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기다리고 있어
아보카도라는 과일을 일본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엔 잘 모르고 사다가 바로 잘랐더니, 실패했다.
자주 가는 슈퍼 직원에게 후숙과정과 먹는 방법을 물어보고 다시 도전해 봤지만 또 실패했다.
뜬금없이 아보카도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나의 일본 대학 생활이 아보카도 경험기와 비슷하여 남겨본다.
푸릇하고 딱딱한 아보카도가 딱 먹기 좋게 익을 때까진 시간도 걸리고, 자주 살펴봐줘야 한다.
주변에선 모두 다 한 목소리로 이제 대학교에 들어가서 졸업하면 30살이 넘고 언제 취업해서 결혼..... 할래~~~ 라며 걱정 어린 조언을 해줬다.
하지만, 뭐~ 막상 대학교에 다시 다녀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좀 하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실패든, 성공이든 말이다~" 남의 훈수보다는 내가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다~~
2학년이 되기 전, 1학년 가을부터
다시 한번 결심을 했다.
일본어는 이대로 하면 거의 마스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의 한 맺힌 영어가 '저 멀리서 나에게 오라'라고 손짓하고 있다.
2학년으로 진급하면 본격적으로 영어수업도 많아지고, 난 이미 오래전 영어와 헤어진 지 오래니,,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 것 같아 고민고민 끝에 휴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영어 어학연수를 가기로 나 홀로 결정.
뭐부터 준비해야 하지?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많이 가는 영어 어학연수지를 리스트업 했다.
가성비를 생각해야 했던 터라,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바로 '필리핀'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보통, 이 때는 연계 어학연수(2개국 이상) 가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었다~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돈이 문제로구나....
필리핀에서의 3개월과 나머지 기간은 영어 본토발음이라도 들어보고 싶어 영국에서 6개월을 정했다.
미국, 호주, 캐나다가 아닌 영국을 택한 이유는 그냥 영국을 가보고 싶었다.
한국에 있는 유학원을 통해 필리핀과 영국으로 어학연수 견적을 받고,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 자금
일본에서 받고 있는 장학금+ 출국 한 달 전까지 잠줄이며 아르바이트한 비용을 끌어모았다.
이리하여, 1년의 시간을 나에게 자유시간으로 주었다.
한국 유학원의 같은 기수 동기들과 함께 필리핀 출국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휴학신청, 아르바이트, 지인들과도 잠시 안녕하며 한국으로 들어왔다.
엄마, 아빠는 꼭 가야 하니~~라고 하시면서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있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출국 전, 필리핀 세부의 유명한 쇼핑몰 앞에서 한인 총격전이 있었다고 하는데 뉴스를 보신 걸까?
"걱정 마세요~ 엄마, 아빠
잘 다녀올게요"
필리핀 세부에 도착
내가 가는 어학원은 스파르타식으로 월~금까지 외출금지, 아침 6시~저녁 8시까지 주야장천 영어 수업으로 스케줄이 꽉 차있었다.
20대 초반에서 후반까지 젊은이들이 머나먼 필리핀까지 와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영어공부에 불태웠다.
주말에만 외출이 허락되어 토요일이 되면 다들 바다며 계곡으로 뛰쳐나갔다.
신혼여행이나 휴양으로 올 것 같은 세부에 3개월 동안 주야장천 교실에 앉아 영어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배우고 문장시험을 보았다.
" 나 학교 다닐 때 영어는 왜 배운 거니....!"
지나고 보니, 외국사람 만나 한마디 못하면서 중고등학교 때 성적표에 성적만 올리려고 공부했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성인이 되어서도 충분히 목적이 있다면 언어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내가 일본어를 그렇게 배웠기도 하지만 말이다.)
우리 기수는 그렇게 3개월을 세부에서 채우고, 90% 이상은 호주로 날아갔지만, 나는 영국행이었다.
영국으로 출발하려고 공항에선 상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세부공항에서 공항직원들이 서로 짜고 나에게 짐이 무겁다며(제한 무게를 넘지도 않았는데), 오버차지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했다. 안 되는 영어로 말하니 너무 유치원 수준이라 나중엔 일본어, 한국말 막 섞어가며 기본 무게 안 넘었다고 계속 말하는데도 통과를 안 시켜줘서 결국 일본에서 발행해서 온 트래블체크(2014년 일본 발행 종료)를 환전까지 해서 돈을 지불했다.
우여곡절을 겪고 영국 히드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영국 런던 도착
몇십만 원을 세부공항에 내고 분이 안 풀려 씩씩거리다 그래도 출발은 한건에 감사하며 내내 잠마나 자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시간에 도착하여 한국 담당자분이 마중 나와계셨다.
그분과 함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영국에 오게 된 이유 등등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학원, 셰어하우스 등의 설명을 들었다.
아직도 나는 꿈인지 진짜인지 실감이 안 났다.
난생처음으로 일본보다도 머나먼 타지에 홀로 와 있다는 게 말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말이다.
2일 정도 런던 시내에 한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다음에 내가 머물 숙소로 데려다주시고 짐을 풀었다.
이제부터는 완전히 홀로서기이다.
(스마트폰도 나오기 전이라 친구들, 가족들과 연락을 하려면, 이메일과 비싼 국제전화뿐이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빌라 다가구 등등 나눠져 있듯이 영국도 여러 주택문화가 있지만, 영국의 대중적인 2층집 플랏이라는 곳에 머물게 되었다.
한국인들과 호주, 아랍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배정받은 방에는 한국인 룸메이트가 있었고 주방, 욕실 사용등 생활 전반에 대해 집주인 한국인 언니에게 설명을 들었다.
갑자기, 위에는 옷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시커멋 가슴털이 있고, 밑에만 목욕타월로 살짝 걸친 아랍 남자분이 "헬로~" 라며 인사를 건넨다.
나는 어색한 미소로 "헬로"로 답했다.
영국에서는 오전/오후 어학원을 2군데 다니게 되었다. 오전은 '칼란'이라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어학습방법으로 수업을 하는 학원이다. 오후에 다니는 학원은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다니는 어학원과 비슷한 분위기의 학원이다.
학원 첫날, 초행길이라 일찍 감치 길을 나섰다.
걸어서 5분 정도에 지하철역이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걸어가는데 영국영어는 귀에 들어올 리 없고, 여긴 영국인데 히잡에 차도르를 걸친 무슬림도 엄청나게 보인다.
검은색의 차도르나 칸두라를 걸친 사람들이 우르르 옆으로 지나가는데 순간 너무 무서웠다.
처음엔 빤히 쳐다보다 땅바닥을 보며 기어가다시피 역에 도착했다.
그 사람들도 놀랬을 터, 내가 너무 오버했나 보다
그런데 진짜 무서웠다. 눈만 빼꼼히 나온 옷을 입고 우르르 정면에서 걸어오는데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터..
첫날 신고식을 치르고 학원에 도착해 영어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영국에서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