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음 날씨는 어땠나요? | 나은

저는 흐리지만 선선한 바람에 시야가 맑아지는 오후를 보냈어요.

by 삶예글방

시원 님, 그런 날이 있죠. 느닷없이 우울한 기분이 찾아오는 날이요. 그럴 땐 정말 그런 기분 자체를 오롯이 바라보고 지켜봐주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는것 같아요.


그렇게 글도 써지지 않고 무력한 날에, 정성을 다해 편지를 적어보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저도 바쁘고 지치던 날들에 힘을 내어 보냈답니다.


듣기에 대해 시선집에 적어주셨죠. 마침 저도 제가 즐겁게 보고 있던 일본 드라마 '나기의 휴식'에서 경청에 관한 주제의 장면을 인상깊게 보았답니다. 주인공 나기는 기존 삶에서 지치고 괴로운 상황들이 겹쳐 공황장애 비슷하게 겪게 되어요. 그래서 자신만의 주체적인 휴식기를 갖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마을로 떠나죠.


그곳에서 새롭게 해보게 된 일터에서 자신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발견해요. 자신이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전혀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오히려 남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 대화의 공을 던져주는 것이 아닌, 계속 상대가 던지는 공을 어떻게 쳐야할지, 어떻게 받아치고 이어지게 해야할지만 고민하고 괴로워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 그녀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최측근들이 같은 평가를 하는 걸 들으며 같이 일하던 동료이자 고용주인 사장은 '공을 받을 생각만 하고 있는 것부터가 경청의 태도가 아니다'라며, 진짜 잘 들어주는 사람은 상대가 말을 잘 꺼낼 수 있게 '먼저 받아치기 쉬운 공을 던져준다'는 이야기를 해주게 됩니다. 그제서야 나기는 자신이 타인에게 진정으로 관심이 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그 에피소드가 시원님의 글을 읽으며 생각이 났어요. 제대로 상대의 마음을 열어 들어주려면, 어쩌면 내쪽에서 용기와 적극적인 태도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요. 정말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면, 제가 자신의 삶을 소재로 투명하게 끌어올려 용기내어 증언하고 고백하는 대담한 산문과 회고록을 사랑하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들의 용기있는 드러냄으로, 고백으로 인해 그 여실히 꺼낸 거칠고도 모난 모습들이 내 안에 어떤 것들과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제서야 나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고 느낄때가 많거든요.



기분이란 건 참으로 예측하기도, 대응하기도 쉽지 않죠. 마치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처럼요. 마른하늘의 벼락 같기도 하고요. 오락가락하며 날이 섰다가 또 무르게 슬었다가 반복하는 변덕스런 모습을 아무래도 가까울수록 들키기 쉬우니 그렇지 않을까요? 거리가 가까울수록 서로에게 예상치못하게 보여주고 싶지 않던 모습까지 내비치게 되곤 하는 것 같아요. 나의 일상의 날씨를 한껏 가려보고 싶지만, 어째 하늘을 가리기 쉬운가요? 날씨는 또 어떻구요. 주변에 예보하듯이, 이런 날씨가 되었으니, 곧 될 것 같으니 조심하셔라 - 알려주는 대응책이라도 뒤늦게 전하는 수밖에 없겠어요. 가능하면 맑은날 미리 예보를 해주며 가벼운 우산이든 비옷이든 준비할 수 있게 하면 좋겠고요.



어쩌면 느긋하게 서로가 적당한 온도로 돌보아주고 감싸주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또 그 속에 살아가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겠다 싶어요. 거리 유지라는 면에서도 그렇고요, 그만한 평온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다가섬과 물러섬, 찔리고 어루만지는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결코 쉬이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느리게 서서히 익어가다보면 그렇게 서로를 느슨하게 품어주며 기댈 곳이 되어주는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답니다.



오늘은 아주 긴 - 산책을 했답니다. 산책 모임이 있었거든요. 박완서 작가님의 「 나목 」 을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고, 창신동 산책을 했어요.


햇살을 가득 머금은 쨍한 봄날은 아니었지만, 서늘한 바람과 흐린 하늘이 풍경을 눈부시지 않게 편히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준 것 같아요. 차분한 맘으로 오후까지 대화와 산책을 이어갔답니다.


흐린 날도, 맑고 쨍한 날도, 갑작스레 비가 내리치는 날에도

우리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느긋하게 서로에게 눈과 귀를 열면서

듣고 품어주며 사랑하는 일상을 누릴 수 있길 바라 보아요.


나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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