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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욱 Oct 17. 2022

더 이상 다락방 리볼버는 농담이 아니다

정치적 테러에 대한 단호한 거부가 필요한 때

2022년 7월 8일, 일본 나라시에서 선거 유세 중이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야마가미 데쓰야에게 총기로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생전의 아베에 대해서는 호감을 느낀 적도 없고, 그 정치적 행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아베가 선거 유세 도중에 정치적 테러로 사망했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정치인으로서의 아베에 대해 아무리 반대한다 해도 정치적 테러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과 달리 총기 구입이 쉽지 않은 나라였던 사제 총기가 범행에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범인은 부품을 각각 구입해 조립하는 사제 총기를 사용했다. 3D 프린터로도 총기를 제작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즉, 총기를 사용한 테러는 한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떠오른 것은 2016년 11월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 당시 한 트위터 사용자가 "다락방에 숨겨둔 리볼버 들고 찾아가고 싶다"라는 트윗을 게시한 뒤 경찰이 가택 수사를 한 이른바 다락방 리볼버 사건이다. 믈론 트위터에 쓴 글이라서 해당 트위터 유저의 다락방에 리볼버가 숨겨져 있다기보다는 단순한 농담일 가능성이 높고, 경찰이 가택 수사까지 한 것은 과민반응이라 비판하는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아베 암살 사건을 보면, 총기를 사용한 테러는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모골이 송연하다. 


얼마 전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테러를 암시한 트위터 유저가 검거되면서 일각에서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아베 암살 사건을 생각하면 더 이상 이러한 농담은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트위터에 "한동훈 내가 처리" 협박글 용의자 검거(종합) | 연합뉴스 (yna.co.kr)


총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테러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3월 7일에는 대선 유세 중이던 민주당의 송영길 대표가 괴한에게 둔기로 공격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여당 대표가 선거 유세 중에 테러를 당한 정말 아찔한 사건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물론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 한동훈, 송영길 등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거나 이를 예고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대상이 누구든 폭력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나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화가 있다.


미국에서는 20의 배수가 되는 해에 당선된 대통령은 임기 중에 사망한다는 징크스가 있다(이른바 테쿰세의 저주). 1860년에 당선된 링컨부터 1960년에 당선된 케네디까지 그 징크스는 이어졌다. 그중에는 1940년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병사한 경우도 있지만, 총기 범죄가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나라답게 암살당한 대통령이 많았다.


1980년에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은 임기를 무사히 마치며 징크스를 깨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81년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존 힝클리 주니어가 암살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병원에 이송된 레이건은 의료진에게 "자네들 중에 민주당원이 없어야 할 텐데"라는 농담을 건넸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의 레이건은 농담을 즐기기로 유명했다. 의사 역시 "걱정 마십시오. 오늘 저희는 모두 공화당원입니다"라고 응수했다.


정치인에 대한 테러와 폭력 앞에서는 공화당도 민주당도 없다. 여당도 야당도 없다. 보수도 진보도 없다.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 사이에서는 누구나 민주주의의 편에 서야 한다. 평소에는 아무리 대립하고 비판하던 관계라 할지라도, 테러와 폭력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거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이건에게 의사가 한 말은 "오늘 저희는 모두 민주주의자입니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에서 democrat은 민주당원 내지는 민주당 지지자를 의미하기에 농담이 성립하지 않지만)


정치인에 대한 테러와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말이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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