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연필을 잡고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첫마디는 대부분 습관적인 한숨이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고1 학생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자, 한숨 쉬지 말고 시작해보자 다독여본다. 고등학교 입학을 한지 첫 주가 지났다. 아이들은 또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면서 성적 상승까지 추구해야 하는 바쁜 삶을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실감 나는 건 아무래도 석식과 야자, 그리고 늦게 오는 학원일 거다. 평일 저녁 8시 30분에 만난 아이들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 선생님, 중학교 때만 해도 8시면 마쳐서 집에 갔는데.. 이제 시작하면 집에 언제 가요?
보통 고등부 수업은 평일 저녁 늦게, 주말에 하는 경우가 많다. 야간 자율학습이 많이 완화되어서 정말로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경우도 많아졌다. 신입생 티가 나는 아이들이 툴툴 거리지만 할 건 해야 하니까 얼른 시작하자고 아이들을 독려한다.
전쟁 같은 일주일이 끝나고 금요일 밤에 환호하는 직장인 친구, 가족들의 메시지에 나는 좋아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등부 강사는 주말에 쉬지않는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주말에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고등부 학원에서는 보통은 평일 하루를 쉬고 주말에 둘 다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번 학기 시간표 조정이 적절히 가능해서 토요일까지 수업을 하고 일요일에 수업이 없다. 오늘이 바로 그 일요일이다.
토요일 아침 10시부터 몰아친 고1, 2,3 수업을 끝내고 나니 저녁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은 놓쳐버렸다. 말 한마디도 하기 싫은 몸을 이끌고 책상 정리를 한다
달력을 보니 3월 23일 모의고사 날짜가 보인다. 고1은 첫 시험이라 중요하고, 고2는 예비 고3 이라 시험이 중요하고(?), 고3은 고3이라 중요하다. 무슨 소린가 싶지만 그냥 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신은 지문 업데이트가 많고 빠른 데다 교과서마다 본문이 달라서 부지런히 수업 준비를 해야만 매끄러운 수업이 가능하다. 다른 과목은 잘 모르겠다. 영어가 유독 그런 것 같긴 하다. 일요일은 수업이 없지만 퇴근하는 길에 주섬주섬 자료들을 챙겨 든다. 수능특강 영어, 수능특강 영어 독해, 기출 모의고사, 이번 신규 학생이 다니는 학교의 새로운 교과서까지. 들고 간다고 한 번에 다 볼 순 없다. 몸은 아쉽게도 하나니까. 하지만 일단은 들고 간다.
토요일 퇴근하고 나서의 기억은 없다. 밥 먹고 늘어져있다 보니 어느덧 일요일 아침이다. 태생이 누워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사부작 집에서 해야 할 일을 해놓고 보니 오후 한 시. 밥도 먹었고, 청소도 했고, 뭘 더 해야 하지? TV도, 영화도, 유튜브도 보고 싶은 건 없다. 그렇다고 나가고 싶지도 않다. 코로나는 나를 집에 가두어놓았다.
한 달에 고작 4번있는 주말 중 약속이 없는 일요일. 아무거나 해도 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날. 뭘 해야 잘했단 소리를 들을까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 책상에 앉는다.
휴, 아이들과 똑같은 한숨을 쉬는 스스로를 보고 또 그게 웃기다. 아이들이 한숨 쉬면 선생님들이 격려해주는데 선생님이 한숨 쉬면 누가 격려해주지? 이런 무료함도 글감이 될까 하는 생각에 잠깐 브런치를 켰다. 반복되는 일상이 나에겐 지루하지만 또 누군가에겐 공감이 될 수도 있다고 믿으면서 짧은 글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