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살 자격
프롤로그
고향이 강남이 아닌 사람들. 즉, 강남에서 태어나지 않거나,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은 지인들로부터 강남 거주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그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 강남에서 전세를 살면, 아이가 무시당하지 않을까
- 강남에 가면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될까? 하위권일까?
- 난 의사가 아닌데, 내 아이가 내 직업으로 인해 위축되지 않을까
- 강남에서 적응하려면, 빚을 낼 만큼 생활비를 많이 써야하지 않을까
- 강남에 살면 부자가 되는 습관을 습득하고, 상상도 못할 인맥을 형성할까
그리고 부모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자녀들에게 대입해서 걱정한다. 내가 어정쩡 한데, 내 아이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따돌림을 당하고, 비참한 모습이면 어쩌지? 내가 개개인의 마음속에 들어가보지 못했으니 알 방도는 없다. 그리고 내가 느꼈 듯이 그때는 비교의식으로 힘들었지만, 나중엔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언론, 드라마, SNS를 통해서 비춰지는 강남의 생활이 너무 자극적인 모습만 증폭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만이 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누군가는 이곳을 너무 두려운 곳으로 여기고, 다른 누군가는 유일한 사다리로 여긴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내 가정이 강남에서 '어정쩡한' 사회적 위치라면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웃긴 건 내가 '어정쩡하다'고 표현했지만, 이것의 기준을 잡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강남에 도대체 몇 명이나 자신이 상위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산 얼마면 안전하다고 할까? 대기업 임원, 의사, 변호사, 회계사, 사업가, 건물주 등등 그들 사이에서도 서로 따지고 따지다 보면 그 평균도 알기 힘들고 결국 나만 초라해 질 뿐이다.
질문을 보면 알겠지만 질문 내용엔 아이의 성향은 빠져있고, 자신에 대한 외부의 인식이 어떨지 고민하는 느낌이다. 안타깝게도 위와 같은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이들이 이미 자산의 측면이나, 미래 현금흐름의 측면에서 강남에 올 만큼의 능력을 갖췄으나 그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상급지가 강남이니, 우선 그곳에는 가야하는데 강남에 살아본 경험은 없고 매체가 만들어낸 두려움이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내 친구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하다. 나도 나이가 거의 마흔에 접어들고 있고 이들의 두려움에 내 일처럼 공감하고는 있기에 한 소년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야기를 계획하면서 내가 하는 말이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다.
나는 테남(강남의 테헤란로를 경계로 남쪽)의 한 동네에서 태어났고, 잠시 송파에 살다가 중학교 2학년에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자사고가 된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다. 나의 이야기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로 들릴 순 있겠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선행 학습은 내가 고등학생이던 2000년대 초에도 존재했고, 그 당시 학부모 모임의 강력한 정보력은 지금의 맘 카페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바뀐 것은 모든 것이 더 이른 시기에 시작하고, 정보가 온라인으로 많이 전파됐다는 점이다. 또한, 나는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고, 나처럼 이곳을 떠나지 않은 지인들과 오래 다닌 교회 모임 등을 통해 이곳의 삶의 변화를 파악하고 있다. 아직도 어머니를 통해 이곳 귀부인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그들의 남편 자랑, 자식 자랑, 건물 자랑을 듣고 있으니, 내 이야기가 너무 옛날 얘기만은 아니지 않을까?
예전에도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은 사는 곳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 주소지를 들을 때마다, 내가 힘든 상황에 처해도 “너는 걱정이 없겠다”는 둥 부러움 섞인 '불편한' 위로를 건내곤 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가 대학생 중반이 될 때까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꽤 살만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내 기준은 한동안 강남이였고, 그 안에서 나와 내 집안을 계속 타인과 비교하며 깍아내렸던 것 같다. 아마도 많은 내 후배와 이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학창 시절부터 끊임 없는 경쟁과 비교로 인해 우울감과 우월감, 좌절과 열정, 실패와 성공, 무기력함과 생명력을 복합적으로 느끼며 단련돼왔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강남에서 자란 한 소년의 이야기이며, 그가 성인이 되며 생각이 변하는 모습을 일부 담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어정쩡하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쓸 글에서는 그 이유가 더 분명히 나오기에 오해가 줄어 들리라 생각한다. 내가 강남에 거주한다고 했지만, 사실 강남은 굉장히 크다. 설명을 위해 요즘 언론을 보니 강남을 두 구역으로 나누고 있었다. 테헤란로 북쪽을 대표적으로 압구정•청담으로 나누고, 테헤란로 남쪽을 대표하는 곳으로 대치•도곡을 꼽는다. 나는 테남 중에 대치•도곡에 살았던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전문직도 아녔다. 그것이 너무 높은 기준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상대적으로 비교하게 된다. 전문직이 서로 누가 수입이 더 큰지 비교할 수 있 듯이, 강남에 살면 강남 내에서 자신을 비교하게 될 확률이 크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보편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한 경기에서 퍼포먼스가 안 좋은 국가대표 축구선수에게 그 정도 했으면 우리 조기축구에선 잘하는 것인데 왜 화를 내냐는 꼴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사회의 보편적 기준을 적용하기도 하지만, '그들끼리 있을 땐' 그들의 기준으로 사고하는 방식이 있는 것이다.
많은 글은 나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지만, 일부는 정보를 밝힐 수 없어서 혹은 글의 몰입을 위해서 각색할 계획이다. 이 글을 쓰며, 나를 높이거나, 나의 부족함을 숨기질 않길 바란다. 나의 단편적인 경험이 이지역과 내 세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가진 오해를 풀고, 주눅들어있을 친구들에게 힘이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