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천라지망(天羅地網) : 그물을 찢는 사투의 박동
“아 어떡하지? 읔!”
머리를 쥐어짜려 왼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뼛속까지 시린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힘줄을 잡아챘다.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봤다.
“악!.”
마디를 굽혀 힘을 줄수록, 피부 밑 쇠사슬들이 엉키고 긁히며 카랑, 카랑. 소름 끼치는 기괴한 울음을 귓가에 퍼뜨렸고, 움직임은 끔찍하게 뻣뻣했다.
“이래서 당분간 왼손은 못 쓰겠는데... 익숙해질 수 있을까? 아니, 익숙해지면 안 되지!
이 악몽을 당장 끝내야 해.”
‘부친상이 적힌 칸은 딱 한 칸이다. 8월 1일. 만약 내일만 무사히 넘긴다면?
불길한 이 종이부터 당장 태우는 거야.
그러면 이 망상 같은 기록도, 손목의 사슬도 재가되어 사라지지 않을까.’
“일단 출근하자. 늦었어.”
'성실함이 유일한 무기였던 내가 입사 이래 첫 지각이라니.
그나저나 이 회사는 직원이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는데 전화 한 통 없나?
역시 난 투명 인간인가.
아니면 전 팀장이 말한 대로 내 역할은 정치적 균형을 위한 반대파의 꼭두각시로 오리배나 젓는 것일까?
아니, 이 망상병 환자야! 네가 반대파 노릇 할 깜냥이나 되냐?'
스스로 머리통을 두드리며 도착한 사무실 복도에는 원어민 수준의 유창한 영어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 팀장이다. 누군가와 영어로 통화 중이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머리 아파요?.”
“네? 아 아뇨..”
눈 만 끔뻑이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머리통을 두드리던 내 주먹에 닿아있다.
“아.. 아닙니다.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아니면 됐고.”
마치 오타투성이인 원고를 보듯 건조하고 차가운 시선이 잠시 나를 훑어 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내 옆을 스쳐 사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뭐지 방금의 급격한 온도 차이는?’
사무실에서의 하루는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온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정신을 놓았고, 손목의 그 기괴한 사슬을 가리느라 온갖 실수를 연발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차를 쓰고 아빠 옆에 붙어 있어야 했다.
퇴근 무렵,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전 팀장 앞에 섰다.
“내일 연차 좀 쓸게요.”
모니터에 처박혀 있던 전 팀장의 고개가 뜨끔한 듯 올라왔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잡아먹을 듯 나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아니 저 연차 한 번도 안 썼는데..."
공포스러운 침묵이 흐르는 사이, 주변의 타자 소리가 썰물처럼 잦아들었다. 칸막이 너머로 수십 개의 귀가 쫑긋 솟구치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하필 그때,
턱!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내 이마를 통째로 덮었다.
“그러니까요! 열 있어요? 안 되겠다, 병원 갑시다.”
항의할 틈도 없었다. 그는 전 직원이 숨죽여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내 손목을 낚아챘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여직원들의 눈빛은 이미 화살을 넘어 작두날 같았다.
‘감히 네가?’ ‘저 여우 같은 게 결국?’ 비릿한 속삭임이 환청처럼 들리는 기분이었다.
“팀장님, 저기...일단 이거 놓고..”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의 소매를 붙잡으려 왼손을 뻗었다 멈칫했다.
피부 밑의 금빛 사슬이 뱀처럼 꿈틀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이 차가운 금속의 울음이 사무실에 울려 퍼질까 봐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매복된 전장을 가로지르는 적진의 선봉장처럼,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진격했지만,
나는 사방에서 날아와 박히는 그들의 냉소와 비아냥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렇게 전 직원들의 경악 어린 시선을 가르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나아가는 그의 뒤에 나는 마치 포획된 전리품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나갔다.
“아니, 사람들 다 보는데 이렇게 데리고 나오시면 제가 뭐가 돼요!”
조수석에 앉자마자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전 팀장 역시 참았던 말이 많았나 보다.
