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우울증 극복기
내가 이래 봬도 상담심리를 공부한 여자라고요!
내가 이래 봬도 한때 놀 만큼 놀아본 여자라고요!
내가 이래 보쇼! 누가 봐도 우울증과는 거리가 멀게 생긴 한량, 아니면 날라리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전 ‘번아웃 증후군’ 진단을 내렸던 나의 주치의께서, 이번엔…
“아이고 김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이번 달엔 좀 늦으셨네요.”
한결같은 표정, 한결같은 활기.
6년 동안 그분은 늘 내 편이었다.
어느 날엔 내가 이렇게 말했다.
“5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잘하셨어요. 이렇게 멋진 여자를 놓친 그 사람이 안타깝네요.”
또 어느 날엔—
“일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매일 TV만 보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요.”
“잘하셨어요. 내일 굶어 죽을 거 아니라면 쉴 땐 쉬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엔—
“엄마가 늦잠 잔다고 잔소리해요.”
“잘하셨어요. 잠 못 자서 병원 다니는 사람한테 늦잠이 웬 잔소립니까. 어머니께 제가 한 말씀드려야겠네요.”
또 어느 날엔—
“이제 정말 취직을 하든 뭘 하든 해야 하는데요, 글 쓰는 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요. 공부도 싫고 의욕이 없어요.”
“잘하셨어요. 400페이지 장편소설을 완성하셨잖아요. 지금은 몸이 ‘쉬자’고 말하는 중입니다. 번아웃 증후군입니다.”
진지했던 어떤 날도 있었다.
“요즘 너무 걱정이 많아서요. 술 없이는 하루를 넘기기 힘들어요. 이거… 알코올 의존증 아니에요?”
“지금 당장 어딘가 다쳤는데 병원에서 ‘한 달간 금주’하라면 참으실 수 있어요?”
“당연히요. 전 의사가 하지 말라는 건 절대 안 해요.”
“그럼 의존 아닙니다.”
“그래도 가능성은요?”
“숙취로 고생해도 다음 날 또 술이 당겨요?”
“아뇨~ 이제 나이도 있고, 숙취 있으면 며칠은 꼴도 보기 싫어요. 망각의 동물이다 보니 각종 이벤트가 생기면 또 술을 찾게 됐지만..”
“그럼 아닙니다. 의존증은 그 숙취가 싫어서, 그걸 잊으려고 또 마시거든요.”
그렇게 나의 모든 불안함의 끝에 그분의 명쾌한 답이 준비되어 있었고. 나는 짧은 면담을 마치고 늘 가벼운 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저는 반려견 말고 각종 몸의 질환, 쓸데없는 걱정, 근심까지 키우고 있습니다.
잠은 자야 하니까 꾸역꾸역 병원엔 갔고, 선생님은 또 한결같이 저를 반겨주셨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엔 선생님께서 뜻밖에도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에서 시선을 거두고 손을 앞으로 모으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mmpi 하신 지 얼마 안 됐더라도 지금 바뀐 상황이 어떤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지는 모르니까 다시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봤을 땐 우울증인 거 같은데..”
읔.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우울증은 아니더라도 우울감이 있다.. 이 정도는 2학년 1학기 때 배웠던 이상심리학 책을 몇 번 뒤적이니 스스로 진단이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늘 “잘하셨어요” 만 외치시던 그분 입에서 그 단어를 직접 듣자니, 묘하게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또 하나의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키우고자 결심했습니다.
열흘째 낫지 않는 기침, 후각상실, 두통!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극도의 무기력!
그러나 의사의 말도 안 듣고, 처방약도 거부합니다!
이것은.. 똥고집인가, 아니면 인체의 신비를 실험하고픈 과학자의 광기인가?
어쨌든 저는 이렇게 하루하루 각종 ‘병’을 우쭈쭈 하며 키우는 중입니다.
자! 방구석 오지라퍼가 한 말씀 올립니다.
저번 주 연재도 몸이 아파 거른 바 있사오나,
저는! '자연치유 주의자'로서 저만의 방식으로 이 병들을 물리쳐볼 계획입니다.
실험 기간은 3주로 잡았습니다.
만약 2주 후 정말 기침이 멎고, 후각과 미각이 돌아오고, 이 서글픈 고립감에서 해방된다면?
‘김작가표 우울증 극복 레시피’ 대공개 들어갑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연재는 사라지거나 중단되겠죠. 흑흑...
두둥...
자! 레시피 그 첫 번째.
대청소 시작하겠습니다. 빠밤!
아~ 내가 벌써부터 너무나 궁금해!
우울증 극복 보고서는 2주 뒤,
간결한 리포트 형식으로 제출 예정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 그때까지 여러분의 모든 불운을 전부 저에게 토스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의 모든 불운을 빨아들여 믹서기에 갈아버리겠습니다.
"모든 고난과 환난이여 내게로 오라 다 씹어먹어 주겠다."
우울증이라는데 왜 이렇게 잔뜩 독이 올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