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학원 영어강사로 살아남기 20
탕, 달리기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은 신호탄이 있다. 강사들만 들을 수 있는 그 소리. 바로 내신 대비의 시작이다.
정작 아이들은 크게 감흥이 없다. 학생들에겐 평소 하는 수업이나 내신 대비나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내신 대비는 호와 불호가 확실하다. 학생들에게도 강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개인적으로 불호다. 힘들어서 불호가 아니라 재미가 없다. 나름의 큰 그림을 그리고 3~6개월 실력 향상을 볼 수 있는 본 수업과는 별개로 내신 대비는 정해진 범위를 뱅뱅 돌기만 한다. 중등 같은 경우에는 범위가 많지 않아서 한 달 내내 본 지문을 보고 또 본다. 고등의 경우 범위가 너무 많아서 중하위권 학생들은 두 바퀴 돌기도 벅차다. 암기 위주의 공부를 한 달 내내 하다 보면 이게 영어 과목인지 "암기"라는 과목인지 헷갈릴 정도다.
강사 위주로 글을 써보자면 내신 대비는 하나의 중요한 고비다. 수시의 비중이 정시를 넘어선 지 오래되었고 학교 내신은 대학을 가기 위해 너무 중요해져 버렸다. 학교별로 범위도, 난이도도 다른 건 고사하고 일단은 아이들의 학원 재수강률은 내신 대비에 달려있다. 마다 다르겠지만 중등 같은 경우에는 가차 없이 시험 한 번에 학원을 옮겨버리고 오히려 체감상 적응 못할까 두려워 떠나지 못하는 건 고등부다.
몇 년 전 처음 내신 대비를 할 때 한 반에 같은 학교로 내신 대비를 시작했었다. 지금 하는 내신 대비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다. 중학생 3명, 다 같은 학교에 같은 학년. 시험 범위는 고작 2단원. 문제는 그 아이들이 공부를 별로 할 생각이 없는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이었다는 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경험도 있었다. 내 할 일 하기 바빠서 한편에 묻어뒀던 기억을 꺼내본다.
강의식 수업을 진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가방도 책도 필통도 잘 챙겨 오지 않는 학생들이었고 숙제는 할 생각이 없어서 내신 대비 교재를 교실에 두고 다녔다. 단어 시험도 본문 암기 시험도 심지어 개인 문제 풀이도 불가능했다. 나는 처음 일을 시작한 학원이었고, 나보다 학원을 더 오래 다닌 그 학생들은 내가 초임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다. 초반 3일의 기싸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늘 해야 할 분량을 다 하면 10분 일찍 마쳐준다는 미끼도 던져보고, 칭찬도 해가며, 때로는 달래 가며 수업 진행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수업 자체가 힘들었다기보다는 앞으로 강사생활을 하면서 이런 내신 대비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더 아찔 했던 것 같다.
교실에서는 학생들과의 줄다리기는 물론 모르는 내용을 어르고 달래 가며 진행하느라 3시간을 내리 떠들어야 했다. 교무실에 오면 중등부는 내신성적에 따라서 바로 퇴원 생긴다고 최선을 다하라는 선임들의 다정한(?) 충고가 따랐다. 부담을 느낄만 했다. 대견하다 그시절의 나. 그리고 그걸 지금도 계속하는 지금의 나도.
중등 최상위권은 영어 내신 대비 한 달 기간에 문제집을 3~4권 풀어낸다. 그들에 비하면 이전의 그 기억은 흐릿해질 만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시험 하나에 절절맬 필요가 없었다. 어찌 되었든 올 학생은 오고 갈 학생은 간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게 된 이 위대한 우연을 그 학생이 알지 못했으면 그 또한 지나갈 뿐이다.
중간고사 대비를 끝내면 한 학기에 절반이 간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한 학기가 간다. 그걸 한번 더 반복하면 일 년이 간다. 강사식으로 1년을 정의 하면 다음과 같다.
강사의 1년은? 4번의 시험과 2번의 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