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 인생 참, 꽃 같구먼

발음 주의

by 월하수희

시들시들 이렇게 시들다 기어이 내가 말라죽지...

그래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내 기꺼이 받아들이리.

바싹 말라죽어 이 땅의 거름이라도 되어주리라.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 애초에 내가 무엇을 갖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 어떤 시간에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을 목표로 오늘을 채웠는지 새하얗게 지워졌다.


그저 그는 나의 짧지 않은 인생 아주 작은 틈,

그 사이를 잠시 다녀갔을 뿐인데,

나는 바보처럼 앞으로 누구와 무엇을 하면 웃으며 살 수 있을지... 목적도, 의미도 없는 텅 빈 하루가 두렵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름시름 앓는 소릴 하며 말라죽는 자연사를 위해 아무것도 아닌 채로 시간을 흘리고 있던 어느 날 계절은 막무가내로 아래와 같은 봄을 데려왔다.


“띵동”

문자메시지: 귀하가 신청하신 국가자격증 시험일은 0월 00일입니다.

“띵동”

문자메시지: 이번 달 카드 청구액은 0000000원입니다.


부르르르르~~~~~


그렇다! 김수희는 꽃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끝에서 다시 꼼지락거리며 억지로 싹을 틔운 나는, ''이었다!

카드 명세서와 자격증 시험 알람이 동시에 날아오던 순간,

‘죽고 싶다’는 심상에서 빠져나와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에 봉착하여 제정신이라는 것을 챙기게 되고 넋 놓고 흘려보낸 시간을 바쁘게 주워 담기 시작했다.


어떤 꽃으로든 다시 피어나야 하기 때문에.


지금 막 피고 진 꽃은 불꽃이었다.

간질간질, 설레며 시작한 사랑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가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꽃이란 그렇게 한 계절의 틈, 잠시 피어올랐다가 긴 시간을 버티고 버텨 시들고 바스러진다.

그러니 내 인생도 참, 꽃 같다. (발음 주의)


나는 일생을 남을 위해 피고 지었다.

누군가 봐주기를, 누군가 꺾어가 주기를, 잠시 누군가의 식탁 위에서 향기를 내다 버려질 것을 알면서도 나는 순수하게 고개를 들고 허리를 세워 한순간 활짝 피어났다.


그래도 내 길 위에 흩어진 시든 꽃잎들이 가엾지 않다. 후회하지 않는다.

한때라도 화려하게 피어나, 나로 인해 누군가가 찬란히 웃어주던 그 미소를 간직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모두 다 아름다웠다. 지나간 내 사랑들….


다음엔 어떤 꽃을 피우시려고 이렇게 바싹 태우셨나?


돌이켜 보니 어느 밤, 커튼을 움켜쥐고 달을 향해 울며 기도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쪽팔린다.

그러나 그 기도는 진심이었다.

“다시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요. 잊게 해 주세요. 제발 모든 기억을 지워주세요.”

며칠 밤을 그렇게 기도했다.

앗, 유레카!

그 기도가 이루어진 것인가? 이 글을 쓰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이것은 하늘이 현실로 압박을 주며 내려준 응답일지도 모른다.

-사랑? 그까이 거 대충 지워주마!-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넘치는 카드값, 부족한 머리, 촉박한 시험 일자… 모두 감사합니다!


어쨌든 김수희의 한때도 그렇게 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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