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널드 Jul 23. 2019

"아프리카를 도와주세요"라는 구호가 실패했던 이유

어려운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비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조병'. 다른 대륙에 비해 유독 아프리카는 지난 몇십 년 간 엄청난 규모의 대외 원조를 받았음에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 이유를 원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태도에서 찾곤 한다. '원조병'은 이를 꼬집는 말이다. 실제로 여전히 아프리카 지역(사하라 사막 이남에 위치한 국가) 국가는 대부분 한 해 국가 예산의 10%가량을 다른 국가에서 보내주는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원조 규모는 지난 몇십 년 전보다 더 커졌음에도 여전히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과는 요원해 보인다. 원조를 해주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과연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 문제의 원흉일까?

우리는 막연하게 아프리카 사람들을 그저 '해맑고 낙천적이고 절제할 줄 모른다' 정도로 인식한다.

대외 원조의 메커니즘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조병'에 대한 새로운 진단을 할 수 있다.



가령 어떤 영향력 있는 셀럽이 아프리카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말라리아로 인해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연간 3000만 명이 넘습니다. 제대로 된 모기장 하나만 있다면 이 사람들은 말라리아 걱정 없이 살 수 있습니다"라는 표어로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이 셀럽이 특히 유명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면, 그의 이러한 발언은 다른 사회 구성원의 참여를 이끌어기 충분하다. 모 기업에서 우간다에 모기장 1만 개를 보내고, 시민들은 모기장 지원을 위해 기부를 한다. 셀럽에 의한 사회적 환기가 아니라, 언론에 의한 환기도 마찬가지다. 힘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실제로 변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모기장들이 아프리카에 수도 없이 도착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부 행사 사진을 미디어를 통해 확인한 우리들은 안도하며, 세계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 우리가 아는 대외 원조 프로세스다.


안타깝지만 이런 식의 원조가 원조를 받는 이들로 하여금 '원조병'이 걸리게 만든다. 원조병에는 원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증상이 존재한다. 바로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증상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모기장 사례가 원조병을 어떻게 유발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기장 제조는 복잡하지 않은 비교적 간단한 산업에 속한다. 말라리아로 신음하고 있는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도 모기장을 제조하는 업체가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쏟아진 모기장 원조는 현지에 있는 모기장 제조 업체를 위기로 내몬다. 모기장 원조가 쏟아지면서 모기장을 살 필요가 없어지게 되니 수요는 뚝 끊기고 만다. 결국 모기장 제조 업체에서 일하는 이들은 일을 그만두고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모기장 제조 기술을 토대로 조금 더 발전된 직물 제조를 시도해볼 수 있을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기장은 필요하면 해외 원조로 받으면 되니 굳이 자국에서 만든 것을 사서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특정 분야 제조업 발전의 실마리를 잃어버린다.


비단 모기장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연식이 오래된 차량을 무상 원조 형식으로 받아 자국으로 들이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많다. 공짜로 차를 준다니 마다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또 똑같은 이유로 자동차 산업은 동력을 잃는다. 심지어 오래된 차량은 매연으로 인해 심각한 대기오염을 초래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중국어나 일본어가 적힌 낡아 빠진 오래된 차량이 아프리카에는 정말 많다. 선의로 시작된 원조가 아프리카의 산업 발전 기회를 뺏고 환경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꼴이 되는 것이다.

마따뚜라고 불리는 우간다 대표 이동수단. 이들이 뿜는 매연에 첫 한 달 동안 정신 없이 기침했다.



왜 이런 식의 원조가 이어질까? 원조에 대한 피드백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원조는 언제나 칭찬받는 일이기 때문에 견제와 비판이 있기 힘들다. 원조 행위 자체가 좋은 목적과 선의로 시작되다 보니 그냥 퍼주면 퍼주는 대로 칭찬 듣고 끝나는 일이 된다. 이곳에 일곱 달 동안 봉사단원으로 있으면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만하면 됐지', '우간다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게 어디야', '여기선 못해'와 같은 생각들이 수시로 뇌리를 스친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을 막을 제동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명목상 좋은 일을 하고 있는 해외봉사단원인 내게 채찍질하지 않는다. 그저 퍼주는 게 편하고,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의지가 약해지기 너무 좋은 환경이 되고 만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특정 주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돈이 모이는 경우, 오래도록 붙잡고 타당성까지 조사하며 운용하기는 더욱 어렵다. 어떻게 원조를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계획되지 않은 눈먼 원조는 결국 앞서 이야기한 방식으로 아프리카에 영향을 미친다. 그냥 기부하고 사진 찍고 자긍심 가지고 끝내 버리면, 그것은 아프리카를 돕는 게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사실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원조를 당연시하는 태도는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한다. 계획 없이 원조를 진행하다 보면, 정확한 타깃이나 구체적인 목표 없이 그냥 무상 분배 형식이 되어버린다. 원조해주는 우리야 선의지만, 받는 이들에게는 사실상 배급제와 다를 게 없는 셈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에 자유민주주의를 미친 듯이 강조하면서, 정작 그들에게는 사회주의적인 원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배급제에서 배급이 당연한 것처럼 원조 역시 이들에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아프리카를 도와주세요"라는 구호가 이제껏 실패한 이유다.  



참고 문헌: 담비사 모요 <죽은 원조>





이전 07화 우간다 사람이 선뜻 내게 돈을 빌려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