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포온옥:금기된 주술의 기록

5회:변개(變改) : 뒤바뀐 생(生)의 기록

by 월하수희

병원 대기실,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마스크를 벗으며 나왔다.

“시술은 성공적입니다. 염려 마세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울먹이며 정신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닙니다, 고개 드세요. 아버님, 따님이 살리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따님이 현장에서 즉시 흉부 압박을 시작해 골든타임을 벌어주신 덕분이에요. 보통 이런 상황은 발견이 늦어 손도 못 쓰고 변을 당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천운입니다.”

의사는 안심시키듯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갔다.


폭풍 같은 밤이 지나고, 병실 창가로 스며든 아침 햇살보다 먼저 나를 깨운 것은 아빠의 투박한 손길이었다.


“내 새끼가 또 날 살렸네. 고맙다, 서희야.”


아빠의 메마른 손이 내 머리를 토닥였다. 목이 메어 대답 대신 아빠의 손을 꼭 맞잡았다.

시큰한 눈을 비비며 병실을 나선 나는 서둘러 가방을 뒤져 그 불길한 시반을 꺼냈다.
2026년 8월 1일 부친상(父親喪)-김서희
제발, 그 엿 같은 ‘부친상’이라는 글자가 그대로 박혀 있지는 않기를.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친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어라?”

먼저 펼쳐진 과거의 시반에서 [부친상 5일장]이라는 글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깨끗이 지워진 자리 위로, 생경한 새 문장이 돋아나 있었다.

[부친과 개경행(開京行)]???


“돌아가셨어야 할 부친과 개경을 갔다? 그럼 내거는?.”

난 자연스럽게 김서희가 쓰여있던 시반을 내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소름 돋는 변화에 서둘러 내 현재의 시반을 확인했다.


'역시 내 것도 변했어!'


아무것도 없어야 할 8월 1일 날짜아래 이번엔 핏빛처럼 붉은 먹색으로 단 한 단어가 박혀 있었다.


[집행(執行)]?


“집행...? 뭐야, 이 심란한 단어는? 이게 진짜 교수님께서 말한 집행장이라도 된다는 거야?”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생각은 길게 할 필요도 없었다. 그 노무 사과상자! 거기서 문제가 나왔으니까 답도 거기에 있을 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나는 홀린 듯 스마트폰을 켰다. 단연코 시선을 강탈했던 세 권의 고서, ‘현포온옥(玄圃溫玉)’이라는 기이한 방술서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분명 세 권이나 존재했고, 인쇄한 듯 정교한 서체는 목판본을 그대로 옮긴 필사본이 틀림없다고 확신했었는데 검색 결과가 없다고?...'


여기에도 없어? 저기에도 없어? 다급한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다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손바닥이 부르르 떨리며 화면에 전 팀장이라는 세 글자가 떴다.


'아이, 저승사자보다 무서워 지금 몇 시지? 벌써 열시잖아!.'

“여보세요 팀장님, 저기, 저 죄송한데..”


“김서희 씨, 어제 선본 남자랑 오늘 결혼이라도 하는 겁니까? 청첩장이랑 사직서랑 같이 등기로 보내세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리고 최작가님껜 서희 씨가 따로 전화하세요 오늘 회사로 올필요 없다고, 그럼 이만.”


"아 맞다, 최 작가님 탈고가 오늘이었지!"


웹소설 시장에선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그건 플랫폼의 생리와 맞지 않았을 뿐 그의 문장에는 묵직한 힘이 있었다.

특히 해박한 역사 지식에 기반한 팩션(Faction)들은 종이책으로 나왔을 때 진가를 발휘할 원석이었다.

정식 출간 계약서 한 장 내밀지 못한 출판사 말단 직원의 호기였지만, 나는 그를 찾아가 매달렸다.

"이 글은 모니터가 아니라 종이 위에서 숨 쉬어야 한다"고.

그 무모한 제안에 작가님은 인생을 걸었다. 반년 동안 기존 원고를 통째로 엎고 500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을 새로 써 내려간 것이다.

내 기획안이 반려된다면 그의 반년은 물거품이 된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전 팀장 앞에 가서 애원하듯 매달렸다.


"팀장님, 지각한 건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 작가님 원고는 팀원들도 다 인정한 거잖아요. 팀장님께서도 분명..."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최형택입니다."


"어머! 최 작가님! 이쪽으로 오세요. 서희 씨, 팀장님, 작가님 오셨어요!"


'아, 망했다... 나 때문에 작가님 원고까지 엎어지면 어떡해.'

자책하며 고개를 숙인 순간, 미동도 없던 전 팀장이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문가로 향했다.


"뭐 합니까? 담당 편집자 안 들어오고?"


"아, 네? 저요? 네! 갑니다, 가요!"


'담당 편집자? 아싸! 최 작가님, 작가님이 절 구원하셨네요!'


회의실 안은 벌써 술렁이고 있었다.


"세상에, 반전인데? 역사만 주야장천 파길래 나이가 좀 있을 줄 알았더니... 완전 아이돌이잖아?"

