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쉬면 하루에 검토할 서류도 이틀 치, 상담 문의도 이틀 치니 오늘은 단단히 각오를 하여야 한다.
역시 자리에 앉자마자 서류가 쌓이고 여기저기서 그렇게 나를 찾는다고 한다.
정신없이 바쁘지만 다행히 출발은 몹시 보람차다. 절박한 눈으로 찾아온 민원인의 사연은 내가 도와줘야 할 일이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결을 해 준 것도 아니고 방법을 찾아준 것 뿐인데 정말 감사하다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신다. 이 맛에 이 일하지. 보람 한 스푼 담아간다. 새해 출발이 좋다.
실제로 대부분의 상담은 내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도와줄 일이 아니거나, 내가 도와주고는 싶지만 도와줄 수 없거나, 내가 도와줄 필요도 없고 도와줄 수도 없는 일들이다. 도와줄 수는 있지만 도와줄 일이 아니면 화가 나고 도와주고는 싶지만 도와줄 수 없으면 속이 상한다. 도와줄 필요도 없고 도와줄 수도 없는 일에는 자괴감이 든다. 그런데 보람 한 스푼 뒤에는 자괴감 한 스푼 차례였다.
누구 하나를 괴롭히기 위해 전문지식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돈 때문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괘씸해서. 그러니까 이 사람을 처벌받게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아주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하면서 실실 웃는다. 실실 웃으며 나를 흘깃흘깃 보더니 내 명패를 찍는다. 어디에다 내 이름을 팔려나 본데.....
- 선생님 제 명패는 왜 찍으세요?
- 내가 변호사님 좋아서 그러지. 뭐, 내가 변호사님을 선임할 수도 있고,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연락도 하게.
아놔. 연세도 있으신 남자 어르신들이.
타인을 괴롭히고자 하는 그들의 불순한 목적은 모른 체 한다 쳐도 일단 문의하는 모든 내용이 내 업무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틀 뒤에 다시 오겠단다. 뭘 또 오시냐 했더니 시간 많댄다. 저기요. 저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만. 역시나 이 직업은 나에게 보람만 주지는 않는다. 연휴가 끝난 월요일. 역시나 쉽지 않다.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은 눈물나게 매운 떡볶이가 생각난다.
재료 : 떡볶이 떡, 어묵, 소세지 두 개, 양배추, 대파, 양파, 카레, 고춧가루, 고추장, 설탕 or 요리당, 다진 마늘, 청량고추, 소금 + 사골육수(없으면 생략, 멸치육수로 대체 가능)
떡볶이 떡(먹을 만큼), 어묵(먹을 만큼), 양배추는 어묵양 정도, 대파 하나,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시판 사골육수500그램을 다 부워줬다. 보통은 멸치 육수를 베이스로 한다. 오늘은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사골육수의 유통기한이 다가오는데다 검색해 보니 떡볶이에 사골육수를 사용하기도 하길래 이번엔 사골육수 떡볶이를 만들어 보았다. 결과는 대만족!
재료에 사골육수 자박하게 부은 뒤 카레 한 스푼, 양념(고추장 1 : 고춧가루 1 : 간마늘 1/2) 두 스푼 넣고 끓인다. 맛을 보며 부족한 양념을 더해 갈 것이기 때문에 일단 간장이나 소금은 나중에. 고추장도 간이 되어 있고 카레가루도 간이 되어 있다.(사골 육수도) 그리고 양배추와 파에서 단 맛이 나올테고 끓은 후에 양파를 넣을테니 거기서도 단 맛이 나올테다. 그러니 소금, 간장, 설탕(또는 요리당)은 나중에 넣기로 하고 일단 끓인다. 끓었을 때 매운 맛이 부족하면 고춧가루, 그래도 뭔가 부족하면 고추장, 간이 부족하면 일단 간장(그래도 부족하면 소금), 단 맛이 부족하면 설탕 또는 요리당. 이렇게 더하다 보면 맛있다. 그래도 혹시, 혹시나 맛이 없으면 카레를 좀 더 넣어준다.
끓으면 양파 한 줌 넣어주고 청량고추 하나 넣어준다. 청량고추는 속 풀리는 시원한 매운맛이 난다. 처음엔 국물이 많은가 싶었는데 적당히 줄어들었다. 양념이 잘 베어들었으면 참기름 한 스푼 둘러 주고 불을 끈다. 그리고 통깨를 뿌려주면 먹음직스럽다.
자괴감 한 스푼은 보람 한 스푼, 매운맛 한 스푼에 묻혔다. 그러니 회사 다니는 동안에 매운맛 끊기는 틀렸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