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량

러시아 여행에세이 <그 겨울 러시아>

by 유림

새벽에 사두었던 빵과 홍차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기차는 몇 시간 간격으로 20 ~ 30분씩 짧게 정차하는데 그때 매점에 들러 다음 식량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끼니를 걸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먹고 자고를 일상으로 하는 기차여행에 있어 중요한 일상 중 하나다.


기차여행 초반 매점에서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아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을 건네받고도 기다리는 긴 줄 때문에 그대로 돌아선 적도 있다. 그나마 맛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처음 경험하는 맛에 한입 먹고 버리기도 다반사였다. 생소한 맛들이 점차 익숙해질 무렵 음식을 주문하는 일도 제법 익숙해졌다.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원하는 메뉴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간단히 해결됐다.


기차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나라 라면을 주식으로 먹는다. 러시아에서 ‘도시락라면’이 유명하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러시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라면뿐만이 아녔다. 다음 역 매점에 들러 맛있는 커피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레쓰비(우리나라 브랜드의 커피)를 떡하니 내놓는다. “야 이스 까레이, 까레이 커피(이거 우리나라(한국) 커피에요)”라 말하곤 웃어보였더니 매점 직원은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광활한 러시아를 평정한 우리나라 믹스커피 위상을 체감한 순간.


평소 잠이 없는 편이기도 하거니와 에너지 태울 일이 별로 없는 기차 안의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그런 내게 밤은 더없이 깊고 길었다. 가방 깊숙이에 넣어뒀던 믹스커피 두 봉을 꺼냈다. 익숙한 맛이 식도를 타고 흐르자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기억들. 이 달고 느끼한 커피를 하루에 몇 잔씩 마시던 사람이 있었다. 겨울엔 자판기커피가 제일이라며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나눠마시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 속에는 내가 있었다. 믹스커피 한 잔에 달콤한 기억을 베어물고 모처럼 단잠에 빠진 흰 밤이었다.



20190203_082355.jpg 그 겨울 러시아


사진작가 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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