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제철인연은 바로
벌써 여름이야!
수국 핀 거 봤어?
능소화를 마주치면 꼭 잠깐 멈춰서 눈에 잘 담아놔.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져버리거든. 집 근처 마트에는 복숭아가 들어오기 시작해서 제철이 끝나기 전에 부지런히 먹는 중이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제철의 무언가를 보고 먹고 즐기려고 노력하는 게 사는데 참 소소하고 중요한 재미를 준다 싶어.
생각해 보면 사람들도 제철이 있는 것 같아. 한동안 매일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다 갑자기 뜸해지는 사람들도 있고. 싸운 것도 아니고 서로가 싫어진 것도 아닌데도 그렇게 멀어지곤 하잖아. 삶 곳곳에서 만나는 시절인연들. 근데 나는 요즘 그런 사람들을 제철인연이라고 불러. 그럼 그 인연 참 좋았다, 맛있었다 할 수 있잖아. 더 귀엽지 않아?
사전적으로는 '인연의 시작과 끝이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와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뜻의 불교용어래. 단어 자체에 아련하고 먹먹한 느낌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어 어찌할 도리가 없음에서 오는 답답함이 아닐까 싶어.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처럼 인연이 끝난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 때문인가 봐.
그럼 제철인연은 어디서 나온 말인가 하면, <제철행복>이라는 김신지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감명받아서 내가 만든 거야! <제철행복>은 입춘, 우수, 경칩 순으로 24 절기를 나열하며 작가의 추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각 절기마다 제철로 즐길 수 있는 먹거리나 활동들을 제안하는 책이야. 이렇게 재밌고 맛있는 것들을 즐기다 보면 1년이 금방이겠다 하면서 행복이라는 단어에 제철을 붙이다니 신선하다 생각했거든. 행복에도 제철이 있다면, 인연에도 제철이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지나간 수많은 '제철인연'들이 떠올랐어. 매달 만나며 스티커 사진도 여러 번 찍을 정도로 똘똘 몽쳐 어울렸지만 지금은 새해 안부나 겨우 묻는 사이가 된 전 직장 동료들, 10년을 함께 여행 메이트로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서먹해진 고등학교 친구 등등. 시절인연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곁에 잡아두지 못한 인연들을 아쉬워하며 나는 왜 이렇게 인연들을 오래 이어가지 못할까 자책하기도 했었어. 하지만 제철인연이라고 생각하니 그 시간들을 새삼 다르게 볼 수 있게 되더라고.
그때 그 동료들과 어울려 놀러 다닐 수 있어서 회사 생활이 몇 배는 즐거웠었고, 그때 그 친구와 매년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혼자서는 가지 않았을 여행지들에서 만든 두둑한 추억도 갖게 되었으니까. 그 인연들이 있어서 내 인생이 훨씬 더 풍성했던 거야. 인연의 끝을 아쉬워만 하기에는 시작과 끝 사이에 즐거운 순간들이 정말 많았더라. 어차피 시작도 끝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면, 계절처럼 나에게 인연이 왔을 때 그 제철을 최대한 즐기면 되지 않을까?
제철인연을 생각해 낸 뒤로 인간관계에 대해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어.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니 지금 이 제철을 마음껏 즐기자 하면서 말이야. 우리도 함께 맞이한 제철을 맛있게 즐기자!
또 편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