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널드 Nov 05. 2019

메뚜기가 몰려오고 나서야 내가 누군지 알았습니다

합의되지 않은 동거인을 대하는 태도

서울 개포동의 한 아파트. 20년 전 서울 역시 그린벨트 해제로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내가 살던 개포동 아파트는 나무들이 많았다. 녹음이 우거진 그 아파트는 사람들이 살기 참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여름엔 매미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서식지라는 게 문제였다. 사람 이외의 생물에 지레 겁부터 먹는 집안 내력 덕분에 생물 교과서에 실린 사진도 못 쳐다봤던 유년 시절이었지만, 생활 반경을 공유하는 매미들 덕분에 각기 다른 종들의 울음소리를 감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매미에게 조금의 애정이나 호기심을 품었던 적은 단언컨대 없었다. 그저 시끄럽고 징그러운 존재였다. 친구들이 매미 허물로 장난질을 하려고 하면 절교를 선언했다(당시엔 '나 너랑 절교한다'라는 말이 유행에 가까울 만큼 흔했다). 그렇게 매미 친화적인 환경에서 조금씩 매미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지하려고 할 무렵 그 사건이 터졌다.



당시 우리 집 개포동 아파트는 4층이었는데 조금 높은 나무들과 키가 거의 비슷했다. 그 말인즉슨 나무라는 환경에 고리타분함을 느낀 매미들이 손쉽게 그 대안으로 우리 집 베란다 방충망을 찾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매미가 날아와 우리 집 방충망에 붙었다. 참매미라면 울음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아 그럭저럭 참을 수 있겠는데, 말매미는 그 용맹함에 귀청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매미가 날아들어 방충망에 붙으면 나는 질겁을 하며 엄마를 찾았다. 물론 앞서 말한 집안 내력 때문에 크게 유의미한 결과를 내진 못했지만, 엄마는 집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기 때문에 당신이 직접 매미를 쫓아내셨다.


엄마가 매미를 쫓아내는 장면을 몇 번 보니, 나 역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개포동 주공아파트 6단지에 사는 초등학교 고학년으로서 이제 엄마의 힘이 아닌 내 힘으로 매미를 쫓아내는 성장드라마를 찍어보고 싶었던 게다. 며칠 뒤, 말매미 한 마리가 우리 집 베란다 방충망 좌상단에 붙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상대하기는 다소 버겁다고 판단한 20년 전 나는 무기를 집어 들었다. 하늘빛이 감도는 영롱한 리코더는 내 자신감을 한껏 고취시키기에 충분했다.


방충망에 붙은 녀석이 쏘아대는 소리는 엄청났다. "엄마 내가 처리할게"라는 말의 무게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지만 리코더까지 잡았으니 더 이상의 후퇴는 없었다. 나는 방충망을 향해 리코더를 있는 힘껏 스윙했다. 그 장면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내면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내 인생의 첫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행동은 매미를 날아가게 하기 충분했고, 날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 심장박동이 수그러드렀다.


