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준비
항암을 시작하면 구내염이 온다 해서 부드러운 칫솔과 순한 치약, 그리고 향에 민감해지기에 무향 바디워시, 바디로션, 페이스크림을 준비했다.
영양사 선생님이 오셔서 항암 중 피해야 하는 음식과 호중구(백혈구 내 차지하는 비율 50-70%로 세균이 침범했을 때 세균을 파괴하고 방어하는 역할)가 떨어졌을 때 피해야 하는 음식들을 알려주셨다. 하지만 지금 나는 소장절제수술로 저잔사식을 하고 있기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한되어 있다고 하셨다. 다들 항암 하면서 라면이든 피자든 뭐든지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점에서 나는 불리했다.
항암의 가장 큰 부작용은 오심과 구토인데, 이를 그나마 잠재워주는 게 레몬캔디와 얼음이라고 들었다. 친구가 레몬캔디를 사다 준 것이 있었고, 편의점에 가서 컵에 들어있는 얼음을 사 왔다.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무려 40분간 내가 맞을 항암제의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그 설명을 다 듣고 나니 탈모가 가장 착한 부작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머리는 다시 자랄 테고,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거나 목숨을 위협하는 부작용은 아닐 테니. 그래서 머리를 미는 일이 아주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부작용들이 제발 안오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원목실 신부님과 수녀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셨고,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내일부터 항암을 한다는 게 두려워서 그랬을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30년 전, 이모가 자궁암으로 항암치료를 했었다. 외할머니가 간병을 했기에, 외할머니집에서 투병을 했었다. 부모님이 맞벌이 셨기에 언니와 나는 외할머니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 이모가 아파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이모가 점점 말라가고 계속 구토를 하고, 할머니가 한 숟갈만 더 먹으라고 애원하고, 약을 먹어야 한다고 설득하던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렇게 3년을 투병했을까. 많은 이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이모는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나에게 항암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동안 약이 더 좋아졌다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나... 잘 버틸 수 있을까? 잘 먹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구토가 싫어 수술 후 무통주사도 안 누른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겪어보지 않은 두려움이 나를 감쌌고, 이에 나는 심호흡을 하며 ‘나는 다 나았다 ‘라고 중얼거렸다. 투병 중에 이미 다 나았다고 온전하게 믿으면 치료효과가 좋아진다는 글을 읽었다.
처음에는 온전히 믿기가 힘들었다. 다 나았다기엔 내 몸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그래도 세뇌하듯 계속 중얼거렸다. ‘나는 다 나았다. 나는 다 나았다’ 그러니 아주 조금씩이지만 믿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잠이 오지 않는 까만 밤,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중얼거렸다.
나는 다 나았다.
내 몸속의 암이 모두 사라졌다.
저를 치유해 주셔서 미리 감사합니다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