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의 묘미

러시아 여행에세이 <그 겨울 러시아>

by 유림
그 겨울 러시아


제대로 씻지 않은 얼굴에 가뭄 든 느낌이 들어 거울을 봤더니 부서지는 햇살에 주름과 기미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오늘 기차를 탄 말끔한 맞은편 승객에게 나의 이런 몰골이 어떻게 비춰졌을까. 그 찰나의 눈빛을 미처 읽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거울을 보지 않고도 나를 볼 수 있는 수단. 타인의 눈빛은 또 다른 거울이다.


처음 기차를 탈 때만 해도 저 작은 세면대 속으로 머리를 박고 머리 감는 일은 상상도 하지 않았더랬다. 덩치 좋은 아저씨가 수건을 두르고 화장실에 들어간 후 한참을 있다 나왔다. 나를 스치는 그에게서 달달한 샴푸향기가 났다. 용기를 냈다.


세면대 옆에는 늘 정체 모를 절반이 잘려진 빈 페트병 하나가 놓여있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랬다. 페트병의 용도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이 하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물을 담고 붓는 도구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백분 활용해 머리를 감았다. 피식 웃음이 샜다. 머리 감는 일은 커녕 변기 밑이 시원하게 뚫려있던 인도기차를 생각하면 이쯤은 별일 아니지. 사소한 것들이 특별해지는 순간, 기차여행의 묘미가 시작된다.



그 겨울 러시아




사진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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