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차 Oct 24. 2021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건우와 상훈이가 점심시간에 몰래 담을 넘었다. 학교가 아이들을 보호하는 시간에 담을 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혼을 안 낼 수가 없었다. 건우를 먼저 불러서 “어디 갔다 왔어?”라고 물었다. 고개를 푹 숙이곤 편의점에 다녀왔다고 답했다.



 “편의점에는 왜?”


 “빵 먹고 싶어서요.”


 “점심시간에 밥 안 먹었어?”


 “먹었는데 또 먹고 싶어서요. 죄송합니다.”



 눈치를 보며 빵이 먹고 싶었다고 죄송하다는 아이를 보니 더는 나무랄 수가 없었다. 담이 키보다도 높은데 떨어지면 다리가 부러질 수 있다는 걸 알아두라고, 그래서 네가 아프면 얼마나 속상하겠냐고 어르곤 사탕 하나를 쥐여주었다. 다음으로 상훈이를 불렀을 때였다. 똑같이 “나가서 어디 갔다 왔어?”라고 물었는데 “뭐가요?”라고 반문했다.



 “점심시간에 담 넘어 나갔다 왔다며?”



 상훈이는 대뜸 말했다.



 “증거 있어요?”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나는 것을 꾹 참고 “증거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증거가 있든 없든 네가 한 행동은 변하지 않잖아. 선생님은 네가 왜 나갔다 왔는지, 담을 넘는 게 안전하지 않다는 건 아는지, 규칙을 위반한 걸 이해하는지 궁금한 거야.”라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상훈이는 그제야 편의점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한참을 대화하고 아이를 보냈더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힘없이 교무실로 돌아와선 선생님들께 하소연했다.



 “아니, 에너지 넘치는 중학생이니 담이야 넘을 수 있죠. 그런데 규칙을 어겼으면 어겼다고 인정해야지, 증거 있냐고 말하는 게 너무 나빠요.”



 경력 많은 선생님께선 웃으며 말씀하셨다.



 “경험이 부족한 학생일 수도 있어요. 잘못한 일을 솔직하게 말해서 칭찬받았던 경험 말이에요. 잘못한 일을 솔직하게 인정했을 때 비난받기만 했다면, 그 이후엔 잘못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나는 그 말을 들으니 상훈이에게 미안해졌다. 이후 아이들이 잘못한 일을 짚고 넘어갈 때도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덜 걱정하게 되었어.”라고 꼭 덧붙였다. 섣불리 기분 나빠할 일도 아이의 입장과 서사를 떠올리면 이해될 때가 많았다.


 이해되지 않던 아이들이 이해될 때면 <언제 가장 슬펐어? 아이들의 대답>이라는 영상이 떠오른다. 패션 브랜드 odg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이다. 자사 제품을 착용한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생각과 표현을 보여줘서 평소 좋아하는 채널인데, 이 영상에선 “가장 슬펐던 때가 언제야?”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다양한 표정의 예닐곱 살 아이들이 클로즈업된다.



 “엄마한테 혼날 때.” 


 “엄마가 나 안 좋아할 때.”


 “엄마가 혼낼 때요.”


 “엄마한테 혼났을 때가 제일 슬퍼요.”


 “엄마가 혼냈을 때.” 



 이어서 PD는 “왜 혼났어?”라고 묻자 아이들이 고민하다가 답한다.



 “모르겠어요.”


 “몰라요.”


 “모르겠어요.”


 “그때는 잘 기억이 안 나요.”


 “혼났다는 것만 알아요.”



 아이들은 가장 슬펐던 순간을 혼났던 때로 꼽고는 정작 왜 혼났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아이와 어른은 호기심도 경험도 배움도 다르기 때문에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범위가 다르다. 그런데도 상식적이지 못하다고 화를 크게 내면 아이들은 ‘무섭다’ 또는 ‘억울하다’라는 감정으로 반발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단호히 설명하면서도 그래서 네가 싫어진 게 아니라고 표현해주어야 한다. 표현을 해야 안다.


 혼을 내는 건 아이들이 잘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교사가 무엇을 가르칠까’가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배울까’를 중심에 두고 확장해나가야 한다. 나는 잘못한 것에 대해 혼을 냈는데 학생이 잘못은 회피하는 게 좋다는 걸 배웠다면 그건 분명 어른의 잘못이다.     





 교직 2년 차에 가장 화냈던 날이 있다. 가장 부끄러운 날이기도 하다.


 자리를 바꾸는 날이었다. 자리 바꾸기는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아이들이 기대하고 흥분하는 이벤트지만 교사는 신경을 바짝 세워야 한다. 서른 명이 모두 만족하는 자리 배치는 절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와 싸웠다느니 누가 누구와 사귀다 헤어졌다느니 아이들의 원망은 어디서든 튀어나왔다. 안착한 자리 배치를 되도록 유지하는 게 좋지만 우리 반은 학기 초 학생들과 협의한 대로 2주일에 한 번 자리를 바꾸기로 했다.