"그러니까요. 얼굴 소멸 직전인데? 인스타 마케팅 돌리면 대박 나겠는데요?"


'다 들린다고요, 이 주책바가지 언니들아! 하긴, 나도 얼굴 보기 전까진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먼저 이 예의 바르고 얼굴도 '바르게' 생긴 최형택 작가가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뿌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데, 그 솔방울 만한 눈이 나를 향했다.


"김서희 씨, 서희 씨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간의 고생이 떠올라 애틋한 눈빛으로 화답하려던 찰나, 전 팀장이 그 사이를 칼같이 베고 들어왔다.


"큼! 흠! 서희... 씨? 작가님! 불편하게 서희 씨가 뭡니까 그냥 앞으로 편하게 '김 대리'라고 부르세요. 하하하!"


'누가 봐도 수상스러운 웃음은 일이라 그렇다 치고, 김대리? 내가 대리라고?'


"대리요? 팀장님, 저 승진했어요? 언제요?"


내 물음에 전 팀장의 눈썹이 경련하듯 파르르 떨렸다.

고개를 살짝 돌린 그가, 복화술이라도 하듯 입술만 간신히 달싹이며 짓씹듯 뱉어냈다.


"지금... 방금."


"방금? 정말요? 대리?"


"그래, 인마. 방금 승진했다고! 그러니까 제발 그 입 좀...!"

전 팀장은 뒷말을 삼키며 바들거리는 입술을 찢어 귀에 걸쳤다.

어안이 벙벙한 나를 보며, 최 작가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승진 축하드려요, 김. 서. 희. 대리님."


세상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을 한 글자씩 꼭꼭 씹어 발음하는 최 작가.

그를 바라보는 전 팀장의 표정에서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살기가 느껴졌다.

겨우 유지하던 전 팀장의 비즈니스용 미소는 순식간에 증발했고,

그는 전장에 나선 장군처럼 날 선 눈빛으로 최 작가를 쏘아봤다.


'남의 이름 갖고 왜 둘이 기싸움을 하고 난리야?, '


"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김서희 대리님"


불쑥 내밀어진 최 작가의 손. 그런데 왜 하필 왼손이었을까? 의아함은 찰나였고,

나는 생각 없이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악!”


‘설컹!’


손목을 조여 오는 차가운 사슬의 감각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늘한 금속성이 피부를 파고드는 섬뜩함에 반사적으로 손을 떼어냈다.


“서희 씨, 아파요?”

“서희 씨, 괜찮아요?”

동시에 두 남자의 손이 내 양어깨를 짚었다. 당혹감과 걱정이 뒤섞인 두 미남의 시선이 쏟아지는 이 찰나의 순간을, 찰칵! 하고 후두엽을 두드려 해마 깊숙이 저장했다.


‘내 죽을 때까지 이 순간을 잊지 않으리!’


"아, 네… 전기가… 전기가 올라서… 하하…"


그렇게 그를 보내고, 다시 조용해진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뭐지? 사슬이 암컷인가? 남자 손을 잡으면 발광하는 거야?
어쨌든 팀장님께 이 상황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 시반.

시반을 보여주는 거야. 이걸 보여주면서 이 모든 일을 설명하면 전 팀장도 이해하지 않겠어?’


나는 전 팀장의 책상 위에 시반을 담은 봉투를 슬그머니 올려두며 입을 뗐다.


“팀장님… 좀 봐주세요.”


“하아….”


그의 깊은 한숨이 드라이아이스처럼 차갑게 흘러나왔다.
그 냉기에 나는 얼어붙었고, 이어 퍼붓는 벼락같은 말들에 내 가슴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


‘뭐라는 거야, 갑자기 영어를 씨부리고.’


“연극성 성격장애. 그 공주병, 귀엽게 봐줄 수준이 아닌 것 같네요. 방금 행동도 그렇고.
서희 씨, 얼굴이 무기라고 생각합니까? 게다가 그 무기를 내게 들이밀 정도로 나랑 친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정신질환 분류 체계인 DSM-5 기준, 연극성 성격장애가 확실하네요. 가서 상담이나 받고 오세요.”


‘지금 날 정신병자 취급하는 거 맞지? 이 새끼가….’


“아니, 이걸 좀 보시라고요.”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른 화학용품 같은 위험한 무언가가 목젖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때, 내 변명을 단칼에 자르듯 들어온 듀퐁!

듀퐁 라이터처럼 럭셔리하면서도 차가운 얼굴로, 묵직하고 시퍼런 불씨를 내뱉는 전 팀장.


“아, 청첩장입니까? 그렇다면 넘어가 드릴게요. 관례적 경조사에 따른 근로 의무의 일시적 면제 처리. 그 정도로 해두죠.”


‘이런… 듀퐁같이 럭셔리하고 반듯한 얼굴로 이토록 심한 모멸감을 주다니. 더는 참을 수 없어.’


“아뇨. 넘어가지 마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책상에 머리가 부딪힐 정도로 깊이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회사를 나섰다.

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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