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국 셀럽과의 만남
일본계 미국인 2세이자 77세의 베스트 프렌드. 미국에서 우연히 만나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가족같이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Hide와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Hide는 날씨가 화창한 어느 주말, 우리 가족에게 필드트립을 제안하셨다.
말리부에 위치한 게티 빌라(Getty Villa)를 둘러본 후, 산타모니카 비치를 거쳐, LA에 위치한 장 폴 게티 뮤지엄(Getty Museum)까지. 게티 빌라와 게티 뮤지엄은 철강 사업으로 거대 갑부가 된 Jean Paul Getty가 본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박물관이다. 게티 빌라에는 역사책에서 보던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조각품이 많았는데, 특히 말리부 바다가 배경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빌라의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봤다.
[말리부 해변에 위치한 게티 빌라(Getty Villa). 온라인에서 시간대별로 사전 예약을 받아 입장객 수를 조절하기 때문에 북적이지 않고 한가롭게 감상할 수 있다.]
체험관에서 아이와 한참 그림 그리기를 하는데 남편이 시선은 딴 데를 향하고 입술만 옴짝 거리며 우리 옆에 유명한 연예인이 있다고 말했다. 도통 연예인에 관심이 없는 남편인데 웬일로 연예인을 알아보았나 신기해서 쳐다봤지만 안면인식 장애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보는 나로서는 큼직한 명품 선글라스를 낀 여자분이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은 이름을 모르겠다며 드라마나 광고에 많이 출연한 유명 연예인이라고 하더니, '예쁜 여자 연예인' 이라는 검색어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식의 검색을 해보았지만 도무지 이름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지척에서 서로의 아이들이 같이 노는 통에 한참을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 불과 2미터 앞에서 360도 빙글빙글 돌아봐도 누군지 모르는 나를 이번에는 남편이 오히려 답답해했다. 가방 보관함과 복도에서도 두 번을 더 마주치고 나서야 나는 이마를 쳤다.
“오 마이 갓! 김희선 씨잖아. 당신은 김희선 이름을 모르다니 말이 돼?”
괜히 알려주고도 타박만 받은 죄 없는 남편은 눈만 끔뻑거렸다.
Hide는 한국 드라마의 열혈 팬이자 Kpop을 사랑해서 LA에서 열리는 한국가수들의 콘서트도 여러 차례 보시고, 한국 연예계 동향을 줄줄 꿰고 계신다. Hide에게 아까 우리 옆에 있던 사람이 김희선 씨였다고 하자 할머니는 한국의 대스타를 자세히 볼 기회를 놓쳤다며 너무 아쉬워하셨다.
그 때부터 Hide와 나는 의기투합하여 탐정처럼 근처 식당과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낙심했다. 포기하고 커피나 한 잔 마시자고 뒤돌아서는 순간, 맞은편 복도에서 다시 한번 지나쳐가는 김희선 씨를 발견했다. 나는 민망함과 실례도 잊고 전속력으로 뒤쫓아 달려가
“헉헉......저기요~” 불러 세웠다.
“친구가 김희선 씨의 열성 팬인데 인사 한 번 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하자 아이와 다른 가족들도 동반했음에도 흔쾌히 잠시 기다려 주었다. 나보다 뒤처져 오고 있던 Hide에게 빨리빨리~ 손짓하자 할머니는 우사인 볼트에 버금가게 전력질주 해오셨다. 연예인 보고 달려오는 모습은 영락없이 실제 나이 빼기 60년을 한 17세 소녀인 것만 같다.
김희선 씨는 Hide가 일본인이라 생각하고 일본어로 인사를 해주었고, 일본어를 모르는 Hide는 영어로 김희선 씨의 드라마를 많이 보았고 오래전부터 팬이라며 매우 정중하고 우아하게 인사하셨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 서자 Hide는 셀러브리티 앞에서의 침착함은 사라지고 나와 두 손을 짝짝 마주치며 방방 뛰셨다.
