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외면하게 만드는 편견들
책 읽기, 독서. 말만 들어도 뭔가 고상하고 지적인 모습이 연상된다. 한 손으로 우아하게 턱을 괴고, 다른 손에는 두툼한 ‘바로 그 책(누구나 들어도 알법한 꽤나 유명한 책들)’을 펼쳐 들고 있는 완벽한 한 폭의 그림.
하지만 막상 해보면 알 것이다. 책 읽기가 습관화되지 않은 초보자에게 독서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하고 지루한 시간일 뿐이라는 것을. ‘책만 펼치면 잠이 온다’는 얘기가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우리의 조상까지 거슬러 오를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인생 선배들이 직접 체험하고 느낀 아주 사실적인 표현이다.
더욱이 이 시대는 뷔페처럼 차려진 화려한 매체 속에서 독서의 맛이 점점 밋밋해진 지 오래다. 작은 휴대폰 속 유튜브 아이콘만 눌러도 기본 2~3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지만, 독서는 그렇지 않다. 선택이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즐거움.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책을 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기억하는 잘못된 독서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인지, 당시 일반적인 사회 풍토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독서’를 ‘취미’라고 하는 것은 금기된 표현이었다. 학창 시절 흔히 작성하는 각종 생활기록부, 신상 조사서, 설문서 등에 꼭 등장하는 ‘취미’를 적는 항목이 있었다.
이때 해당란에 ‘독서’라고 적으면 선생님께서 “독서는 평소에 꾸준히 하는 것이지 취미가 아니다.”와 같은 말씀을 하시며 다시 적으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독서가 취미를 넘어 중요한 일상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도였던 것은 알겠다. 하지만 당시 나를 비롯한 동창들은 대부분 “아,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공부를 말하는 것이구나”라는 인식이 성장하면서까지 단단하게 굳어졌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선생님의 말씀은 틀렸다.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이란 '취미'의 사전적 의미에 딱 걸맞은 것이 바로 독서기 때문이다. 혹시 당시 나와 같이 독서를 취미라고 적어 혼났던 친구들, 또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 바로잡아주고 싶다. 독서는 아주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우리는 뭐든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시간과 약간의 검색 노하우를 더한다면 정보의 수준을 넘어 전문지식까지도 파헤칠 수 있다. 책에 대한 정보도 예외는 아니다. 특정 책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부터 일반인의 리뷰(일부는 전문가 수준이다)까지, 어쩌면 우리는 책 보다 그 책에 대한 타인의 해석을 먼저 접하게 된다.
물론 이런 정보들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 책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작 독서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계기가 된다. 나는 읽고 A를 느꼈는데, 평론과 리뷰는 B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매우 전문적인 지식과 근거를 들어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정작 A를 느낀 나 자신은 책을 잘못 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 소중했던 우리의 ‘독서’는 빛을 잃고 만다. 독서하는 '고상한' 나의 모습은 ‘무식한’ 모습으로 변질되고 만다. 하지만 그들의 독서는 우리의 독서와 다르다. 수백 송이의 장미꽃보다 자신이 별에 두고 온 한 송이의 장미꽃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던 어린 왕자의 고백을 기억하자. 자신이 직접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벌레를 잡아준 '오직 단 하나의 꽃'처럼, 소중한 시간을 내어 한 장 한 장 넘긴 오직 우리 자신만의 독서였음에 틀림없다.
꼭 기억하자. 독서는 공부가 아니라고. 타인의 평가와 리뷰, 정답 같은 말들에 신경 쓰지 말자. 무엇보다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독서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