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아내들에게 공공의 적이 됐던 날.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 주세요

by 월하수희

2년 전 이맘때, 그땐 우리 초등학교 단톡방이 꽤 활성화돼 있을 때였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인해 끝나긴 했지만..


자초지종을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만한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고 어쩌다 그 단톡방에서 그 일이 알려지게 됐다.

난 살면서 그때 두 번째로 죽을 결심을 했다.


누구에게도 죽겠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나에게 벌어진 일이 워낙에 큰 일이었는지라 친구들은 고맙게도 돌아가며 나의 생사를 확인하러 집에 찾아와 주었다.

낚시를 데려가는 친구도 있었고, 김밥을 만들어 오는 친구도 있었고, 떼거리로 몰려와 밥을 먹이고 노래방을 데려가 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게 죽을 만하면 나를 살리고 오늘은 죽겠지 하면 또 와서 나를 살렸다.


그중엔 여사친도 있었지만 남사친도 많았다. 미혼이 둘, 나머지는 다 유부남이었다. 당연히 그런 그들이 꾸역꾸역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이 거슬렸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내 앞에서 아내들과 통화를 했다. 그중 한 친구는 나와 차 안에서 스피커폰으로 통화도 했다.

“응, 지금 수희 만났어. 다른 애들 데리러 가고 있어.”

너무나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어, 자기야 아까 그분 목소리 너무 안 좋더라 잘 위로해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와.”

전화를 끊고 친구가 말했다.

“아까 너한테 오기 전에 너랑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거 와이프가 들었거든 너 목소리 다 죽어간다고 걱정 많이 하더라고.”

세상에! 이렇게 은혜로운 분이 계시다니 마음 씀씀이가 태평양이구나! 정말 고마운 마음에 그 집으로 소고기도 보내고 아내에게 비싼 화장품도 선물했다.


나는 항상 유부남 친구들이 올 때면 와이프한테 허락받고 온 거냐고 물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너무 이해심이 넓은 좋은 아내들을 만났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1년이 흘러 그들 중 하나의 딸 돌잔치 날이었다.

그날 나는 참 많은 걸 깨달았다.


변할 수 없고 변하고 싶지도 않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 만의 잣대로 재단하고 편견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타인에 대해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겠다는 백기를 든 순간이었다.


친구는 형편상 큰 뷔페 어느 한 자리를 예약해서 친구들을 불렀고, 난 약속시간에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나 보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나도 내 꼬라지에 대해 생각이라는 걸 꽤 많이 하고 간 거 같다.


옷방을 아무리 봐도 날티나고 튀는 옷들밖에 없었다. 최대한 내 몸을 가리고 가면 되겠지 싶은 생각에 장례식장도 아닌데 목까지 올라오는 긴소매 티셔츠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치마 앵클부츠를 신고 갔다. 그 위에 라이더 재킷, 그마저도 튀는 것 같아서 들어가자마자 벗어 버렸다.


친한 여사친이 혼자 앉아있는 걸 봤지만 눈인사만 하고 먼저 주변 친구들에게,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아내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눈을 마주치고 허리를 숙여 모두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한 것은 오로지 내 쪽이었다. 앉아서 위아래로 흘기듯 쳐다보더니 이내 자기 접시나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너무 민망해 나는 곧바로 접시를 가지러 갔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잘못 본 건가? 내 인사를 못 들은 건가?’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생각들 때문에 나는 접시 한가득 뭘 담아 온 지도 모르게 산더미처럼 음식만 쌓으며 쉽게 자리에 돌아가지 못하고 벵글벵글 뷔페를 돌고 있다가 더 이상 접시에 올라갈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닫고 늘 걷던 데로 내 걸음으로 또각또각 자리로 돌아왔다.


내 키는 172, 힐을 신었으면 180은 돼 보였겠지? 그래서였을까 돌아오는 길에 또 그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그만해 김수희! 자격지심이야!’ 속으로 나를 달래고 애써 웃으며 그나마 가장 편한 여사친 앞에 접시를 놓으려던 그 순간 혼자 음식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친구가 난데없이 소리쳤다.


“맞아요! 내 친구 모델이었어요. 그래서 원래 저렇게 걸어요.”

