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인 없는 편지, 그 열여덟 번째 이야기
나도 내가 신기해. 7년도 더 지난 기억이 어떻게 어제 일처럼 생생한 걸까.
그건 7년간 죄를 지었다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야.
어디서도 꺼내 놓지 못하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모두 털어 버리고 이제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어서.
나는 중학생 때 따돌림을 당했어. 어떤 날은 쌍꺼풀 테이프를 붙였다는 이유로, 어떤 날은 좋아하는 동급생이 있다는 이유로 반의 웃음거리가 되곤 했어.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내 비밀을 여기저기 소문 내고 다녔고, 욕지거리를 섞은 기분 나쁜 별명으로 불려야 했어. 체육 시간에는 피구공의 타겟이 되기도 했지. 수학 시간에는 내 등을 날카로운 학용품 끝으로 꾹꾹 찌르는 장난을 꾹 참고 견뎌냈어.
그런 괴롭힘들을 한 번도 부모님께 이야기할 생각조차 못했어. 그땐 괜한 오기로, 견디고 참고 버티는 게 능사인 줄로만 알았어. 지금 생각해도 씩씩하게 잘 견뎠어. 아주 멋지게 싸워냈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공부를 참 열심히 했어.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게 학교 수업에 임했고, 시험 등급도 많이 올랐어. 국어 과목에서는 1등급을 놓치지 않았고, 친구도 많이 생겼어. 처음으로 학교 생활이 즐겁다고 생각했어.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니던, 좋아하는 남학생도 있었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아주 이상해졌어. 무기력해졌고, 잠이 왔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책의 글자가 잘 읽히지 않았어. 그게 바로 조울증의 시작이었어.
중학교 때 나를 괴롭히던 남학생들이 나를 괴롭히려 또다시 나쁜 소문을 냈다고. 또 좋아하는 남학생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어. 인터넷에 내 이야기가 올라온다고 믿었고, 사람들이 나를 조직적으로 따라다닌다고. 집에는 CCTV 가 달려 있고, 스마트폰이 해킹당하고 도청당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어야 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 두려움의 주축은 바로 중학교 때의 따돌림이었던 거야. 무작정 덮어 버린 뾰족한 기억들이 안에서부터 가시가 되어 나를 찔렀던 거지.
나, 많이 아팠어. 옷을 두 벌씩 가지고 다니며 다른 사람인 척, 도망치며 집에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스마트폰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이고 번호를 바꿀 만큼. 사람들이 나를 감시한다는 생각에 식당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집 안에서도 언제나 두려움에 떨어야 했어. 그게 열아홉부터 스물까지 내가 겪어야 했던 일이야.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절교를 선언했어. 내가 친구들을 의심했거든. 의심하는 카톡을 보냈다, 전화를 했다, 눈물을 흘렸다가. 그애들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애들은 내 병명을 의심병이라 불렀고, 나는 친구들을 의심했으니 그래도 모자라다고 생각했어. 내가 없는 단체 카톡방에서 지인들에게 내 욕을 한대도, 욕이 쓰인 카톡을 몇십 개씩 받아도 내 의심 탓에 친구들이 피해를 입었을 테니, 괜찮다고만 여겼어.
그래서 나는 7년간 죄를 갚는 마음으로 살았어. 다 내 잘못이라 생각하고서. 겨우 열아홉이란 나이에 이 기억을 짊어지고서, 오랜 시간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어. 하지만 더 이상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프고 싶지 않아.
그 때의 나는 나쁜 게 아니라 아팠던 거야.
그러니까 누가 뭐래도 나는 나를 용서할 거야.
이제는, 더 이상 지난 과거를 후회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