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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욱 Oct 30. 2022

정의를 의심하라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논란이 일었다. 같은 팀에 소속된 김보름 선수와 노선영 선수 사이에서 지나치게 큰 격차가 생기면서 김보름이 노선영을 괴롭힌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던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뚜렷한 근거는 없었지만, 대중은 김보름이 가해자고 노선영이 피해자라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김보름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고, 며칠 뒤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보름은 대중에게 사죄의 큰절을 했다.


그런데 반전이 벌어졌다. 얼마 전 법원에서 김보름이 노선영에게 폭언과 욕설을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김보름이 가해자라는 전제에서 이뤄진 대중의 반응은 도를 지나친 마녀사냥이 아니었다 싶기도 하다. 


특정인(혹은 특정 집단)에 대한 악플이나 공격은 의외로 정의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심심하니까 악플이나 달아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 못지않게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 응징해야 돼"라는 생각에 악플을 다는 사람 역시 많은 것이다.


분노는 쉽게 전염된다. 게다가 남을 공격할 때의 쾌감 이면에 자리한 죄책감을 덮어주는 것은 정의감이 딱이다. 그렇다 보니 대중의 감정을 선동해야만 주목받을 수 있는 인터넷에서는 정의감으로 위장한 분노가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


물론 소박한 정의감 자체는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길을 잃고 폭주하는 정의감은 마녀사냥과 한 끗 차이다. 정의감 앞에서는 이성적인 논리와 근거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스스로의 정의감에 대한 반성이 없기에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면, 위험한 발상이다.


인터넷 시대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기 위해서는 섣부른 정의감을 앞세우기 전에 멈춰 서서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의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냉철하게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중우정치 2.0의 시대에 꼭 필요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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