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4일, 캄보디아 프놈펜
아침부터 손님이 찾아왔다.
라비스쿨의 미스 팔란, 팔란 선생님.
오늘부터 시작되는 프놈펜의 장애인 복지시설 방문에 큰 역할을 해주실 예정이었다. 한국에서 워크숍을 했던 경험도 있었던 데다가 영어로도 모국어처럼 소통이 가능해서 우리의 일정에 찰떡궁합이었달까. 편안하면서도 견고함이 느껴지는 팔란 선생님을 보고 있으니 더욱 안심이 되었다.
차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팔란 선생님이 활동하는 라비 스쿨.
라비? 라비가 뭐지. 학교에 도착해서 철자를 보니 Rabbit, 토끼였다. 토끼 학교. 토끼처럼 귀엽게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연상되는 그런 이름이었달까.
라비스쿨은 지적장애아동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과거의 우리도 그랬듯, 캄보디아에서는 여전히 장애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했다. 장애라는 자체가 과거의 업보이자 나쁜 것이라고 보는 선입견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아동을 위한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학교 건물도 많이 낡고 칙칙할 것이라 상상했는데, 그것 또한 나의 편견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튼튼하면서도 주변 경관에도 잘 어울리는 학교 건물이었다. 물론 건물 내부도 깨끗했지만 조금 낡은 느낌이었는데, 학교 간판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학교의 사명. Where all children can learn and grow.
단지 그네 혹은 의자일 뿐인데도 캄보디아 느낌이 나도록 장식이 되어 있는 디테일이 좋았다.
교목에 달린 망고가 탐스럽고 신기해서 사진으로나마 남겨보았다.
밖을 둘러보는 내내 이 친구의 가족들이 계속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은 한국이나 캄보디아나 다르지 않다. 웃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던 아이였다.
몇 명의 어린아이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에도 외부인이 신기했던 탓에, 우리들은 본의 아니게 수업을 방해해버리고 말았다. 먼지 한 톨 보기 어려운 새하얀 바닥에서 맨발로 자유롭게 수업을 듣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표정에서도 행복함과 즐거움이 배어 나왔다. 이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강화되면, 일반학교의 라비스쿨반에서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그런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한 통합교육일 것이다.
라비스쿨에서는 성인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업교육도 진행하고 있었다. 직업교육의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아이들의 손 또한 빈틈이 없었다.
라비스쿨에서 나와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 카페를 들렀다.
그저 커피만을 마시러 온 것은 아니었다. 이 곳은 다음 날 방문하게 될, 반티에이 프리업이 운영하는 <카페 피스>. 평화를 상징하는 흰 비둘기 그림과 카페의 색감이 귀여운 곳이었는데, 내부는 더욱 사랑스러웠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분홍색이 잘 어우러져 있는 카페 피스의 외관.
카페 피스의 1층은 일반적인 카페였다. 음료가 나오는 동안 2층에 구경을 갔더니 그곳은 핸드메이드 제품의 천국이었다. 기념 삼아 예뻐 보이는 제품 몇 개를 골라 구입했는데, 지체장애인들이 직접 제작한 물품이라는 사실을 듣고 보니 더욱 귀하게 보였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PSE. 무엇의 약자인고 하니 'Pour un Sourire d'Enfant(아이들의 미소를 위하여)'.
시설의 이름만 보아도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곳이었다. PSE 또한 라비스쿨만큼이나 깔끔한 외관이었지만, 규모는 라비스쿨보다 훨씬 컸다. 그 규모 때문에 학교라기보다는 박물관이나 고급 숙박시설 같은 느낌까지도 들었다.
라비스쿨의 아이들도 그랬지만, PSE 학생들 또한 모두 교복을 깔끔하게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얀 상의와 파란색 하의가 아이들에게 제법 잘 어울렸다. 그런 흰 교복을 입고서도 옷이 더러워질 걱정을 하지 않고 맨발로 뛰어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설치된 그늘막만 보아도 아이들에 대한 학교의 배려와 마음이 느껴졌다.
학교를 둘러보고 있는데, 여대생 한 명이 통역을 하기 위해 우리를 찾아왔다. '순정'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캄보디아 대학생이었는데,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학생이었다. 너무 긴장을 한 탓에 통역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것을 보고 있는 나 또한 손에 땀이 날 정도였지만 어느샌가 그녀의 그런 서툰 통역에도 정이 들어 버렸다.
PSE에서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마음껏 쉬고, 놀고,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숙소 시설의 외관은 여느 고급 숙소 못지않았다.
실내는 조금 어두운 것을 제외하면, 아이들을 배려하는 세심함이 곳곳에 있었다.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공간, 지체 장애 아동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과 욕실, 그리고 훈련과 놀이를 위한 수영장까지도 마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아이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공간은 획기적이었다.
라비스쿨도, PSE도 모든 시설과 공간이 청결하게 정돈되어 있었던 점과 아이들 중심적이었던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실 프놈펜에 오기 전까지는, 아니 이 두 곳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캄보디아 장애인이라고 하면 그들에게 이루어지는 사회적 차별, 다소 지저분하고 부족한 사회적 시설만 떠올렸던 것 같다. 하지만 장애아동과 일반아동이 함께 하는 통합교육을 추구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실시하고 있었으며, 더욱이 교사들을 좀 더 전문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과정도 갖추어져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충분한 배려가 돋보였다. 캄보디아는 사회복지 영역에 있어서 아직은 미성숙한 나라라고만 생각했던 나의 편견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와 더불어 이번 워크숍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목표를 다시 세웠어야 했다. 우리는 가르치거나 돕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그리고 현 체계에 어울린다면 실현할 수 있도록 함께 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말이다.
프놈펜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짧은 하루 동안 많은 편견을 내려놓고, 새로운 다짐은 마음으로 써나갔다.
캄보디아는 정말 겪으면 겪을수록 새롭다.
이렇게 서서히 캄보디아에 물들어갔다.
프놈펜의 밤도 무척이나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