한 친구의 아내를 쏘아보며 아주 큰 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다시 다른 여자에게 훽하니 고개를 돌리더니 또 이어 말했다.


“성형한 거 맞아요. 근데 성형해서 망한 케이스예요.”


분위기가 그야말로 오징어 게임 중에 영희 앞에 모인 선수들처럼 모두 다 얼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장부 같았던 내 친구는 자기 할 말을 하고는 모두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밥을 퍼먹었다.

나는 입을 쩍 벌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이 친구의 대사를 보아하니 굳이 캐묻지 않아도 내가 이 자리에 오기 전 그들이 무슨 말을 쑥덕댔는지 대충 알겠다. 고마운 마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꽁꽁 싸매고 왔는데 어느 포인트에서 흉을 봤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아마도 내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앉지 않아서인지 그 친구를 의식하지 않고 대놓고 아내들끼리 내 험담을 심하게 한 것이 문제였나 보다.


“얼굴 다 뜯어고친 거 맞죠?.”

“가슴도 한 거 같은데?.”(얼굴 밑으로는 안 했거든요?)

“자기가 더 예뻐, 자기는 자연미인이잖아.”(00이한테 들었어요. 눈이랑 코하셨다면서요.)

“어머, 언니가 더 예뻐요. 호호.”

“누가 보면 모델인 줄”

“그러게, 패션 무대라도 도는 줄 아나 봐 하하하.”


내가 오기 전까진 데면데면했던 그들끼리 갑자기 ‘나’라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 삽시간에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급 친해진 걸 넘어서 드라마에서나 보던 조리돌림 하는 걸 조용히 듣고 있던 내 친구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우리 집에 와서 그날의 일을 조곤조곤 얘기해 주던 내 친구 다시 상기해도 열받는지 일어났다 앉았다 얼굴도 붉으락푸르락 해졌지만 나는 오히려 머리가 차가워진 기분이었다.


“내 걸음이 그렇게 이상하냐?.”

친구는 기습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당황했다.

사실 여자들은 하이힐을 신고 걸을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뷔페같이 바닥이 미끄러운 데서는 더욱더 그래야 했고, 나처럼 키가 큰 여자는 좀 더 그 모습이 과장되어 보일 수 있단 말이다.


“내 옷차림이 그날도 튀었어?.”

친구는 이번엔 자지러지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내가 본 중에 젤 얌전했어. 그보다 어떻게 더 얌전하게 입고 오냐? 근데 그..”

친구의 눈이 허공에 멈췄다.


“뭐야 그냥 말해.”


“그게.. 그.. 옷이. 다 가리긴 했는데... 그.. 뭐랄까? 이렇게, 맞아, 이렇게 나처럼 펑퍼짐하진 않잖아.”

친구가 자신의 헐렁한 청바지, 3XL티셔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때 난 생각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렸다.

남들 속에 편하게 섞여 살려고 굳이 평범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있나?

남들처럼 걷고 남들처럼 입고, 남들 따라 하면서 사는 게 내 인생이야?

아니, 차라리 욕을 해라.


그리고 그 후-그때까지 그렇게 연락이 잘되고 유지가 잘되던 단톡방도 조용해지고 한 명씩 나가기 시작하자 그 꼴 보기 싫어 단톡을 없애버렸다. 한두 명씩 미안했다며 자기 아내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 친구도 있었다.


이해한다. 무조건 가족이 먼저지, 가정의 평화를 깰 생각 전혀 없으니까 앞으로 연락 안 해도 된다. 이것들아! 잘 살아라.

도 내 멋대로 잘 살 거다.

***

어떤 불합리한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어떤 여지를 준거 아니에요?

당신이 어떤 차림의 사진을 올려서 그런 거 아니에요?

당신이 어떤 스타일이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면 어쩔 건데요? 제가 늘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아시나요? 징글맞게 대쪽 같은 자존심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아세요? 타협도 없고 빈틈도 없습니다. 그런 제가 겉으로 봤을 땐 괜찮아 보일지 모르죠, 독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도 있을지 몰라요.

이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홀로 견뎌내는 아픔을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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