아~뿌듯해라.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언젠가 김희선 씨를 또 만날 기회가 있으면 그때 고마웠노라고 인사하고 싶다.
하루는 빌라 내부의 수영장에서 딸아이들이 수영하는 동안 히데(Hide) 할머니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 수영장 문을 열자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쪼르르 들어왔다. 동양인 여자 한 명이 뛰어가버린 강아지를 쫓아다니느라 분주했다. 수영장 한 바퀴를 크게 돌고서야 강아지를 겨우 안아 든 여자는 우리 쪽으로 가볍게 하이! 인사했고 우리는 강아지가 예쁘다며 강아지 이름을 물었다. 잠깐 대화를 나누던 차에 나는 우연히 시선이 마주친 여자분을 보다가 혹시나 하며
“어? 어!!! Are you Korean?” 물었고,
예상대로 예쓰!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한국말로 “연예인이시죠?”하니 살짝 웃으며 “음~ 예전에 그랬었죠.” 한다.
“이제니 씨 맞죠?”
오랫동안 들어본 적 없던 이름인데 신기하게도 당사자 얼굴을 보니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성격 좋게 하하~웃더니 가벼운 대화를 좀 더 나눴다. 한 시간 떨어진 얼바인에 살다가 얼마 전 이사 왔다고 했다. 나와 동갑내기인데도 예전의 귀여운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대화 후에 헤어지고 보니 동네 맛집 알려주겠다는 핑계로 식사라도 한 끼 같이 하자고 할 걸 그랬나 아쉬움이 남았다. 요즘도 원조 베이글녀라는 타이틀로 이제니 씨의 근황 기사나 사진이 나오는데 괜히 더 반갑기도 하고 아직 그곳에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딸아이와 단 둘이 뉴욕에 일주일 간의 여행을 갔을 때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카페테리아에서 대표적인 뉴욕 거주 연예인 서민정 씨와 딸을 마주쳤다. 이 때만은 오지랖을 억누르고 (Hide가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는 체 하지 않았다.
LA에서는 김희선 씨와 이제니 씨를, 잠깐 여행간 동부에서는 서민정 씨까지. 한국에서보다 한국 연예인들을 더 많이 마주친 것 같다. 정작 미국 할리우드와 비버리힐스 거리를 기웃거려도 미국 셀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아이러니.
연예인은 아니지만 방송인 홍진경 씨의 남동생도 LA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한국 돌아와서도 종종 만나뵙고 있다. 모델인 누나에 못지 않게 키도 매우 크고 무척 미남이시라 개인적으로는 누구 못지 않은 셀럽으로 느껴진다.
'넓은 것은 오지랖, 깊은 것은 정, 많은 것은 흥 뿐이고
좁은 것은 세상, 얇은 것은 지갑, 적은 것은 겁 뿐인 가족'
'겁 없이 살아 본 미국' 책은
평범한 40대 회사원 남자가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 입학부터 졸업하기까지,
10년 차 워킹맘이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 무료영어강좌에서 수십 개 나라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알파벳도 구분하지 못하던 큰 딸이 2년 만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완독하고,
Yes/No도 모르던 작은 딸의 미국 유치원 적응기까지, 다양한 미국의 교육 현장 이야기.
전화도 터지지 않는 서부 국립공원 열 곳에서 한 달 이상의 텐트 캠핑,
현지인들과의 소중한 인연,
경험이 없는 덕분에 좌충우돌 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담은 책.
출간 두 달 만에 2쇄 인쇄. 브런치 글 100만 뷰. 페이스북 팔로워 1400명(www.facebook.com/MKLivingUSA)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리워지는 장소와 사람과 음식이 생겼고
나이와 국적에 대해 견고하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친구 삼을 수 있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서로 다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며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고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해서 주저 앉아 울고만 있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결국은 '성숙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