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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드 Jul 09. 2019

우리 동네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동네 흑인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내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우간다 생활이 7개월로 접어들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내가 행선지를 말하지 않아도 집 근처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오타바이 택시 기사들이 여럿 생겼고, 중국어 인사를 듣는 빈도보다 한국어 인사를 듣는 경우가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했다. 예전엔 입에 댈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이곳의 닭똥집 꼬치는 이젠 없어서 못 먹는 수준이 되었고, '요즘 농구 코트에서 왜 안 보이냐'며 아쉬워하는 친구가 많아 통 미안해하고 있을 만큼 이곳 생활에 많이 젖어들었다.

당황스럽겠지만, 한 번 먹어보면 술안주 고정픽. 닭똥집 꼬치는 하나에 1000실링(약 300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생활이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안전'에 있다. 집 밖을 벗어나 정말 멀리 떠나게 된다면(아프리카라던가 아프리카 혹은 아프리카 같은 곳) 마음속에 왠지 모를 두려움이 자리 잡는데 그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는 안전에 대한 의심인 경우가 많다. 바꿔 말하면, 이곳 생활에 젖어든다는 것은 '안전에 대한 의심'을 성공적으로 거두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7개월은 그런 의미에서 성공적이었다. 우리 동네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진 말이다.


진자 지역 경찰 당국은 7월 6일 아침(현지시각), Main road와 Gabula road 사이에서 유기된 여성의 시체를 발견했고, 현재 조사 중이다. 강간의 흔적이 있으며, 안면부와 목 부분에 생긴 깊은 자상으로 피해자의 신원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중략) 최근 진자 지역의 Main road에 가로등이 설치된 후로 경찰력이 야간 순찰을 등한시한다는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경찰이 주변에 불빛이 없어 범죄의 온상이 되기 쉬운 취약 지역에 집중하기보다, 재력가의 주택이나 상점, 가게 지키기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 <Woman raped, murdered on Jinja Street>, Daily Monitor, 2019년 7월 6일 기사 번역
Police officers picked the body and took it to Jinja Hospital Mortuary.  PHOTO BY DENIS EDEMA


Main road와 Gabula road는 우리 동네에서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두 개의 길이다. 심지어 두 거리 사이 - 시체가 유기된 곳. 물론 두 도로가 1km는 족히 맞닿아 있어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 나와 친한 현지인 친구가 거주하고 있기도 하다. 내 발길과 숨결이 닿는 곳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 동네는 우간다에서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아직 '동네'라는 느낌을 지니고 있는 정감 가는 곳이다. 7개월 동안 이들이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간신히 받아들였는데 한 번의 살인 사건이 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사실 이 사건이 발생하고도 내 감정의 변화나 경계 태세에 대해 진지한 변화를 체감하진 못했는데, 문득 내 긴장 상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장을 보기 위해 마켓으로 향하고 있었다.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사각사각 소리가 조금씩 가깝게 느껴졌다. 우간다는 몇몇 주요 도로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비포장 도로이기 때문에 구두를 신어도 흙소리가 난다. 흙 밟는 소리의 진원지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걸음 속도를 조금 늦췄다. 소리의 주인공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서는(보통 아시아인이라면 한 번은 눈길이라도 주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고) 나를 앞질러 자신의 길을 갔다. 나는 피부가 까맣다는 이유만으로 이곳 남성을 경계하고 있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지기만 해도 높아지는 긴장감. 그러고 보니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비포장 도로와 발자국 소리

우리나라에서 나는 주로 이런 위협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위협을 주는 존재였다.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모자를 쓴 채 걸어 다니는 덩치 큰 녀석이 어쩌다 엘리베이터까지 같이 타게 되는 경우는 누구라도 썩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엄마는 이런 아들이 썩 걱정되셨는지 행동 지침을 몇 개 내려주셨는데, 모자는 뒤로 쓸 것(다행히도 나는 모자를 앞으로 쓰는 것보다 뒤로 쓰는 게 더 잘 어울린다), 절대 누군가를 따라잡으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걸을 것, 괜히 눈 마주치지 말 것 등을 강조하셨다. 그러고는 "다른 집 부모들은 다들 자식 어떻게 될까 걱정한다던데 우리는 그 반대다"라며 웃으셨다. 나도 그런 가르침이 퍽 유쾌했다. 뭔가 친구들과는 다른 교육을 받는 것 같아 나 자신이 굉장히 특별하다고 느꼈다. 부모님 말씀이야 꾸준히 안 들어야 제 맛인데, 이상하게 이러한 행동 강령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애를 썼다. '당신을 위협하지 않아요'라고 최대한 티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내가 생각해도 좀 웃길 때가 있다.

모자는 자고로 뒤로 써야. 파워리프팅 대회에서 재롱 부리고 난 후.jpg

고등학생 때 배운 이런 행동 지침이 어느 순간 사회적으로 공격적 의미를 내포하게 된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잠재적 범죄자'라는 문제적 언어가 나오게 된 게 내 기억으론 강남역 살인 사건 때쯤이었다. 당시 언론은 '모든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인가'라는 식의 주제로 빠짐없이 이야기를 전개해나갔다. 그때부터 모든 게 틀어졌다. 특정 위협으로부터 취약한 특정 사회 구성원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성범죄의 위협으로부터 취약한 이들은 당연히 여성이다. 하지만 대부분 남성들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는 여성이 배제되어 있었다. 여성이 겪는 두려움을 이해하기보단, 내 억울함이 너무 컸던 셈이다. '잠재적 범죄자'라는 단어는 두려움을 대면해야 하는 여성의 시각이 아니라, 억울함이 앞섰던 남성의 시각에서 탄생한 단어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은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인용구는 진부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이것이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잠재적 위협'과 '잠재적 범죄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뭉뚱그리는 식의 이해로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내가 사회 현안에 밝고 문제의식이 뚜렷한 그런 똑똑한 아들이 아니어서 그랬을진 몰라도, 내가 받았던 엄마의 가르침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로 인해 혹여나 무섭고 두려울 수 있는 이들을 위한 최선의 배려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그 거리를 걸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잠재적 위협'이 무엇인지 느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뚜렷하게 느낀 점이 있다면, '잠재적 위협'을 자칫 '잠재적 범죄자'로까지 확대 해석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걸으니, 나와 염색체 구성이 다른 모든 이들은 - 나는 아프리카 우간다라는 땅에 오고 나서야 비로소 처음 떠올릴 수 있었던 - 이런 다짐을 매일 하며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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