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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욱 Jul 11. 2021

중우정치 2.0의 시대

얼마 전 BBC와 HBO가 만든 6부작 드라마 <이어즈&이어즈>를 봤다. 근미래(2020년대) 영국에서 벌어질 사회상을 그리고 있는 이 드라마는 있을 법한 미래를 실감 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잘 만든 드라마다. 21세기라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드라마다.


드라마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은 정치인 비비언 룩(엠마 톰슨 분)이다. 비비언 룩은 대중을 선동하는 막말과 선동을 통해 선풍적 인기를 끌며 결국 영국 수상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비이성적인 선동을 무기로 하여 정치적 성공을 이뤄가는 그녀의 캐릭터가 트럼프와 브렉시트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문제는 드라마 속 캐릭터가 현실의 정치인을 이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편향성을 의식해서인지 드라마에서는 비비언 룩의 정치적 지향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미국의 트럼프나 프랑스의 마린 르펜처럼 이민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는 극우라면 이해하기가 쉽겠지만, 뚜렷한 극우적 언행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트럼프와 비교하면 오히려 '순한 맛' 정도로 느껴지는 문제가 있다. 앞으로 정치와 사회를 그리는 창작자들은 현실 속 트럼프를 능가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어쨌든 <이어즈&이어즈>가 던지는 문제는 2010년대 이후 선진국이 직면하게 된 민주주의의 위기다. 지금까지 선진국이 우려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권위주의 국가가 민주화되지 않는 현상이나 민주화된 지 얼마 안 된 나라가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연이어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마린 르펜의 결선투표 진출, 각종 극우 정당의 대두는 선진국의 중심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직시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쿠데타나 부정선거처럼 민주주의에 반하는 방식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이다. 브렉시트는 영국 유권자 다수의 선택으로 결정되었다. 트럼프는 총 득표 수는 힐러리 클린턴에 뒤졌지만, 충분히 많은 득표에 성공했고, 어쨌든 민주적 절차를 통해 당선되었다. 마린 르펜을 비롯해 극우 정치인들이 득세하게 된 원인 역시 유권자의 지지에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를 의미한다. 1인, 혹은 소수에 의한 지배보다는 다수의 지배가 낫다. 하지만 다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민주적 결과 역시 잘못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필자는 민주주의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조차 못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항상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 영국 유권자들이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선택한 것은 옳았을까? 2016년 미국 유권자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옳았을까? 2013년에서 2017년 사이에 있었던 총선에서 일본 유권자들이 자민당을(간접적으로는 아베 신조를) 선택한 것은 옳았을까? 2012년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옳았을까? (만약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한 사람이라면) 2017년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옳았을까?  (만약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한 사람이라면) 2022년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옳았을까?


이상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궁극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1932년과 1933년에 독일 유권자들이 나치당을 제1당으로 선택한 것은 옳았을까?


필자는 위의 질문들에 개별적으로 판단을 내릴 생각은 없다. 아마도 몇몇 질문들에 YES라고 대답한 사람들 역시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유권자들의 판단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가 종종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반론이 예상된다. 위의 선거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에는 러시아의 해킹이나 선거 브로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암약이 영향을 미쳤다거나 박근혜 당선에는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있었다. 이는 민주주의에서 심각한 문제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러시아 정보기관이나 국정원,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유권자를 세뇌시켜서 그들의 의사에 반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그 합법성/불법성 여부와는 별개로 유권자를 상대로 한 마케팅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유권자의 설득에 성공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가짜 뉴스를 통해 유권자를 선동해 선거 결과를 바꾸었다면 그 역시 필자가 "중우정치"라 부르는 민주주의의 문제 중 일부다.


또 한 가지 반론은 단기적으로는 유권자들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옳은 방향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공감하기 어렵다. 아베 신조는 7년 9개월 동안 총리로 재임하며 최장수 총리로 기록되었다. 탄핵당한 박근혜나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역시 4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충분히 많은 일을 했다. 트럼프가 재임 중 한 일 중에는 3명의 연방대법관을 임명한 것도 있다. 이들은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향후 2-30년 동안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영향을 미치는 '단기'가 4-10년 단위라면, 단기적 문제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충분히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 중 필자가 지지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에 관한 주장이다. 즉, 민주주의는 내용적으로는 틀릴 수 있지만, 민주주의라는 규칙 안에서 적절한 절차에 따라 결정되었다면 옳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브렉시트가 아무리 잘못된 결정이라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가진다면 수용하는 게 옳다. 필자는 여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절차적으로 아무리 정당하다 하더라도 그와는 별개로 내용적으로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정치체제의 6 유형을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체제를 1인 지배, 소수 지배, 다수 지배의 좋은 형태와 타락한 형태 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1인 지배의 좋은 형태는 군주정, 타락한 형태는 참주정, 소수 지배의 좋은 형태는 귀족정, 타락한 형태는 과두정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다수 지배인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민주정은 다수 지배의 타락한 형태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다수 지배의 좋은 형태는 '정체(politeia)'라고 불렀다. 민주정이 긍정적으로 이해되는 오늘날에는 좋은 형태를 민주정, 타락한 형태를 중우정으로 부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수 지배가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 1인 지배나 소수 지배가 더 나을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현재의 한국에서 민주정 대신 군주정이나 귀족정을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가 마을의 유일한 게임이 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민주정이 중우정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뿐일 것이다.


필자가 정의하는 중우정치의 징후는 다음과 같다.


1. 이성 대신 감정에 의존한 판단

2. 법의 지배에 대한 침범

3. 인권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

4.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혼동

5.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6. 과학적 사실의 경시

7.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

8.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에 대한 불관용

9.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의 과잉


필자가 중우정치라 비판하는 이유는 국민을 폄하하거나 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속으로는 국민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건전한 민주정을 위해서는 국민의 오판을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필자가 비판하는 중우정치가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여당이나 야당,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향후 중우정치의 구체적 사례에 대해 다룰 때는 한국 정치나 사회와 관련된 이슈들을 주로 다룬다는 점은 밝혀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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