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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Oct 24. 2021

교사는 감정노동을 하는 직업이라는데, 괜찮으신가요?

에필로그




 오랜만에 울산의 모교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로 대학 탐방을 올 예정인데 저녁에 진행되는 선배와의 대화 시간에 참석할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나는 흔쾌히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딱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중학교 교사라는 직업인이 되어 후배들과 만났다.


 토요일 저녁, 영등포에서 약 40명의 학생과 약 30명의 졸업생이 인사를 나누었다. 한 모둠에 4명의 고등학생이 먼저 앉았고 희망 진로에 따라 선배들이 배치되었다. 선배들은 두 모둠에서 각각 40분씩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었지만 대부분 나 또한 이 직업을 선택하기까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던 의문들이었다. 나는 마주 앉은 아이들과 나 사이의 까마득한 세월을 고려하며 최대한 천천히 답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동현이란 이름을 가진 남학생의 질문이다.



 “제 꿈이 초등학교 교사이긴 하지만 교사는 굉장히 힘든 직업 같아요.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중학교 때 반항도 많이 하고 선생님 속을 많이 썩였어요. 교사는 감정노동을 하는 직업이라는데, 괜찮으신가요?”



 나는 ‘감정노동’이라는 직설적인 단어 앞에서 잠시 침묵했다. 그러곤 괜히 어색해서 “오, 감정노동이라는 것도 알아요?”라고 되물으며 웃었다.


 동현이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네, 알아요. 당시에는 모를 수 있어도 나중에 되니까 다 알겠더라고요.”



 그 진지함에 답하기 위해 신중히 말을 골랐다.



 “교사는 짝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짝사랑을 하면 애타게 매달리기도 하고,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게 밉기도 하지만 무심하던 상대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사르르 풀려버리잖아요.


 제가 들어가는 반 중에 반항기 많은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 때문에 혼자 교무실에서 울기도 하고, 밤에는 악몽을 꾸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머리 긁적이며 서투르게 사과하면 그게 또 예쁘고, 수업 시간에 말도 안 되는 발표를 하면 그래도 발표한다는 게 예쁘고, 아무리 미운 짓을 백 번 해도 한 번 예쁘면 그게 또 예뻐요.


 예쁜 행동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과제물이 엉성해도 끝까지 해보려고 애쓰는 마음, 친구들이랑 싸워도 ‘죄송해요’라고 말하는 모습, 마지막으로 교실에서 나갈 때 자연스레 불을 끄는 행동, 복도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태도, 수업 시간에 필기하는 모양…… 그 아무렇지 않은 행동들이 예뻐요. 때로는 밥을 잘 먹어도, 그냥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예뻐서 미운 마음이 풀려버려요.


 제가 동현이의 중학생 시절을 잘 모르지만 아마 동현이 선생님도 동현이 때문에 속상하기만 한 게 아니라, 기쁜 순간도 엄청 많았을 것 같은데요?”



 내가 말하고도 놀랐다. 그리고 동현이의 멋쩍은 웃음을 마주하며 “진심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중학교라는 공간을 떠올린다. 한 반에 서른 명씩 내가 알아가야 할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삶이 풍성해진다. 그리고 학교로 출근하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어렵고 힘이 든다. 그러나 매일 한 번씩은 아이들 덕분에 웃는다.





 며칠 전 우리 반 국어 시간이었다. 나는 교실을 돌며 모둠 활동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최근에 전학 온 아이에게 “오늘은 안경 썼네? 잘 어울린다!”라고 말을 건넸다. 전학생은 “네?”라고 쑥스러운 듯 반문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이가 말했다.



 “놀라지 마. 선생님은 원래 뜬금없이 칭찬을 잘 하셔.”



 나는 그 말이 웃겨서 웃었다. 옆에 앉은 아이가 한술 더 떴다.



 “선생님은 너에게 말 걸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야.”



 조목조목 말하는 열네 살들이 어찌나 나를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는지 “너희 정말 웃긴다.”하면서 크게 웃었다. 마주 앉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웃으니 영문도 모르면서 뿌듯해하며 말했다.



 “선생님, 저희도 알 거 다 알아요!”



 그냥 이런 게 다 예쁘다.     





 “교사는 감정노동을 하는 직업이라는데, 괜찮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나는 널뛰기 같은 아이들의 감정을 떠올리며 침묵할 것이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추측하며 한숨이 나올지도 모른다. 나의 감정 기복에 대한 두려움이 슬그머니 솟아오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괜찮다’라고 답할 것이다.


 계속 탐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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