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도시의 반짝이는 크리스마스마켓 : 독일 베를린

by 구은서

베를린은 사실상 마지막으로 여행한 도시다. 비행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했지만 그곳에선 잠깐 쇼핑하고 한국 갈 준비만 했다. 베를린은 여행자보다는 독일에 취업한 사람들 이야기에서 많이 접했다. 익숙한 이름인데 본 적은 없어서 궁금했다. 다만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친구가 안예쁘다며 기대를 잔뜩 밟아놓긴 했다.


베를린역에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 오밀조밀하게 예쁜 건물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암스테르담 시내와 다르게, 베를린은 큰 빌딩들이 듬성듬성 서있고 조화라는 건 딱히 신경 안쓴 듯 했다. 서울같기도 하고. 딱히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우중충한 느낌이 들었다. 예쁜 구석이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도시의 규모가 생각보다 더 컸다. 어딜 가든 대중교통을 계속 타야했다.


큰 도시라 크리스마스마켓도 여러 군데에서 열리는 것 같았다. 일단 작은 곳부터 한번 가봤다. 알렉산더플라츠 역에 내렸다. 높다란 텔레비전 타워가 눈에 띄었다. 오밀조밀한 나무부스들이 줄지어 있고 맛있는 냄새가 난다. 크리스마스 장식, 따듯한 목도리, 글뤼바인, 커리부어스트...


알렉산더플라츠에서 계속 서쪽으로 걸어서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걷고 싶었다. 걷다보니 시청 앞에 또 예상치못한 마켓이 보여서 들어갔다. 야외 스케이트장도 있고 가톨릭 사람들이 꾸며둔 듯한 공간도 있었다.


그리고 또 걷다보니 박물관 쪽에 번쩍번쩍한 불빛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발길을 그쪽으로 옮기다보니 또다른 크리스마스마켓이 나왔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거야.


크리스마스마켓은 여러개를 봐도 질리지 않았다. 들어서면 동화마을에 들어선거같은 기분이다. 더 큰 마켓이라고 해서 특별히 좋은건 없고 결국 작은 부스들로 이루어져있어서 부스 하나하나를 구경하는 것이다. 대부분 비슷한 종류의 음식과 물건들을 팔지만 종종 눈에 띄는 새로운 것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춥고 늘 장갑을 껴야했지만 불을 떼워놓은 가게들 근처를 지나다니면 적당히 따뜻해지기도 했다. 보고싶은 사람들을 떠올리게하는 날씨였다. 삼삼삼오오 모여 글뤼바인을 마시거나 소시지를 먹는 사람들을 보며 가족들이랑 같이 이것저것 사먹으며 돌아다니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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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이상 여행을 다니다보니 '혼자 여행 다니는 상태'에 대한 적응은 완벽하게 되어서 베를린쯤 되니 한결 편안한 마음이었다. 큰 도시에서 계속 걷는데도 딱히 아픈데도 없었고 춥지만 않으면 더 걸을수있을것같은 느낌이었다. 한켠으로는 지쳐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렇게 유럽에 잘 적응된 나 자신을 데리고 곧 한국에 간다는게 새삼 믿기지 않기도 했다.


다음날 브란덴부르크문에 가니 여성들에 대한 폭력 반대 시위를 하고있었다. 소울 넘치는 여성들이 노래도 하고있었고..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피켓을 들고있었다. 뭉클해지는 광경이었다. 예전에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파독 간호사 등 한국이들이 베를린에서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다녔었단 이야기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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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젠다르멘 크리스마스마켓을 갔다. 여기가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가봤다. 2유로의 입장료도 있고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공연무대가 있어서 서커스, 노래 등 공연도 하고,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아저씨가 있는 부스, 눈의 여왕이 높은 장대 위에 걸어다니기도 했다. 여기서 슈테판이란 친구를 만났다. 베를린이 고향이긴한데 잠시 와있고 스웨덴 남부에 산다고 했다.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가운데 그의 소개를 듣자니 60퍼센트 정도밖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와 마찬가지로 좀 쉬는 기간을 가지면서 다음 스텝을 고민중이라고 했다.


전날 간 크리스마스마켓에서는 뭐 하나 사먹으려면 뭔지 모르고 먹거나, 일일이 AI에게 물어서 찾아보고 먹어야했다. 그런데 독일인 동행이 있으니 한결 든든했다.


"만델 먹어볼래?" "만델이 뭐야?" "음...영어로 뭐더라. 아몬드! 여기 견과류도 많이 팔아"


이런 식으로 물어봐주고 독일어로 주문해서 같이 나눠먹었다. 달달하게 코팅된 아몬드, 독일식 소시지, 글뤼바인 논알콜(크리스마스마켓 대표 음료인데 술이라 못마시고 있었다. 논알콜이 있을줄이야) 등등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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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과 마지막날 공원 산책도 함께 했다. 원래 궁전도 있고 더 아름다워보이는 공원을 가고싶었는데 기차시간 때문에 제약이 있었다. 브란덴부르크문 바로 옆에 있는 공원을 갔다. 우산을 쓰다 안쓰다 하며 걸었다. 아침에 나올때만해도 분명 파란 하늘이었다고 내가 투덜대자 원래 여기 날씨가 그렇다고 했다. 비가 안온다 싶어서 신나서 텐트 장비를 챙겨 집밖을 나가면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비가 너무 와서 집에 다시 들어오면 또 그쳤던 적도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괜찮다... 라고 해서 엄청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영어를 하다가 단어가 생각이 안나면 가끔 독일어 단어로 말해보는... 그런 친구라 내가 질문을 하려다가도 대답을 잘 들을 수 있을까? 하며 목구멍에서 막혔다. 너무 개인적인가 싶어서 못물어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질문해보고 걔가 알아서 필터링하게 할걸 싶다. 그는 오늘 딱히 계획이 없다면서, 내가 호텔에 가서 짐을 찾고 베를린 역까지 가는 길을 다 동행해줬다. 스웨덴 자연속에 살며 동물을 키우는 친구라 그런지 무표정의 독일인 스테레오타입과 다르게 곧잘 웃었다. 아시아권 나라도 여행해보고싶다면서 한국에 대한 질문들도 하고 내가 한국어로 톡할 때 자음모음이 조합되는 걸 신기해했다. 지하철역에서 내가 서울에는 지하철역 대부분 스크린도어가 있고 역마다 화장실도 있다고 말했더니, 베를린에서 똑같이 한다면 화장실이 노숙자 차지가 될거라고 했다. 아... 그래서 공공화장실에서 돈을 받는건가.. 씁쓸한 단면이었다.



베를린을 이틀동안 돌아본 뒤 여기에 정말이지 살고싶은 생각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가보기를 잘한 것 같다. 가보기 전에는 사람들의 단어로만 유추한 상상 속 도시를 생각하며 '거기서 살아보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가능성을 열어두며 고민할지도 모를 미래의 상당한 시간을 아끼게 됐다. 독일이란 나라에서 늘 로망이었던 크리스마스 마켓도 실컷 봤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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