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밤, 꿈에서 어느 나라인지도 모를 마켓을 신나게 배회하다가 깼다. 안온한 나의 방에 비몽사몽 앉아있다 보니 여행을 다녀오는 아주 긴 꿈을 꾼듯한 느낌도 들었다. 바뀐 것들을 보니 꿈이 아니었다. 일주일 정도는 유럽시간으로 10시쯤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고 길에서 핸드폰을 굳이 꽁꽁 깊숙한 주머니에 넣는 것 같은 습관이 남아있었다. 기념품으로 사온 과자들을 가족들과 함께 먹었고 방에는 미피 마그넷이 붙어있다. 유럽에 사는 친구들과의 메시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대 두 달정도 예상하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단 일찍 돌아왔다. 물론 더 머무를수록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좋은 풍경들을 볼 수 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슬슬 무언가에 기여하는 느낌이 다시 그립기도 했다. 그림을 그려준다던지 모종의 생산을 하며 여행을 하는 분들이 부러웠지만 딱히 할만한 건 없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기록만을 남겼다. 여행이 끝나고 회복도 했으니 이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성취감을 느끼는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막상 아무도 보지 않는 여행기 연재조차도 겨우겨우 해낸 것 같지만..)
여행을 가기 직전의 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조금 다친 상태였고 무기력했다. 더 다칠까봐 모든게 강박적으로 조심스럽고 여행조차도 정말 갈 수 있을지 불안했다.
여행을 하며 욕심이 나는 만큼 운신의 폭을 넓히다보니 어느새 꽤 회복이 되었고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체력이 조금씩 좋아져서 나중엔 하루 2-3만보를 걸어도 더 걸을 수 있었고, 아무에게나 하고싶은 얘기가 생기면 곧잘 말을 걸었다. 뭔가 잘못되어가는 게 보이면 대충 넘어가지 않고 수정했다. 날이 갈수록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도 늘었다.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지나가고 괜찮더라. 그러니까 앞으로 뭐가 와도 괜찮아' 같은 마음일까. 이 자체로 여행이 충분히 의미있었다.
얕은 호기심이 많아서 너무 많은 비용을 이동하는 데에 쓰느라 고생을 사서 한 것 같기도 하다. 경제적인 비용 뿐만 아니라 이동을 위해 기차/비행기 시간을 계속 긴장하면서 맞추고,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계속 바꾸는 데 에너지를 썼다. 나는 목적지향적인 사람이라 시간을 지켜야한다던지 하는 목적에 맞추다보면 과정을 즐기는게 어려워지기도 했다. 다음에 여행을 한다면 이동을 최소화하고 진득하게 여행지를 알아가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