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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욱 Feb 20. 2022

내가 하면 적폐 청산, 남이 하면 정치보복

진영논리가 키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이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문재인 정권 수사를 하겠다고 발언하자 청와대는 사과를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전해졌고, 청와대와 윤석열 후보 측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은 특검 결과 불법 드러나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尹 '적폐 수사'에 분노한 文…20년전 민정수석 땐 "DJ도 수사" | 중앙일보 (joongang.co.kr) 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타당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박근혜든 문재인이든 법 앞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권의 불법 행위에 대해 수사하겠다는 말이 정치보복으로 이해된다는 점이 한국 정치의 불행한 현실이다. 바로 '내가 하면 적폐 청산, 남이 하면 정치보복'이라는 진영논리다.

 

현재 윤석열에 대해 여당 측에서 제기하고 있는 비리 의혹 중 일부는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당시에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당시)에 의해 제기되었던 문제다. 예를 들어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원이었던 김진태는 윤석열을 두고 "70년 검찰 역사상 최악의 정치 검사"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당시 자유한국당의 반발에도 임명을 강행했던 민주당이 윤석열과 가족의 비리 의혹을 공격하고 있고, 김진태를 비롯한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검찰총장 임명 당시 진보 계열의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윤석열 비리 의혹을 보도하자 민주당 지지자들은 뉴스타파를 비난했다. 그러다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이 조국 등을 수사하면서 정권에 칼을 들이대는 모양새가 되자 여당 지지자들은 서초구에서 촛불집회를 열며 윤석열을 성토했다. 최근에 양당의 대선 후보가 이재명 vs. 윤석열로 정해지자, 여당 지지자 중 일부 이재명 안티들은 윤석열을 지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즉, 윤석열에 대한 평가는 진영논리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이는 청문회 때까지도 윤석열을 비판하다가 현재는 대선 후보로 옹립하게 된 국민의힘 역시 마찬가지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에서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이 되었다. 윗 기수들을 뛰어넘고 요직에 승진을 거듭하는 바람에 윗 기수들이 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정말 윤석열의 본인, 부인, 장모의 비리 의혹이 현재 여당이 비판하는 만큼 심각하다면, 당시 정부의 인사 검증은 엉망이었거나 '우리 편'의 허물에 대해서는 모른 척했다는 말이 된다. 둘 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혹자는 검찰에서 그나마 검찰총장에 임명할 수 있는 인물이 윤석열 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한다. 그러나 윤석열의 전임 총장이었던 문무일은 정부와 마찰이 있기는 했어도 윤석열만큼 심하지 않았다. 기수 파괴라는 비판까지 부르면서 윤석열을 임명한 것은 노골적 코드 인사였는데, 코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인사가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부른다. 대선 후보 윤석열을 만든 것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자업자득이다.


윤석열을 일약 정의의 사도로 만든 현 정부의 검찰개혁 국면에서 가장 떠들썩했던 쟁점은 공수처 설치였다. 심지어 선거제도까지 바꿀 정도로 요란스럽게 출범한 공수처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가끔 사건을 다른 부처에 이첩했다거나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시켰다는 뉴스가 나오면 분노하는 것은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애초에 검찰개혁의 최우선 목표가 공수처 설치였다는 것부터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수사하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수처라는 기관이 필요한 것인지, 실효성이 있는 제도가 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검찰개혁이라는 대의명분 앞에 실종되었다. 공수처를 만들기만 하면 범죄자들을 수사해서 정의의 철퇴를 내려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은 윤석열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을 것이라는 환상과 맞닿아 있다.



어쨌든 조국을 수사하고, 추미애와 대립하면서 윤석열은 일약 대선 후보로 거론되게 되더니, 정말로 경선에서 승리하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까지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검찰총장에게 요구되는 능력과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다르다. 아마 대선 후보가 되기 전의 윤석열은 외교, 안보, 경제, 교육 등의 국정 현안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선 후보가 된 이후에 토론이나 연설, 인터뷰 등을 통해 드러나는 국정 현안에 대한 인식은 대통령이 되기에는 현저히 부족해 보인다.


윤석열 본인도 "26년간 검사만 하다가 정치를 하러 나온 지 이제 8개월째다. 국민 기준에 제가 좀 미흡해 보이는 부분도 있지 않겠나 싶다"라고 인정했다.(윤석열의 디테일 사랑?... 정책 답변마다 숫자 읊었다 [인터뷰] (hankookilbo.com)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바이든이나 시진핑에게도 그렇게 말할 셈인가? 윤석열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5월 10일부터는 현직 대통령으로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국제 정세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윤석열이 미흡한 부분을 채울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대선 직전까지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대통령 자리는 넘보지 않는 게 맞다.


문제는 이런 윤석열이 복수의 여론 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당선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혹자는 토론은 못 해도 대통령으로서의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윤석열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치권에서 토론 못 하기로 유명했던 안철수는 "말 잘하는 해설사보다 일 잘하는 해결사"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말을 못 한다고 일을 잘한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행정부에서 총리나 장관을 한 경험도 없고, 도지사나 시장으로 지자체 행정을 한 경험도 없다. 일을 잘한다는 근거는 없다. 정치권에 들어온 안철수가 한 일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국민의당 대표 정도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00석이 넘는 최대 야당이었고, 국민의당은 한때 40석이 넘는 제3당이었다. 안철수가 일을 잘했더라면 국민의당의 현재 의석이 3석보다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이번 대선은 정말 찍고 싶은 후보가 없다. 오죽하면 윤석열을 뽑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탄핵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황당한 주장이다. 결국 트럼프는 탄핵되지 않고 임기를 마쳤고, 박근혜를 탄핵시키기 위해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었다. 탄핵은 어디까지나 극히 예외적 상황일 뿐, 수시로 대통령을 탄핵시킨다면 대통령제의 의미가 없다. 게다가 당선도 되지 않았고, 탄핵 사유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선되면 탄핵하겠다는 것은 대선에 불복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어쨌든, 투표도 하기 전부터 탄핵할 생각부터 해야 한다는 현실은 대통령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차라리 임기의 제약이 크지 않은 의원내각제가 낫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의원내각제의 경우, 독일의 메르켈처럼 15년 동안 집권할 수도 있는 반면, 2010년대의 영국처럼 몇 년 넘기지 못하고 총리가 연이어 바뀌기도 한다. 정권의 기반이 약할 때는 정국이 혼란스러워지는 반면, 기반이 강할 때는 독재에 가까운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해 아무리 길어도 5년 밖에, 아무리 짧아도 최소한 5년은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제의 안정성은 장점이다.


그러나 최근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 5년이나 대통령직을 지키는 위험이 더 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2022.10.30. 추가)


사실 이 글을 쓸 시점에만 해도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될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3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윤석열은 당선되었고, 우려했던 대로 외교와 경제 등 국정 현안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거듭하고 있다. 6개월만에 지지율은 2,30%대까지 떨어졌다. 한국 정치가 이대로 괜찮은 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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