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어묵 김밥

타인의 노동의 가치

by 푸른국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가 직접 글을 쓰다 보면 글을 읽는 시선이 넓고 깊어진다. 악기를 직접 연주해 보면 음악을 듣는 귀가 달라지고 그림을 직접 그려보면 그림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래서 글로, 악기로, 그림으로 밥 벌어먹을 정도가 못되더라도 창작은 그 자체로 쓸모 있는 일이다.


요리도 마찬가지.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보면 타인이 만든 음식을 대하는 무게도 달라진다.

평소에 만만하게 먹던 김밥도. 밥 먹을 시간이 부족해 대충 때우거나 값싸게 한 끼 때우자고 집어 드는 김밥을 한 번 말아보면 안다. 김밥이 먹기는 만만할지언정 절대 만들기는 녹녹지 않다는 것.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해야 하는 일반적인 김밥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재료를 최소한으로 줄인 초초초간소화 김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바로 매운어묵김밥.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조리한 매운 어묵, 꽈리고추(혹은 청양고추), 조림우엉 끝.


♧ 재료 : 사각어묵 8장, 고춧가루, 간마늘, 간장, 맛술, 생강 큐브, 조림 우엉, 꽈리고추, 식초, 소금, 통깨, 참기름


일단 밥부터 안치는데 김밥용 밥을 할 땐 소금 한 꼬집, 다시마 한 조각을 같이 넣고 밥을 해준다. 살짝 꼬들한 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쫀득한 밥이 더 좋으니 물량은 답이 없다, 각자가 원하는 대로.

대신 밥엔 간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밥은 싱거우면 나중에 식초 섞을 때 소금을 더 넣어주거나 김밥 속 재료에 간을 더하면 되는데 간이 세면 수정할 방법이 없다.


밥이 되는 동안 김밥에 들어갈 속을 준비한다.



사각어묵은 온수에 담가 기름을 살짝 빼준 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준다. 깨끗이 씻은 어묵은 긴 방향으로 가늘게 썰어준다. 짧은 방향으로 돌돌 말아서 썰면 쉽게 빨리 썰 수 있다.


어묵 양념은 간 마늘 1, 고춧가루 5, 간장 3, 맛술 2, 생강큐브 2(없으면 생략, 간마늘로 충분하다). 깊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어묵을 양념과 함께 잘 볶아준다. 양념은 자칫하면 탈 수 있으니 기름을 더하고 불을 줄여준다. 맛을 보고 조금 짜다 싶게 간을 해준다. 꽈리고추는 어묵이 거의 다 볶아졌을 때, 불 끄기 30초 전에 넣고 살짝만 볶아준다.


밥은 식초와 통깨를 넣고 잘 섞어준다.

김 위에 밥을 펴고 어묵을 듬뿍, 같이 조리한 꽈리고추 두 개를 한 줄로 놓고 조린 우엉 세 개를 나란히 올린다. 그리고 김발로 말아준다.



재료는 간단하지만 매콤 짭조름하니 너무나 맛있다.

그런데 이렇게 초초초간소한 김밥인데도 몇 줄 말고 나니 당이 떨어져 어질어질하다. 그리고 부엌은 거의 폭격 맞은 수준이다. 설거지를 한 번에는 못하겠다.


초간단히 버전으로 만든 김밥도 직접 만들기엔 녹녹지 않다. 내가 직접 만들어 보니 그동안 3000-4000원으로 만만히 먹었던 것이 황송할 따름이다.

어린 시절 소풍날이면 평소보다 눈이 빨리 떠져 소풍보다 김밥 생각에 들떴었는데, 김밥 쌀 준비를 하던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휴일 아침부터 김밥을 싸다 보니 꼭 소풍 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김밥 몇 줄 말고 나니 지쳐서 소풍은 못 가겠다. 어쩌면 소풍 갈 김밥 만드는 사람 따로, 소풍 가서 김밥 먹는 사람 따로인 게 분업 차원에서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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