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piphany Oct 18. 2022

시험은 내 한계를 마주하는 일

첫 2차 시험날의 기록

시험 주 스케줄표.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공부했었던 일주일


6,7,8 유난히도 덥고 힘들었던 2021년의 여름이 지나고 9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역시 시험장까지 바래다주는 남편의 차에 올랐다. 운전하는 남편을 보면서 ‘ 사람은 결혼해서 공부하는 와이프 뒷바라지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나 했을까하고 생각했다.  고3 시절에 자정까지 야간자습을 하고 나면 버스도 끊기는 시간이라  아빠가 데리러 왔었는데 그때의 아빠와 지금의 남편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10대의 나는 20대의 청춘을 지나 30대가 되어 다시  의지로 책가방을 들러맬  알았을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미래를 계획하지 못했다. 살다 보니 대학에 갔고, 살다 보니 직장에 들어갔고,  살다가  순간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결정에 따르다 보니 수험생이 되었다.  여정에 합격 또는 불합격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영광의 상처만 가득한 나의 시험지ㅎㅎ


세무사 2차 시험은 토요일 하루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된다. 1교시 회계학 1부부터 시작해 다음 회계학 2부, 세법학 1부, 세법학 2부 이렇게 총 4교시에 걸쳐 시험을 치른다. 1, 2교시는 계산형 문제이고, 3, 4교시는 서술형이다. 즉, 1,2교시는 내가 푼 숫자를 시험지에 적어오면 대략 몇 점을 받을지 예측이 가능하고, 3,4교시는 세 달 뒤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내 점수를 모른다. 그저 묻는 말에 부합하는 글을 썼으면 과락은 안 나오겠지 하고 추측할 뿐이다.


고사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1차 시험 때는 미친 듯이 긴장되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리만큼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음 해에 또 2차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1교시가 시작되기 5분 전 감독관이 시험지를 배부했다. 파본 검사를 할 때 시험지를 한 장씩 넘겨볼 수 있는데, 이 때는 어떤 단원에서 문제가 나왔는지 빠르게 파악하는 시간이다. 1교시 시험지를 차근차근 넘겨보니 문제가 짧았고 출제된 주제도 무난했다. 시험 시작종이 치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었다. 무조건 빨리,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1차와 달리, 2차 시험은 주관식이기 때문에 한 문제는 아예 못 풀더라도 다른 한 문제를 정확하게 풀어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1교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쉬웠다.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1차 시험 때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다.


1교시가 무사히 지났으니 가장 걱정인 2교시 과목 회계학 2부만 과락을 넘기면 동차 합격도 가능하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10분 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시험지를 받아서 넘겨보는데 소위 말해 버린 단원(공부하지 않은 단원)에서 절반이 나왔다. 점수로 치면 50점인 거다. 100점 중에 50점을 버리고 50점 만점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좌절스러웠다. 그렇다고 남은 50점을 다 맞을 수 있나? 그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40점 아래의 과락 점수를 받았다. 2교시 시험이 끝났을 때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의 실력을, 내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시험장에서 보려고 적어두었던 필기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눈으로는 3,4교시 대비용 암기노트를 읽었다. 2교시가 이미 과락인데 다음 시험 열심히 봐서 뭐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3교시 시험지를 받았는데 불합격임을 확인사살하는 것만 같은 문제가 나왔다. 4문제 중에 3문제는 동차생에게 시간이 없다고 학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았던 문제들이었다. 학원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시간이 부족한 나에게 공부 범위도 정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남은 한 문제도 제대로 못 풀었을 테니까. 뭐라도 써야 하니 그럴듯하게 소설을 지어냈다. 3교시가 끝나고 너무너무 집에 가고 싶었다.


마지막 4교시는 정신력으로 버텼다. 3교시의 충격이 커서인지 문제가 어떤지 감상할 새도 없이 손이 가는 대로 답을 썼다. 그렇게 아침에 시작한 시험은 저녁이 되어 끝이 났다.



꼬박 1. 세무사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1 시험을 보고 2 시험까지 보는데  1년이 걸렸다. 2 시험을 치고 나니 1년의 공부로 자격증을 받으려고 했던 내가 너무 자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지식은 너무나도 얕았다.  2 시험에 완패했지만 그것이  실력이었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오히려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니 어쩌면 홀가분하기도 했다. 나를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일 때도 있으니까. 나의 상황을 점검했고,  실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을 받아들일  있기에 앞으로 다가올  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감이 잡히기도 했다.


이제 다시 1. 최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준비할  있는 1년의 시간이 다시 주어진 것이다.

이전 07화 왜 하필 1차 시험에 붙어서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