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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폴 Dec 13. 2022

콩의 쿵


그녀는 절 콩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콩처럼 깜찍하거나 볶은 콩처럼 빤드르르해서는 아니요. 콩, 이라고 발음할 때의 느낌이 좋아서... 일 거라 믿고 싶네요. 콩을 고수하던 그녀가 며칠 전 절 쿵,으로 불렀어요. 영화 <메모리아>를 함께 본 다음요.


<메모리아>는 쿵!으로 시작해서 쿵!으로 끝나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제시카는 어느 날  소리를 들어요. 운명의 시작인 듯한, 지금 막 사건이 끝났단 신호 듯한, 핵심이 곧바로 심장까지 돌진하는 듯한


쿵.


들을 때마다 까마득곳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철렁했어요. 그 소리가 왜 자기한테만 들리는지 그녀는 몰라요. 모르니까, 소리를 따라 돌아다닐 수밖에 없죠.


우리한테도 그런 소리가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 같이 살려고 국적을 바꾸거나, 맛의  찾아 밀림을 헤치거나, 사진 한 장을 위해 절벽을  때 들리는 소리.

소리의 존재를 의식든 아니소리가 리겠단 예감은 가질 수 있. 예감한 사람은 출발할 준비가 된 사람이고요. 매일의 반복 속에서 소리의 실마리를 떠나려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는 사람.


쿵!소리가 귓가에 머무는 동안, 영화를 한 편 더 봤어요. 메타포를 직설로 받아들이면 오해가 생기는 영화였어요. 영화에서 발견한 런 표현은 오래전 전경린의 책에서 처음 만났을 거예요.


너무 사랑해서 널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위험하고 뜨거운 문장이라, 그 을 읽었 걸 아무한테도 말 못 할 정도였죠. 문장 앞에 주저앉아 턱을 괴고, 떠오르는 모든 이미지와 의미를 외면했어요. 묵직하게 떠오르는 하나가 나타날 때까지.


 번째 영화는  문장에서 출발한 이야기였어요.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장면은 다 마지막 장면을 위한 전주고요. 영화는 어느 쪽으로도 해석 가능한 결말을 보여. 출발이기도 도착이기도 한 쿵,처럼.  


매런이 그를 제 속에 받아들였을 거 해석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면서도 저는 결국 그녀가 그를 '먹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가 내 속에 있으면 손을 잡을 수 없잖아요. 안을 수도, 머리칼을 만질 수도, 눈을 바라볼 수도 없잖아요. 그는, 나의 밖에 있어야 나와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잖아요. <메모리아>의 그와 그녀가 서로의 저장 장치이자 안테나였던 것처럼요.


절 콩이라 부르는 사람은 만날 때마다 꽃을 줍니다. 꽃이 지기 전우린 다시 만나고요. 꽃다발은 다음 만남까지 가까워지는 시간을 재는 모래시계 같은 거예요. 한 송이가 시들해지면 이마가 서늘해지고, 꽃다발 절반이 고개를 떨군 날은 목이 잠기지만 마침내 한 송이만 살아남아 고개를 빳빳하게 고 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곧 우리, 만나겠구나. 머지않아 제철 꽃을 품에 안고 거리를 활보하겠구나. 크게 웃느라 앞에 사람이 돌아볼 정도로 둘일 땐 더없는 명랑으로 피어서.


네 글이 미치게 보고 싶어. 그거 말곤 아무것도 안 보고 싶어.


글 쓰란 말 대신 그녀는 그렇게 말요. 모든 일을 작파하고 책상 앞에 앉게 하는 말이죠. 어떻게 말해야 가 움직이는지 아는 사람의 말이고요. 좋아하는 책과 사람들을 빠짐없이 움켜쥐고 있다 하나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도 엉엉 우는 우리는, 감정에 빠지는 걸 기꺼워한다에서 닮았요.


함께 달 같은 떡을 먹었어요. 찬바람 앞에 막 내놓은 붕어빵을, 제사상에 가족들이 올려 줬으면 싶은 음식 얘길 하다 사리가 다 불어 버린 김치찌개. 많이 , 꼭 맞는 을 못 찾아 꿀꺽 삼킨 묵밥을.


 테두리가 그을린 그리움 같빈대떡, 육즙을 땀처럼 흘리고 있던 만두, 베트남 여행 이야길 들으며 파리 단골집을 떠올렸던 쌀국수도 같이 먹었고요. 떡 벌어지게 차린 상 앞에서 나 요즘 소식해, 란 고백을 들었을 땐 젓가락으로 조심조심 들어올린 보쌈을 그녀의 소복한 밥 위에 올려놓고 싶었죠. 함께일 때만 특별해지는 사소한  먹을 때마다


시드는 중인 꽃을 생각했어요. 과자와 과일과 떡과 초콜릿처럼 껍질만 남는 것들. 어디에나 있어서 기억과 한 몸일 수밖에 없는 것들, 잊지 말란 말 대신 주머니에 찔러준 삶의 증거들을.


그녀를 만나고 나서 겁이 없어졌어요. 틈날 때마다 표현하고, 상대의 표정으로 하루를 밝히고, 속이 다 비치게 웃다 마음을 들키고, 끝내 같이 있는 것 말고 뭐가 사랑이냐고 되묻는 걸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됐단 뜻이에요. 지나가는 모든 구름을 기억할 순 없지만


아, 저기 좀 봐.


하면서 닮은 사람이 가리킨 구름은 마음에 자국을 남기니까 잊을 수 없죠.

자국을 남긴 구름 같은 날이 얼마나 오래 선명할 지 몰라 만날 때마다 서로를 찍, 담고, 살피 시간을 아낄 수 없어요.


 아끼지 않는다- 지난 계절에 나온 제 책 제목을 부정하는 동시에 긍하는 이 말로 사랑이란 말을 대신해요. 사랑을 어떻게 다르게 말할까 고민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말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니까요.


다음 눈썹달이 뜨는 저녁에 밥 먹자는 말이나, 꽃이 시들기 전에 만나자는 말이나,

나의 쿵! 은 널 발견한 날이었단 말처럼.


쿵.


그녀가 떠오릅니다. 달처럼, 달떡처럼, 오래 닦아서 윤기 나는 웃음처럼.



진샤와 폴폴이 시에 관한 모든, 뭐든 주고받습니다.


이 글은 이병률의 시 <모독>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감정과 몸의 허기, 우리를 살게 하는 약속의 새끼손가락을 한 편으로 그러모으면 아마

이 시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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