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미술관을 나오면 바로 맞은편에 밸리 갤러리(Valley Gellery)가 보인다. 입구에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면 배네세 하우스 뮤지엄 티켓(1,300엔)을 살 수 있고, 밸리 갤러리 입장료도 포함되어 있다.
밸리 갤러리는 말 그대로 골짜기에 있는 야외 미술관이다. 너무너무 더웠지만 우산을 쓰고 오솔길 따라 걸어가면 무수한 스레인리스 미러볼이 있는 연못이 나온다.
미러볼이 둥둥 떠있는 연못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알고 보니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으로 <나르시스 정원>이다.처음에는 미러볼이 연못 위랑 풀밭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자연에 반짝반짝 광이 나는 미러볼이라니. 어찌 보면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그림에 있는 점들이 미러볼로 형상화된 느낌이 들었다.
작품명이 왜 나르시스 정원인고 생각하다가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것처럼 미러볼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연못과 미러볼 속 내 모습을 보니 나르키소스가 떠오를 만했다.
바람이 불면 미러볼이 조금씩 움직인다
나르시스 정원 바로 뒤에는 수십 개의 불상이 모여있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처럼 일본 시코쿠에도 순례길이 있는데 '오헨로'라고 한다. 오헨로의 88개의 사찰을 돌면서 그 옛날 시코쿠의 고승처럼 지팡이를 들고 사찰을 돌아다니는여행객이 많다고 한다. 작가는 88개의 사찰처럼 나오시마에도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이 88개가 있음을 조사하고 인근 데시마 섬에서 나온 불법 산업 폐기물을 소각해서 남은 찌꺼기로 불상을 만들었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인간이 경외하는 불상을 제작한 점이 오묘했다.
88개의 불상
오솔길을 따라 또 올라가면 작은 콘크리트 건물이 보인다. 역시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이다. (이제 '콘크리트=안도 다다오'가 절로 생각남) 건물 안에도 쿠사마 야요이의 미러볼이 이곳저곳 흩어져 있다.
햇빛받은 미러볼
미러볼을 계속 보면 나에게 빠져들지도
밸리 갤러리를 나와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을 가던 중 오른쪽 샛길 따라 내려가니 숲 속에 이것저것 조형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덥지만 궁금한 것은 또 못 참지.
돌 사이로
욕조가 있다
엥?! 풀밭에 웬 욕조가?
실제로 사용가능한지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사용가능하단다. 매주 일요일 베네세 하우스 호텔에 묶는 투숙객 한 팀만 신청을 통해 프라이빗한 환경에서 약초에 몸을 담그는 목욕 경험을 할 수 있다. 수영복을 입어야 하며, 몸에 문신이 있으면 사용이 불가하다.
작품의 이름은 <Cultural Melting Bath>로 풍수지리에 영향을 받았다. 실로 배산임수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욕조 뒤에는 숲이 있고 욕조 앞에는 바다가 있었다. 인간과 서양의 물건인 욕조가 자연과 동양의 공간인 나오시마 풀밭에 위치한 것이 실로 문화적으로 융합된 상황이 아닌가. 비밀의 정원에 나오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곳이다.
뒤는 숲이요
앞은 바다로다
욕조 앞으로 조금만 걸어 나오면 해변이 나온다. 프레임 안에 하얀색 셔츠를 입고 긴 생머리의 여성이 사색하고 있는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왠지 모르게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생각났다. 시공간이 멈춰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