성취감에 젖은 지 5분도 채 안 돼서 다시 매미 울음소리가 귓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다시 리코더를 집어 들고 베란다를 향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내 신경세포로 들어온 시각정보가 주는 원근감이 기존의 것과 달랐다. 매미 다리가 가깝게 그리고 매미 몸통이 조금 더 멀게 보여야 하는데, 이 녀석은 몸통이 다리보다 더 가깝게 보였다. 매미가 나에게 배가 아닌 등을 먼저 보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 하나만은 아니길 바라며 미친 듯이 경우의 수를 따졌다. 하지만 그렇게 경우의 수를 따지는 일은 이내 의미 없는 것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리코더로 힘껏 스윙한 방충망 그 부분이 찢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실내로 들어와 있었다.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그 목소리로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옥타브의 소리를 뽑아내며 엄마에게 달려갔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엄마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아들이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겁을 먹으니 당신도 어쩔 수 없이 매미를 향해 다가가셨다. 우리 모두 한 가지를 두려워했다. '저 친구가 제발 우리 집 안에서 날아다니는 일은 없길.' 다행히 내 초음파 공격에 매미도 겁을 먹었는지 방충망을 툭하고 치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엄마는 재빨리 방충망을 열어젖혔고, 매미는 그대로 밖으로 날아갔다. 나는 엄마에게 한시라도 빨리 테이프를 가져와야 한다고 난리를 쳤고 그래서 우리는 방충망에 테이프를 붙여 매미 친구들이 실수로 우리의 생활 반경에 불쑥 찾아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이후 사람 이외의 생물을 무서워하는 집안 내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 이후로 우리 집에선 다리가 두 개 이상인 생물을 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집안 내력은 아프리카에선 특히 불리한 것으로 작용했다. 조만간 우간다 거주 1년이 되지만 내 생활 반경에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는 친구들을 보면 여전히 온몸에 털이 선다. 2층짜리 단독 주택에서 1층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도마뱀, 바퀴벌레, 거미 등 다양한 생명체를 조우했다. 외딴곳에서 오직 혼자 힘으로 집안을 경영하다 보니 합의되지 않은 동거 생명체를 볼 때마다 내 자신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매미 트라우마 덕분에 곤충을 잡는 것을 극도로 힘들어한다. 요즘 메뚜기 떼가 몰려오는 철이 되면서 우간다 우리 집 마당에서 메뚜기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치곤 한다. 사실 유년시절을 개포동에서 보냈는데 메뚜기와 친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메뚜기 크기보다 우간다 메뚜기들은 훨씬 풍채가 좋다. 7살도 안 된 우리 집주인 꼬맹이들은 메뚜기 철이 되니 한 손에 빈 페트병을 들고 메뚜기를 맨손으로 잡아 페트병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다. 내가 마당을 지나가니 우르르 달려와 잡은 메뚜기를 자랑했다. 그 친구들에게 진심이 담긴 칭찬은 해주지 못했다.

메뚜기 천적들

집에 들어와 멍을 때리려고 하는데 우리 집 내부 벽면 모서리에 메뚜기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생각에 잠겼다. '메뚜기는 뭐 크게 울지도 않고 저 친구는 얌전히 가만히 걸 보니까 나중에 손에 닿을 높이에 있을 때 잡아야겠다.' 그렇게 이틀 정도 함께 생활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내 눈높이 정도 되는 위치에 메뚜기가 가만히 미동도 없이 있었다. 그 녀석도 '여기서 나가고 싶으니 자기를 잡아서 밖으로 던져달라'라고 신호를 주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몇 시간을 더 방치했다. 메뚜기를 잡는 과정을 머리로 그려 보고는 외면했다.

 

개포동에서는 엄마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엄마도 없었다. 집주인을 부를까도 생각했지만, 집주인이 내가 매일 헬스장에서 쇠질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깨닫자 이내 접었다. 비웃음거리가 되기 딱 좋았다. 페트병에 메뚜기를 모으는 게 취미인 우리 집 꼬맹이들을 부를까도 생각했지만 그 역시 안 될 일이었다.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상대를 찾다가 결국 끝내 이곳엔 나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작업용 장갑을 꼈다. 도저히 저 촉감을 내 맨손으로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이 노래 딱 끝나면 저 메뚜기 잡자'라는 생각으로 의지를 다졌다. 그렇게 노래를 5곡 정도 더 들었다. 그러고는 메뚜기에게 다가갔다. 오른손으로 잡으려다가 그래도 왼손잡인데 왼손으로 잡는 게 낫겠다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한 번에 제대로 잡기 위해 허공에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메뚜기를 잡는 시뮬레이션을 스무 번 정도 돌렸다. 그리고 두 손가락을 메뚜기 가까이 가져갔다. 다행히 메뚜기는 한 번에 잡혀줬다. 작업용 장갑을 착용했지만 메뚜기가 팔딱거리는 감촉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 닭들이 있는 쪽으로 메뚜기를 던졌다.  

갑작스러운 사진 죄송합니다. 버둥거리는 거 들고 찍느라 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자네가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개가 아닐세. 그 사람은 분명 하나의 위장일세.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의 모습 속에 우리 자신 속에 들어앉아있는 그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메뚜기를 보고도 잡을 생각을 하니 막막해 애써 외면하는 것도, 메뚜기를 잡아줄 사람을 찾다가 끝내 책임을 떠넘길 사람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것도, 그 와중에 메뚜기 못 잡는 모습은 좀 보이기 싫어하는 것도, 한 번 뭔가 착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메뚜기라는 대상만 빼고 문장을 완성하면, 하나 같이 내가 싫어하는 특징들이다. 메뚜기가 몰려오고 나서야 내가 꽤 별로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이전 21화 저는 아프리카에서 소수자로 살고 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