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은 안 좋은 걸까? 불균형에 대한 생각
빠른 속도로 트랙을 차고 달려 나간다.
오늘은 빠르게 달리고 휴식하고를 반복하는 인터벌 훈련 날이다. 힘든 달리기를 소화할 때 요즘은 리듬에 집중한다. '탁 탁 탁 탁' 가볍게 그리고 일정하게, 억지로 힘을 내는 느낌이 아니라 팔과 다리 그리고 호흡의 조화로 자연스레 달려지도록 두어 본다. 너무 고통스러운 강도에 도달하기 이전엔 달리기의 음표들 속에서 내 몸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오늘은 이상하게
왼다리가 더 빨리 지치는데?'
한쪽으로 편중된 감각에 집중한다. 이유를 찾는다. '왜지? 왜 왼쪽이 더 힘들지?' 다행히 아프지 않고 오늘 훈련은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쉽사리 오늘 느꼈던 왼쪽에 치우친 힘듦이 잊히지 않는다. 화장실의 거울로 향한다.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 휘어 보이는 왼쪽 다리, 부어오른 것 같아 보이는 왼쪽 무릎, 오른쪽으로 쏟아져 있는 내 중심. 내 몸의 불균형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불균형을 달리기에서 처음 느낀 것은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한쪽 팔다리를 우세하게 쓰는 운동을 많이 했다. 축구에서는 오른발, 농구에서는 오른팔을 주로 썼다. 야구할 때는 오른손으로 공을 잡고 왼손으로 공을 받았다. 오른손과 왼손에겐 명확히 다른 역할이 부여되어 있었다. 야구에서 내 주 포지션은 포수였다. 쪼그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이때 유연성 문제로 왼 무릎 꿇고 오른 무릎은 세우고 공을 받았다. 공을 빠르게 던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오른 다리를 뒤로 빼서 앉았다. 골반이 정면을 보고는, 양다리를 같은 모양을 하고 앉아 있는 건 영 불편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시작하고 20대 중반까지는 내 몸엔 '불균형'이라는 별명이 따르고 있었다. 그만큼 틀어져 있는 것이 편했으며 틀어져 있어야 잘할 수 있었다.
이 불균형들이 내 발목을 잡기 시작했던 것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였다. 양쪽 팔의 힘이 다르게 느껴졌다. 바로 서있다고 생각하고 바닥을 보면 양 발의 각도, 양 발이 중심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위치 등이 많은 부분이 달랐다. 이때부터 나는 불균형을 고치려고 애썼다. 양 쪽이 같아야 안 다친다고 들었다. 양 쪽을 똑같이 쓸 수 있어야 운동을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꾸준히 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불균형을 위해 학교 공부에서 들은 내용을 적용했다. 외부 세미나에서 들은 부분들도 내 몸에 실험했다. 강사님들 중 친절한 분들은 내 몸을 보고 숙제도 내줬는데 어렸을 적 하던 학습지보다 열심히 했다. 그 결과 나는 여전히 불균형한 몸을 가지고 있다.
불균형을 경험해 왔다. 그리고 공부해 왔다. 그렇게 깨달았다. 불균형이 적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해결하고 청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균형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5대 5의 대칭은 내게 이데아였다. 닿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뿐만 아니라 회원님들의 균형에도 크게 집착하며 트레이닝을 했던 시기도 있었다. 틀어지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했고, 균형 잡히지 않음에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시간과 경험의 축적은 내 믿음을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불균형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라는 믿음을 함께 해야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불균형은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세계가 이미 불균형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즐기지 않더라도 우리는 '오른손잡이' 혹은 '왼손잡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는다. 그렇게 한 손을 활용한다. 많은 사람들은 양 발의 크기가 다르게 태어난다. 한 손을 길게 뻗어야 하는 상황엔 양손을 뻗지 않는다. 우리는 더 편한 손을 주로 뻗는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먼저 내려가는 다리가 무조건 있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좌우가 맞지 않는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어찌 보면 좌우가 똑같은 몸보단 조금은 틀어진 몸이 자연스럽고 이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자연스러움을 넘어 불균형이 균형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낼 때도 있다. 내 불균형의 최대 주주 야구와 같은 스포츠에서 그렇다. 우사인 볼트가 척추 측만이라는 대표적인 불균형증을 가진 것도 한 예다. 불균형은 균형이 가져다주지 못하는 폭발력을 가져다줄 수 있다. 몸이 많이 불편한 분들에게도 불균형이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균형을 맞추려고 하면 넘어지지만 불균형을 살려 움직이면 나아갈 수 있는 분들이 계시다. 불균형은 어쩌면 우리 몸이 가진 가능성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일상을 살 때보다 높은 무게를 경험할 땐 불균형이 우리 몸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틀어지면 한쪽이 다른 쪽을 지탱해줘야 하고 역치를 넘으면 와르르 무너질 테니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연스러운 불균형을 인위적인 5:5의 대칭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내 지식과 경험 상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이다. 단순하게는 어디가 얼마만큼 어떻게 틀어졌는지를 아는 것이다. 거울을 볼 수도 있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다음엔 내가 가진 불균형을 대처할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쉽게 말하면 불균형이 있는 부분을 내가 잘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잘 움직인다는 것은 중심으로 잘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역치를 넘어서지 않게 조절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불균형을 알고, 불균형에 대처할 줄 알게 되면 불균형으로부터 제거 대상 딱지를 뗄 수 있다. 그리고 내 삶을 보여주는 화석과 같은 존재가 된다. '왜 내 몸은 이렇게 불균형하지?'를 돌이켜보면 내 움직임의 흔적들을 발굴해 낼 수 있다. '아 나 오른손잡이지.' '나 농구 진짜 열심히 했었지.' '아 맞다, 나 다쳐서 여기 수술해서 병원에 누워있었지.' 짧은 인생이든 긴 인생이든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불균형의 역할 중 하나다. 그뿐만 아니다. 불균형은 희망이 되기도 한다. 5:5의 고정적인 균형은 아니지만 더 불균형해지지 않는 몸, 그렇게 해서 내 몸 한 구석만 너무 고통받지 않는 몸을 만들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거울에 비친 내 몸을 다시 바라본다. '왜 내 다리 근데 휘어있지? 야구할 때 공을 너무 강하게 짚었나? 무릎 꿇어앉았나?' 야구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달리기를 하는 지금 야구하던 때가 살짝 원망스럽다. 하지만 이내 그런 기억은 사라지고 야구를 좋아하고 잘했던 그때의 기억만 남는다. '야구를 하며 이기는 것을 좋아했기에 지금도 경쟁적인 달리기를 꿈꾸며 잘 달리고 있겠지! 앞으로 잘 달래 나가보자. 언젠간 왼쪽과 오른쪽이 비슷하게 일하는 날이 오겠지' 나에게도 불균형이 추억이자 희망으로 작용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