 화면에 자리 뽑기 결과가 뜨자 수현이가 책상을 쾅 내리치더니 소리를 질렀다.



 “씨발, 좆같네!”



 나는 표정을 굳히며 “수현아, 뭐라고 했지?”라고 물었고 수현이도 정색하며 답했다. “자리가 좆같잖아요.”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야!”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욕을 하고 소리 지른 건 수현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날은 정말 교실이 소란스러웠다. 나의 목소리는 묻혀서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다가 마지막 한 방울을 수현이가 툭 쏟았다. 나는 그제야 조용해진 교실에서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선생님이 지금 마음대로 자리 정하고 앉으라고 했나요? 여러분이 2주마다 자리 바꾸겠다고 학기초에 정했잖아요. 선생님은 여러분의 선택권을 존중해주려고 자리 배치 프로그램도 일부러 세 번 돌리고, 투표하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자리를 선택하고 있어요.


 지금 결정된 자리를 누가 선택한 건가요? 선생님이 선택했나요? 여러분이 했나요? 우리 모두가 같이 정한 거예요.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찾아오라고도 분명히 말했어요. 함께 양해를 부탁하고 자리를 바꿔보자고요. 


 학교에 왜 다닐까요? 국수사과음미체 이런 교과목들 배우려고만 다니나요? 우리는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해요. 여기서 혼자서만 살 수 있는 사람 있나요? 아무도 없어요. 단 한 명도 없다구요.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그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는 자리가 학교예요. 다양한 자리, 다양한 위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경험을 해보는 거예요.


 결정된 자리가 모두의 마음에 들긴 어려워요. 거의 불가능하죠. 그럴 땐 말을 하고 서로를 헤아리고 조정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욕을 하면 우리 모두가 기분 나빠지기밖에 더 하나요?”



 아마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길게 훈계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하면 안 될 말을 했다. 



 “선생님이라고 이 3반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을 것 같나요? 선생님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것 같나요? 선생님도 덜컥 3반이 된 거예요. 이렇게 주어졌으니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노력하고 있잖아요.”



 나는 곧바로 몹시 후회했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고 빈 교실에 앉아서 내가 했던 말들을 다시 반추했다. 분명 내가 잘못한 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어가는 게 나을지 다시 한번 언급할지 고민하다가 격해졌던 나의 감정을 책임지자고 결심했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렀다. 초코 과자를 학생 수만큼 골랐다.





 다음 날 조회 시간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자리에 대한 불평도 더이상 없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선생님이 사과하고 싶은 게 있어요. 어제는 너무 시끄럽고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났어요. 아무리 화가 나도 상대를 상처 주기 위한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선생님은 선생님이 상처받아서 여러분에게도 상처 주는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미안해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모두들 오늘 더 달콤한 하루를 보내길 바라요.”



 아이들은 그제야 환호하며 신이 났다. 대부분은 받자마자 봉지를 뜯어서 덥석 물었다. 평소라면 집에 가서 먹으라고 제지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대로 두었다. 이 달콤함으로 어제가 덮어지길 바랐다.


 점심시간에 교실을 기웃거릴 때였다. 평소 나의 안부를 살뜰히 챙기는 하린이가 말을 걸었다.



 “선생님, 근데 아까 초코 쿠키 왜 주신 거예요?”



 나는 일찍부터 일어나서 할 말을 고르고 골라 신중히 전했는데 해맑은 물음을 대하니 허탈하기도 했다.



 “하린아, 아까 선생님이 한 말 못 들었지?”


 “아니, 들었는데요. 선생님이 사과할 일 아니잖아요. 저희가 잘못한 거잖아요.”



 혼이 나면 혼이 나는 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이 존재들 앞에서 아득해졌다.


 감정이 격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쁜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나도 그러한데 아이들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날 이후론 자리를 바꾸기 전에 말한다.



 “자, 자신의 자리가 마음에 들면 박수를 칩시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욱 크게 박수를 칩시다.”



 아이들은 “그게 뭐예요!”라고 볼멘소리를 하다가도 자리 배치 프로그램의 결과가 공개되는 순간 우레와 같이 손뼉을 친다. 재미가 들려서 가면 갈수록 박수 소리가 더욱 커진다. 나의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다.





 혼내는 일은 어렵다. 원칙을 세우려고 하지만 수많은 예외를 맞닥뜨리며 자꾸만 당황하게 된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아이들이 잘못을 납득하고 이해할지 머릿속으로 끊임없는 경우의 수가 돌아간다. 혼을 내다가 아이들이 마음을 닫을까봐 무섭다. 때로는 진심으로 화가 나서 폭발하는 감정을 어디까지 분출해야 할지 헤맨다. 혼내다가도 시무룩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어르게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일은 품이 드는 일이다. 잘 혼내기 위해선 나의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한 수 앞을 내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혼내는 게 두렵거나 미안하지 않도록 더 많이 고민할 것이다. 사랑이란 원체 어렵다는 걸 잊지 않아야겠다.

이전 16화 방향성을 가지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