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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Sep 13. 2022

시작은 연봉협상이었다

7년 차 직장인, 고시생이 되다


새로운 스타트업에 합류한 지 일 년이 지났다. 스타트업에서의 입사 일주년은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연봉협상 시즌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생긴 지 일 년 즈음된 스타트업에 열 번째 멤버로 합류했다. 부서도 팀원도 없는 곳에서 팀장이자 팀원으로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일했다. 원치 않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가 즐거워서 일했다. 내가 하는 대로 반응이 오는 일이 재미있었고 나날이 커가는 회사를 보며 뿌듯했다. 헌신하는 만큼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열심히 한 나를 믿었고, 성장하는 회사를 믿었고, 나를 믿어준 대표님을 믿었다.


“열심히 해준건 알지만 아시다시피 회사가 아직은 적자라…”


내게 돌아온 것은 협상이 아닌 통보였다.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연봉 인상이었다. 충실한 예스맨인 나는 그때 처음으로 ‘노’를 외쳤다.


“대표님, 조금 고민해봐도 될까요?”


연봉 인상을 거절한 직원은 내가 처음이었고 대표님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며칠 뒤 대표님과 나는 다시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내가 바라던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협상은 마무리되었다. 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이유로 회사가 아직 적자고 다른 팀 팀장보다 연봉을 더 올려줄 순 없다고 했다. 다만 회사는 새로운 투자가 마무리 단계였고, 다른 팀장들에게는 연봉 외에 스톡옵션이 있었다는 사실은 내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연봉협상 이후로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무언가가 탁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직장인으로서의 답을 찾기 위해 대기업, 스타트업, 이곳저곳을 전전한 7년간의 노력의 끝을 본 것만 같았다. 나는 직장인으로서 성공할 수 없었다. 성공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성공할 자신도 없었다. 다른 길을 가야겠다는 작지만 강한 확신이 생겼다. 지금이 내 인생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몇 백만 원이 오가는 연봉협상이 나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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