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 시험은 2차가 10배는 어렵다는 걸 깨달은 자의 동차 도전기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1차 합격을 확인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는데 언덕을 넘고 나니 눈앞에 태산이 서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왜 하필 1차 시험에 붙어서 이 고생을 할까?’
세무사 시험은 1차와 2차 난이도 차이가 꽤 크다. 체감상 정말 10배는 더 어렵다. 나는 그동안 오직 1차 시험만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기 때문에 2차 시험은 훨씬 어렵다는 것을 2차 시험을 100일 앞두고서야 처음 알았다. 비유를 하자면, 나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3달 뒤에 수능을 보라고 하는 격이었다. 어떤 과목은 문제를 이해를 못 하겠고, 어떤 과목은 이게 대체 내가 배운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온종일 학원에 있었다. 일요일에는 독서실에 갔다. 쉬는 날은 사치였다. 사람이 100일 동안 공부만 하면 체력이 망가지고 정신이 피폐해진다는 것도 몸소 깨달았다. 강의를 듣고 복습을 하면 밤 10시가 되었다. 2차 시험 과목 중 하나인 회계학의 경우 한 문제를 20분 내에 풀어야 한다. 처음 수업을 듣고 혼자 복습을 하면 한 문제 푸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마저도 맞는 문제보다 틀리는 게 더 많았다. 너무 어려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시간은 촉박하고 실력은 부족하고 매일이 좌절의 연속이었다. 왜 1차 시험에 합격해서 이 고난의 중심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을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학원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되지만 괜히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같은 지하철에 타기가 싫었다.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일어나 여섯 시에 을지로행 지하철을 탔다. 운동복을 입고 책을 잔뜩 짊어진 내 모습을 일하는 내 또래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수업을 듣는 건물 맞은편에는 회사원 시절 미팅하러 많이 드나든 빌딩이 있었다. 넓디넓은 을지로 일대에서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혼자 걱정하기도 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후회는 없었지만 그 과정은 너무 초라하다는 것을 이 시기에 가장 많이 느꼈던 것 같다.
3개월의 기간 동안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시험 범위 전체를 다 공부하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학원에서는 나와 같이 시간이 부족한 동차생(1차에 합격하고 그 해 바로 2차를 보는 사람들을 동차생이라고 칭한다. 반면 전년도에 1차에 합격하고, 이번 해에 2차를 보는 수험생은 유예생이라고 부른다.)을 위해 집중적으로 공부할 범위를 어느 정도 정해준다. 시험에 많이 나왔거나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주제 위주로 공부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위험한 도전 혹은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1차 시험에 합격하고 바로 2차 시험을 준비한 이 3개월은 지난 2년간의 수험생활을 통틀어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3개월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하면 여기서 공부를 끝낼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기에 그것을 붙들고 달렸던 것 같다. 그 빛이 아주 희미할지라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이 시기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게 한 원료이자 마약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후에 미련 없이 나의 패배를 인정하고 새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6,7,8월 유난히도 덥고 힘들었던 2021년의 여름이 지나고 9월 초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