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볶음

슬기로운 집콕라이프

by 푸른국화

코로나가 없었던 시절 나는 집에라고는 붙어 있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집이란 잠 자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면 나와서 잠자기 직전에 들어가는 곳. 휴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요리는 일년에 한 번 할까말까. 집에 가구를 들여 놓거나 인테리어 소품을 사모으는 취미는 당연히 없었다. 티비를 켠 적이 없다보니 작동법도 모르고 책 한권 읽으려해도 집을 나서 카페를 찾았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나는 이렇게 변했다.


1.매일 요리를 한다. (심지어 재밌어 하고 있다.)

2.그러다 보니 그릇과 식기에 관심이 생겼다. (과거의 나는 회사 행사 일등 상품으로 받은 포트메리온 세트를 참가상인 스타벅스 텀블러와 바로 교환해 버렸던 사람이었다.)

3.장식장을 샀다.(집에 감성을 더하고 있다.)

4.쇼파를 사고 실내용 운동기구도 샀다.(집에서 잠자기 외의 다른 활동들을 하고 있다.)

5.티비를 하루에 몇시간씩 본다.(그러다보니 내가 똑똑해진 것 같다. 시사상식에 빠삭해졌다. 주로 듣는 역할을 했던 내가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집의 의미도 커졌다. 이제 집은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집순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일년도 안되어 완벽한 집순이가 되었다. 이제 내집이 최고다.


오늘부터 거리두기 2단계+3단계에 준한 조치가 시행된다고 한다. 그럼 2.125단계인거냐는 자조적인 댓글이 달렸다.

공식적으로 단 한번도 기온이 40도를 넘은 적이 없다는 상하이가 생각난다. 2016년 상하이로 출장을 갔더니 방문 기관에 거대한 기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게 안내되는 항목은 오늘의 기온.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높은가보다고 물었더니 상하이의 해당 기관 담당자가 대답했다.

- 아, 저거요? 공식적으로 기온이 40도가 넘으면 출근, 등교 모두 정지됩니다.

- 우와, 엄청 선진화된 정책이네요.

- 그런것 같죠? 제가 상하이 온 이래로 단 한번도 공식적으로 40도를 넘은 적이 없어요. 오늘만 해도 40도를 훨씬 넘은 것 같은데, 항상 공식적으로는 39도입니다


우리도 공식적인 3단계는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상하이가 섭씨 40도를 부인하듯. 의사인 친구가 말했다. 3단계로 상향 조정하면 오히려 방역수칙을 위반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집단방역의 효과는 떨어지기 때문에 정책당국에서는 집단방역의 최대효율, 즉 현상태에서 확진자수가 최대한 떨어질 수준으로 방역기준을 정하는 것이지, 발표하는 수준이 개인방역의 최적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사회를 지키는 수준이 1.5단계든, 2단계든 개인을 지키는 수준은 3단계라고 친구는 말한다.


친구 말을 들으니 살짝 나가서 밥만 먹고 올까하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마음이 지쳐가는 나를 위해 오늘메뉴는 내가 제일 자신있는, 나의 대표메뉴 오징어볶음!


-재료 : 오징어 1마리, 파, 양파, 호박, 간마늘, 고춧가루, 고추장, 꿀(설탕 대신, 요리당도 무관), 맛술, 참기름



야채부터 다듬고 오징어를 깨끗이 씻어서 한입 크기로 잘라준다.

야채는 양파 1/4개(양파는 세로썰기, 찌개용 가로썰기로 얼려서 항상 냉동실에 쟁여둔다. 거의 매일 어떤 식으로든 먹는데 먹을 때마다 다듬기는 귀찮다.), 애호박 1/3개, 대파 하나 정도면 오징어 한마리에 딱 기본양인 것 같다. 야채는 기호에 따라 종류나 양을 늘릴 수는 있겠지만 가급적 줄이지는 말 것.

오징어와 야채는 볶다보면 물이 나와서 국물이 흥건해진다. 국물이 흥건해지지 않는 방법을 검색해보니 달군 팬에 양념부터 볶으면 양념이 재료들에 착 달라붙어서 국물이 흥건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양념장은 간마늘 2숟가락, 고춧가루 3숟가락, 맛술 1숟가락, 간장 1숟가락, 고추장 1숟가락, 꿀 3/4숟가락


정확하게 계량한 것은 아니니 맛을 봐서 부족한 것을 조금씩 더하면 된다. 오징어볶음 맛을 좌우하는 것은 고춧가루와 고추장의 비율이다. 고춧가루에 비해 고추장양이 많으면 떡볶이 맛이 나고 고추장이 적으면 깊은 맛이 없다.

꿀이나 설탕은 기호에 맞게, 간이 안맞으면 소금을 조금 더해준다. 좀더 자극적인 맛을 원하면 불닭소스 반 숟가락. 그 이상은 추천하지 않는다.


양념장은 금방 타기 때문에 팬에 기름을 달군 후엔 바로 불을 줄이고 살짝만 볶아준다. 타기 직전에 딱딱한 야채부터 투하!



원래 야채를 순서대로 볶을 생각이었는데 양념장이 타기 시작해서 한꺼번에 다 부어 버렸다. 그렇게 야채가 어느정도 볶이면 오징어를 넣어준다.



오징어가 어느정도 볶이면 잘게 썬 파를 넣어주고 참기름을 한바퀴 둘러준다. 마지막으로 참깨 솔솔.



뜨끈한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밥 한그릇 뚝딱이다. 준비하는데 40분, 먹는데 15분, 치우고 정리하는데 40분.

비효율이라 하겠지만 비효율이야말로 팬더믹 시절을 견디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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