요하지만, 무엇인가를 잘한다는 것은 부모가 물건을 사주듯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그 점은 아이들도 알기에 뭔가를 잘하지 못하면 속이 터질 것이다. 재밌게도 그 당시 내 주변은 이런 결핍을 물질로 보상해 주려는 모습도 능력의 발현을 돕기 위한 노력도 크게 보이지 않는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성인군자처럼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척 얘기하지만 어쩌면 잘 교육된 결핍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 결핍 교육‘에는 아빠의 교육관이 어느 정도 들어있다. 아빠는 ‘본질’, ’ 자연스러움’ 등등 이런 개념에 대해 강조하실 때가 있었는데, 물질적을 추구하는 것은 그런 개념에서 벗어나 있던 게 분명했다. 그런 것을 구분하지 못할 때는 ‘미국과 일본의 디즈니랜드를 갈 때의 아빠’와 ‘자잘한 물건 하나 사주지 않을 때의 아빠’의 태도를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어린 시절의 내겐 그 두 가지가 동일한 선상의 소비였기 때문이다. 여행과 물건의 소비 두 가지 방식을 나는 모두 경험했고, 이런 선택적 결핍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알려주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엄청난 딜을 했지만, 부모님은 잘 넘어가지 않았고 오랜 시간 기다려야 원하는 것을 얻을 때도 많았다. 정가가 붙은 플레이스테이션(게임기)을 사러 가서 엄청난 흥정을 통해, 좋은 말로 ‘할인’을 받아서 물건을 업어 오는 일도 있었다. 물건 가격을 듣고는 “저쪽에선 얼마 부르던데?”라고 얘기한다든지, 설명을 열심히 듣고는 ”그 가격이면, 안 사야겠다. “하고 돌아선다든지... 정말 다양한 방법을 통해 물건 가격을 깎으셨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쪽팔려서 어디 숨어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나도 절약과 통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지만, 내가 편하게 즐기며 그 방법을 익혔다고 볼 수는 없다. 내가 ’ 무소유‘를 주장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데, 나는 돈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돈을 아껴서 사용한다. 조금 의아할 수 있겠다. 나도 삶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삶은 내게 절약을 학습시켜 줬다. 그 사건의 절반은 송파에서 절반은 강남에서 일어났는데, 송파에서의 일을 먼저 설명해 보겠다.



첫 번째, 결핍은 우리 집 앞에 신축 아파트가 드러 서면서 찾아왔다. 내가 5학년이 될 때 즈음 S건설에서 만드는 신축 아파트가 우리 아파트 건너편에 들어선다는 얘기가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땅이 밀리고, 매일 같이 트럭이 지나다녔다. 일정하게 울리는 건설 현장 소음이 시계 초침 소리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들릴 즈음 주민들이 항의했고, 보상으로 에어컨을 설치해준다던게 리모컨 달린 선풍이 한대를 받고 끝났다. 선풍기 한 대의 인연으로 시작된 그 대단지 아파트가 내 인생에 얼마큼 큰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우선 아파트 단지에 초등학교가 새로 생겼고, 신규 학교에 학생으로 상우, 재영, 종진이와 함께 단거리(?) 전학을 가게 됐다. 초등학교까지의 거리가 몇 분 단축되긴 했지만, 내가 적응하는 데에는 정말 오래 걸렸다. 학교 시설이 좋았고, 급식이란 걸 처음 하게 되면서 편한 것도 많았다. 아직 학생이 얼마 없어 운동장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매월 아니 매주 새로운 친구들이 학교를 채우게 됐고, 거의 대부분 신축 아파트에 살게 된 친구들이었다. 그 당시 신축 아파트로 이사 온 친구들의 부모님 중에는 젊은 층이 많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내 눈엔 그 친구들이 돈 쓰는데 거침이 없어 보였고, 정말 좋은 옷과 최신의 제품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변화는 어린 내게 예견된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내 10여 년 의 인생 동안 많은 것들이 예측 가능했다. 대충 엄마가 하라는 것들을 하고 건강히 뛰어놀았으며, 형이 살아온 궤적을 지표 삼아 학교를 다니면 되었다. 하지만 형이 졸업한 초등학교를 벗어나 내가 2회 졸업생이 되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리고 나처럼 흙 파고, 개미 잡는 친구들이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영어도 읽을 줄 아는 고등 생명체가 내 세상에 떨어진 것 같았다.




비슷한 시기에 신축 아파트와 함께 IMF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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