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호텔 앞의 북방 방파제 돔을 둘러보았다. 1945년까지만 해도 여기에는 기차역과 연결된 항구가 있었다고 한다. 역에서 내려서 바로 당시 일본령이던 사할린으로 향하는 배를 탈 수 있었다고 한다.
오호츠크해
오호츠크해가 보인다.
셔터가 내려진 왓카나이 상점가. 가게 이름이 러시아어로 쓰여 있다.
발걸음을 돌려 역 앞 상점가로 가면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고, 문을 연 곳이 거의 없다. 일본에서는 셔터가 내려진 가게들만 늘어선 상점가를 셔터거리(シャッター街)라고 부르는데 그러한 지방 도시들 중에서도 왓카나이는 좀 심한 것 같다.
카페 북문관
문을 연 얼마 안 되는 가게 중 하나인 카페 북문관에 들어갔다. 체인점이 아니라 레트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샌드위치를 먹었다.
낡은 회색 건물들만 늘어선 왓카나이에서 가장 깨끗하고 세련된 건물은 왓카나이역이다. 기념품 가게나 관광안내소, 편의점 등의 편의시설도 있고, 의자도 많아서 앉아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최북단 증명서
관광안내소에 가면 최북단증명서를 준다. 홋카이도 네무로(根室) 시에서는 최동단증명서, 나가사키(長崎)현 사세보(佐世保) 시에서는 최서단증명서, 가고시마(鹿児島)현 미나미오스미(南大隅) 초에서는 최남단증명서를 준다고 하니 네 곳 모두 가 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사실 일본 최서단은 오키나와(沖縄)현에 있고, 최남단은 도쿄도 오가사와라(小笠原) 섬에 있지만, 본토(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만 따지기에 나가사키와 가고시마에서 증명서를 발행한다고 한다.
왓카나이 영화관
2층에는 영화관이 있다. 당연히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영화관인 것 같다. 딱히 할 게 없어서 영화라도 볼까 생각도 해 봤는데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다.
왓카나이역에서 남쪽으로 30분가량 걸으면 후쿠코 시장이 있다.
후쿠코거리 왓카나이 카라후토(樺太) 기념관이 있다. 카라후토는 사할린의 일본식 이름이다.
왓카나이시 카라후토 기념관
사할린은 원래 아이누를 비롯한 소수민족들이 거주했는데, 근대에는 러시아인과 일본인들이 거주해 살기 시작했다. 1895년 쿠릴열도-사할린 교환조약을 통해 쿠릴열도는 일본령, 사할린은 러시아령으로 획정되었다. 러시아령이 되고 난 뒤에도 원래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계속 살았다. 1905년 러일전쟁의 결과, 포츠머스조약에서 사할린을 양분해서 북위 50도 아래의 남사할린은 일본령이 되었다. 다시 일본령이 되고 난 뒤에도 러시아인들은 여전히 거주하고 있었다. 러시아혁명 이후에는 혁명에 반대한 이른바 백계 러시아인들이 일본령 사할린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일본이 획득한 어업, 임업, 광공업 등이 발달해 전성기에는 최대 40만 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40년간 계속된 일본의 남사할린 통치는 1945년 8월,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전쟁을 벌이면서 끝난다. 일본과 소련은 1941년 5년 기한의 불가침조약을 맺었으니 소련의 참전 자체가 부당하다고 일본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한 8월 14일 이후에도 소련군은 9월 3일까지 사할린과 쿠릴열도로 폭격과 진군을 계속했다. 뿐만 아니라 포로들을 시베리아의 수용소로 보내 최대 11년간 억류하는 등 소련군의 만행은 일본에서는 악명 높다.(당시 소련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글이 있다.)
군사평론가 고이즈미 유(小泉悠)는 남사할린의 상실이 결과적으로 안보 위험을 크게 줄였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휴전선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러시아(소련)와 같은 나라와 육지에서 국경선을 마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안보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 육지에 국경선이 있는 것보다는 바다로 국경이 단절된 것이 방어에는 훨씬 용이하다.
가케하시 구미코의 <전쟁 뮤지엄>
일본에서는 8월이 되면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담론이 많이 보인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오키나와의 참상은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는 이와나미신서(岩波新書)에서 가케하시 구미코(梯久美子)라는 논픽션 작가가 <전쟁 뮤지엄(戦争ミュージアム)>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일본 전국의 전쟁 관련 기념관과 박물관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왓카나이의 카라후토 뮤지엄 역시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그렇지만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피해자로서의 측면을 강조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고 보니 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왓카나이시는 예전부터 사할린에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을 파견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와 러우전쟁 때문에 파견이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2019년까지는 사할린의 코르사코프과 왓카나이를 잇는 배편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코로나 사태 이후로 중단된 상태다. 푸틴의 야욕 때문에 사할린과 왓카나이 사이의 교류 역시 끊어질 위기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1983년 9월 1일, 뉴욕 공항을 출발해 앵커리지를 경유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군에 의해 격추당했다. 격추된 장소가 바로 사할린 근해였다.
사건 직후 소련은 자신들이 격추시킨 것이 아니라고 잡아떼려 했다. 그때 왓카나이에 있던 자위대 부대가 도청한 소련군의 통신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소련군이 민간기를 격추시켰음이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승객 246명과 승무원 23명, 탑승자 269명이 전원 사망했다. 희생자 국적은 한국 105명, 미국 62명, 일본 28명 등의 순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