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삐걱, 불안불안, 뻑뻑, 답답
두 번째 글쓰기를 마쳤다. ‘술술’이라는 이름이 어울렸던 첫 번째 글 「통증」.
이번 「자극」엔 다른 이름을 붙여줘야 했다.
삐걱삐걱, 불안불안, 뻑뻑, 답답
등 영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단어들이 후보로 떠올랐다. 그만큼 쉽지 않은 2주의 시간이었다.
너무 얕봤다. 무조건 또 잘 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글을 쓰는 도하님이 ‘원래 복학 첫 학기는 잘해요. 다음 학기가 문제지.’라고 했던 말이 나한테는 해당이 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웬걸. 사실이었다.
「통증」이라는 글이 한 학기를 차지했는지 벌써 문제가 되는 복학 2번째 학기를 맞이해 버린 나였다.
「자극」이라는 단어를 꽤나 많이 생각해 왔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글도 이질감 없이 적어 내려갈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개요를 짜는데도 크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글을 적기 전까지는 고요했다. 쓰기 시작한 순간 오히려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회원님들 질문을 토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질문이 여럿 떠올라 그것들을 모두 적었다. 그런데 ‘자극’이라는 단어를 쓰는 만큼 ‘힘이 들어오는 것’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일단 적었다. 마감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했다. 90% 정도를 쓰고 퇴고를 시작했다. 크게 느껴지는 어색함, 느껴지지 않는 연결성. ‘힘이 들어온다.’라는 표현이 특히 마음에 걸렸다. 내 기준, 결과에 가까운 단어를 앞에 사용하고 Stimulus가 시작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뜯어고쳐야 했다. 예시를 줄이고 가지를 더 간결하게 정리해야 했다.
잠시 정원사가 되기로 했다. 읽어 내려가며 내 생각에 삐죽 튀어나와 있거나 웃자란 듯한 부분을 잘랐다. 하지만 나는 초보 정원사다. 내 고집에 ‘이건 타협할 수 없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남기고 정리했다. ‘이쯤 하면 됐지.’하고 제출을 했다. 아직은 오돌토돌한 글, 묘하게 둔탁하고 읽기 힘든 글임을 알았지만 개성이라 치부하고 넘겼다. 저번 삶예글방 글쓰기 모임 때 가졌던 스트레스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나의 본능적 반응이었다. 안도의 한숨, 이제는 다시 안 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글을 내고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며칠이 지나 글이 올라올 화요일이 되었다. 편집자 나은 님께 연락이 왔다. 피드백드릴 부분들이 있다는 메시지. 보자마자 ‘하.’ 한숨부터 나왔다. 분명 더 글이 나아지는 길일 텐데 바꾸고 싶지 않았다.
‘저는 이런 제 방황의 흔적도
남겨두고 싶어요.’
라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나은 님이 제시해 주신 방향으로 수정하고자 문서파일을 다시 열었다.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글의 표면이 더 거칠게 느껴졌다. 괜히 어렵게 쓴 느낌의 글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제일 보기 싫어하는 글. 그런 글을 내가 쓴 것이다. 나은 님은 그 부분을 잡아주신 것이었다.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 중 한 분인 나은 님. 나는 왜곡된 나를 지키는 방법을 실천하겠다고 소중한 조언을 넘기려고 했던 것이다.
죄송했다. 그리고 내가 당장 수정할 수 있는 선에서 손을 보고 다시 제출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걱정되는 마음으로 올라오는 댓글들을 확인했다. 매일 게시글을 들어가 보며 새로운 댓글의 여부를 살폈다.
‘어렵게 읽혔으면 어쩌지?’
‘너무 별로였으면 어떡하지?’
이런 반응이어도 큰 문제가 없음을 안다. 다음 글에 반영하면 되니까. 그게 살아 있는 글쓰기이고, 그게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좋은 평가만을 받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1편이 편히 써졌고, 앞으로 그런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것이 오만으로 작용했다. ‘나는 이제 계속 편하게 쓸 수 있을 거야.’라는 거만함이 자리 잡은 것이다.
감사하게도 댓글 창엔 내 글을 나보다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말들이 모여 있었다.
‘재밌다.’
‘덕분에 운동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하나씩 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적혀있던 다양한 표현들을 만났다. 내가 보지 못한 아름다운 부분들을 봐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글이 가진 힘도 알게 되었다.
모두 자신의 운동에서 자극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운동을 하러 가게 되면 또 자극을 떠올리며 운동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내겐 ‘사람들이 운동을 생각하며 했으면 좋겠어.’라는 소망이 있다. ‘글을 통해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댓글을 읽으며 해볼 수 있었다. 글친구들이 또 나를 살리고 있었다. 투박하고 울퉁불퉁한 내 글쓰기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다음 글은「불균형」이라는 주제로 적어보려 한다. ‘너무 광범위한 주제로, 너무 많은 이들에게 전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도와준 합평 피드백을 반영하려 한다. 조금 더 작게 만든 도화지 위에서 내 경험을 써보기로 한다. 그 안에 내 생각, 내 지식을 버무려 담아보기로 한다. 3편 「불균형」의 목표도 똑같다. 사람들이 ‘나’의 운동을 떠올리도록 돕는 것. 내 소망을 위해 트레이너의 운동 쓰기를 이어나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