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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욱 Aug 31. 2022

토착 왜구와 차이나 게이트

반일감정과 반중감정의 정치적 동원

최근 광화문 광장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포스터가 조선 총독부와 일제강점기 당시의 광화문 광장을 묘사하고 있다는 친일 논란에 휘말린 끝에 철거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포스터에 그려진 빨간색 원이 일장기를 상징하고, 산이 후지산을 상징한다는 등의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해당 포스터는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광화문 광장을 시대별로 재현한 네 편의 연작 중, 일제강점기를 그린 것이었다. 물론 그에 대해서 찬반양론은 일기 마련이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의 광화문 광장을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친일 논란으로 비화된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일본과 관련된 문제는 옛날부터 감정적 반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은 토착 왜구다. 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주로 국민의힘(계열 보수 정당)을 비롯해 자신과 상반된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멸칭이다. 그러나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전근대 왜구와 연관시켜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토착 왜구 프레임은 심각한 문제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국민의 힘을 일본에 유화적인 친일 프레임으로 비판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이번 선거는 한일전"이라고 선전하는 프레임을 인터넷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당연히 민주당은 한국, 국민의 힘은 일본이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사실과 다를뿐더러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당을 외국 세력과 연관시켜 비판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일본이 불화수소 수출을 중단하자,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이 SNS에 죽창가를 올리는 등, 한국사회에 만연한 반일 감정은 정치적으로 동원되기도 한다.


일본의 불화수소 수출 중단 사태 당시에는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일본 제품을 불매하는 노 재팬 운동이 일었다. 민간에서의 불매 운동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정부 역시 일본과의 지소미아 중단이라는 감정적 대응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소미아는 미국의 국제 전략에 맞춰 맺어진 문제였고, 한국의 지소미아 중단 통보는 미국의 역린을 건드렸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방침으로 전환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의사결정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사례였다.


원래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박근혜 정부의 지나치게 경직된 대일 강경 태도가 미국 정부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외교적 고립을 자처하고 2015년 위안부 합의라는 실책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내렸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실용적 접근을 꾀하려 했던 문재인 정부가 일본 아베 정부의 반발 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게 된 것이다.


물론 보수 진영에서도 외국에 대한 반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는 많다. 군부 독재 시절부터 진보 진영을 북한을 추종하는 빨갱이로 매도하고 탄압해 왔던 역사는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서 두드러진 경향은 민주당을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연관시켜 비판하는 친중 프레임이다. 2015년에 박근혜가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가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보수 진영이 친중 프레임으로 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지만, 어쨌든 최근에는 반중 감정을 민주당과 연관시켜 비판하는 경향이 돋보인다. 


그 일례로 2020년에 있었던 이른바 차이나 게이트 사건이 있다. 당시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이 민주당 지지 성향 네티즌들이 중국 조선족이라는 음모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인터넷에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네티즌들을 "알바"로 싸잡아 매도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국가와 민족에 연관시켰다는 점에서 중국과 조선족에 대한 혐오 감정을 동원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2016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이 문제가 된 이후, 외국 세력의 인터넷 여론 조작은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2020년의 차이나 게이트 사건은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음모론이라는 점에서 악질적이다. 이런 류의 음모론이 대개 그렇듯 "조선족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는 식의 악마의 증명에 대한 반박은 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음모론을 주장하는 쪽이 근거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 차이나 게이트의 근거는 빈약했던 것이다. 이런 경우, 공론장에서는 외국 세력을 인터넷 여론 개입에 의한 해악보다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견해를 외국 세력에 의한 개입으로 치부하는 해악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최근 인터넷에서의 반중감정은 중국이 김치나 한복 등의 우리 문화를 자기들의 문화라고 주장한다는 문화 침탈에 대한 반발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일부 중국 네티즌들의 막무가내 주장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하는 것까지 비판하는 것은 외래어를 자기들 마음대로 한자화해서 부르는 중국어의 특성을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에서는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고 한자어로 쓰는데, 그렇다고 해서 코카콜라가 중국 것이 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비슷한 논란은 일본의 '기무치'에 대해서도 있었다. 일본어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받침을 발음할 수 없기에 잘 알려져 있듯이 맥도널드를 '마꾸도나루도'라고 발음한다. 김치도 일본어로 발음하면 기무치가 되는데, 이러한 발음의 문제를 두고 일본이 김치를 자기들의 문화라고 주장한다는 오해가 빚어지기도 했다. 내가 아는 한 일본에서 김치가 일본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2022년의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회식에서 중국 소수민족들의 퍼포먼스 중 하나로 조선족이 한복을 입고 사물놀이를 하는 대목이 있었다. 한국 인터넷에서는 이에 대해 한복을 중국의 것이라고 하는 문화 침탈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황희 문화체육부 장관은 "소수민족이라고 할 때는 그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를 주로 말한다"라고 발언하며 조선족은 소수민족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중국이 정한 54개 소수민족 중에는 몽골족, 카자흐족, 타지크족, 키르기스족, 우즈베크족, 러시아족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각각 몽골,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의 나라에서는 주류 민족이다. 한 국가에서 주류인 민족인 다른 국가에서 소수민족이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물론 중국이 규정하고 있는 소수민족 구분이 정치적 카테고리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지적해야겠지만 말이다.


문화 침탈은 문제이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 문화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민족과 국가의 교류를 통해 형성될 것이고, 온전히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에 귀속된다고 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하나의 민족만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민족, 하나의 문화가 반드시 동일한 등호로 이어져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문화 침탈 문제 때문에 옆길로 샜는데,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을 토착 왜구로 매도하는 것도,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조선족으로 매도하는 것도 다를 바가 없다. 각각 대중적으로 만연한 반일감정과 반중감정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외국과 내통한 세력으로 매도하는 프레임이다. 정치적 음해를 위해 혐오 선동을 서슴지 않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 정부의 정책에 비판할 만한 부분은 많다. 양국의 일부 네티즌들의 국수주의적 태도 역시 문제다. 그러나 일본인이나 중국인 전체에 대한 비난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한국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인 유튜브에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해당 러시아인 유튜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지도 않고, 오히려 푸틴에 비판적이라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정 국가의 정부에 대한 비판이 그 나라 사람들 전반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명심하면 정치적 혐오 선동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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