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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토리아 Jul 01. 2024

#13 1차 항암 (1)

대가

 내가 받을 스마일 항암은 3주 항암 + 1주 퇴원, 이런 사이클로 총 6회를 받는다고 했다. 오늘은 그 긴 여정의 첫 번째 날이었다. 항암을 하면 주로 겪는 부작용이 오심과 구토인데 24시간 멀미를 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제발 내가 탄 배가 작은 고기잡이 통통배는 아니길 바라며 첫 항암을 시작했다.

 무섭도록 큰 링거병이 들어왔고 노란 봉투에 쌓여있었다. 나중엔 저 노란 봉투만 봐도 울렁거린다던데 그럴만한 비주얼이었다. 처음 맞는 약은 MTX로 총 6시간을 맞았다. 다행히 맞는 동안은 오심이 없었다. 내가 탄 배가 크루즈는 아니어도 통통배는 아니었나 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6시간이 끝나고, 생각보다 괜찮은 상태에 안도하고 있을 때 구토를 했다. ‘아... 이제부터 시작인가?’ 두려워했지만 그날 밤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구토가 나왔다. 하지만 오늘도 항암을 해야만 한다. 오늘부터 3일간 Holoxan 1시간, E.P.S 1시간, 스테로이드 두 번을 매일 맞는다. 갈수록 독성이 쌓여서 그런지 울렁거림은 심해지고, 나는 울렁거림을 잠재우기 위해 얼음을 물고 있었다. 밥을 거의 먹지 못했기에 엄마가 간호사 선생님한테 아이스크림 먹어도 되는지 허락을 받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시원한 게 들어가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를 줄은.

 다음 날, 가스통이 심해졌다. 항암을 하면서 울렁거려서 병동산책을 덜 한 탓일까? 가스통은 점점 심해졌고, 원래라면 잠시 왔다가 사라질 가스통이 24시간 동안 계속됐다. 누우면 더 아파서 눕지도 못하고 앉은 채로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항암 때문에 힘든데 왜 가스통까지 날 괴롭히는지... 나는 원망이 가득 찬 목소리로 “하느님 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 소리 질렀고,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아파도 병동 산책을 해야지만 가스통이 나아질 거라 했지만 나는 마치 소장수술을 했을 때처럼 아주 조금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배가 칼로 베이는 고통을 밤새 생생하게 느껴야만 했다.


 다음 날, 회진을 온 교수님께서 감염으로 인한 장염이 왔다고 했다. 병원 외부 음식이라곤 얼음과 아이스크림이 전부인데 아마 거기서 감염이 온 것 같았다. 항암으로 인해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서 아주 작은 것에도 감염이 오니 조심해야 한다면서 또다시 금식이 내려졌고, 남은 항암이 미뤄졌다.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먹었던 것들이 나를 더 아프게 하다니... 아프기 전의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이제는 나에게 이렇게 크게 다가오다니... 다시 한번 내가 암환자라는 게 뼈저리게 느껴졌다.

 소장절제수술을 막 했을 때처럼 배를 잡고 허리는 90도로 구부린 채 엄마와 함께 힘겹게 병동을 돌았다. 고통이 너무 컸고, 무엇보다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항암 때문에 힘든데 왜 장염까지 걸려서 날 더 아프게 하는지... 나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고, 산책하기 싫어서 욕을 하는 줄 알았던 엄마는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하셨다. 순간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누가 산책 하기 싫대? 내가 언제 그런 말 했어? 그냥 내 인생이 너무 짜증 나서 그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한테 짜증 내는 내 모습이 너무 미웠지만 감정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따라오지 마.”

 그렇게 얘기를 하고 엉엉 울면서 병동을 돌고 있는데 유리창으로 멀리서 나를 따라오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였다. 불쌍한 우리 엄마. 외할머니 병간호에, 외할아버지 병간호에, 이제는 막내딸 병간호까지... 내가 엄마를 위해서라도 긍정적이고 씩씩하게 투병생활을 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나에게 갑자기 닥친 폭풍우에 몸부림치며 울고 있을 뿐이었다.

 

 운 좋게도 나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했고, 오랜 기간 학생이었기에 방학 때마다 배낭을 메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고, 조금씩 인정도 받고 사랑도 받았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잘 극복해 왔기에 나는 내 삶이 좋았고, 내가 좋았다. 그런데 지금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눈두덩이는 훅 들어가고, 단기간에 못나게 빠진 살들 때문에 영락없는 암환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다시 내가 되고 싶었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친구들을 만나 농담을 하고, 극장에서 내가 쓴 공연이 올라가는 걸 지켜보고, 글자와 산책하던 내가 다시 되고 싶었다.

 또다시 ‘왜의 지옥’에 빠져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을까’ ’ 나는 왜 아파야 할까 ‘ 와 같은 생각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안다. 이런 생각은 나를 더 병들게 할 거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이런 생각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항암을 잘 받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안다. 너무나 잘 안다.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런데 어떡해. 나는 아직도 슬픈데.

 나는 아직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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