“서희 씨 오늘 처음으로 지각했어요. 늘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던 사람이, 그것도 한 시간이나! 겨우 왔나 싶더니 종일 커피 쏟고, 서류 흘리고, 말은 못 알아듣고, 심지어 넘어지기까지!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그냥 보낸 게 찝찝했는데, 직장 상사로서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아씨, 넘어진 것도 봤어? 쪽팔려…….’
민망함이 밀려왔지만, 나를 그렇게 세밀하게 지켜보고 있었다니....설마...
직원감시용 CCTV? 주제파악이 끝난 나는 더이상 오해하지 않고 이 괴짜 냉혈한을 이해하기로 했다.
“이렇게 까지 하시면 다른 사람이 오해할 수도 있고..”
그제야 창백했던 그의 안색에 붉은 기가 올라왔다.
“무슨 오해? 내 회사에서 쓰러지면 산재 처리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데리고 나온 거뿐이에요.”
“어라! 지금 내 회사라고 하셨죠? 역시 팀장님 이 회사 대표라는 게 사실인가 봐요?.”
“큼.. 흠흠.. 아픈 건 맞죠? 그래서 내일도 못 나온다는 거고. 어디가 아파요? 머리가 아픈 거죠? 아침부터 그렇게 머리통을 두드려 대더니... CT 찍으러 가야 하나?.”
‘쇠사슬이 안 보이냐고 물어볼까? 아니, 아니지. 혹시라도 나 만 보이는 거라면, 이 냉철한 미래지향적 AI 같은 남자는 곧장 정신병원으로 차를 몰게 뻔해.’
“실은 아버지가 좀 편찮으셔서요. 오늘내일은 꼭 제가 옆에 있어 드려야 해요.”
그가 시트에 머리를 툭 기대며 긴 숨을 내뱉었다.
“아... 서희 씨가 아니라 아버지? 많이 위중하십니까? 데려다 줄게요. 병원이 어디예요?”
‘아 오늘따라 왜 이러지? 집으로 가달라고 하면 거짓말이라 오해할 테고, 사실대로 말할까? 이 사람이라면 믿어줄까?’
그가 시동을 걸었고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결국 결심을 굳히고 가방에서 그 문제의 시반을 꺼내 그의 눈앞에 펼쳤다.
“저기요! 혹시…… 도(道)를 아십니까?”
아, 미쳤나 봐 김서희!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최악의 대사에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도술과 시반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물으려던 게 왜 하필 그 ‘길거리 멘트’로 나갔을까.
어색한 침묵을 서둘러 깨뜨리려 다시 말을 고치며 아빠의 장례가 새겨진 그 불길한 시반을 그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아! 죄송해요, 말이 헛나왔어요! 이거요, 이거 보시라고요!”
“내가 유일하게 약한 게 한잔데, 그래도 이건 알겠네요. 부친상? 8월 1일? 뭡니까, 이게?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거예요? 연차 쓸 핑계 치고는 너무 서희 씨답지 않은데요.”
‘나다운 게 뭔데!’ 그깟 사소한 궁금 증 보다 이 사슬이 그에게 보이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나는 일부러 왼손바닥을 들어, 보란 듯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아니요, 아버지가 지병이 있으셔서 제가 좀 예민한 건 맞지만, 지금은 멀쩡하시거든요. 그런데 이 종이에 이렇게 적혀 있잖아요.”
그는 내 손목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금빛 사슬이 요동치고 있는데 그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설명할 길이 없어진 나는 결국 자폭하는 심정으로 핸들을 꺾듯 대화를 틀어버렸다.
“사실, 거짓말이에요. 아버지 편찮으신 거.”
“뭐라고요?”
“저, 내일 선 봐요! 평일에 선 보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시겠지만, 제가 좀 급하거든요.
시집 못 가서 환장했나 봐요. 그쪽 시간이 내일밖에 안 된다는데 어떡해요.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그러니까 집으로 좀 데려다주세요.”
‘난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 흑흑.’
전 팀장의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비웃음이라기보단, 예상치 못한 단어에 허를 찔린 듯한 불쾌함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핸들을 쥔 그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는 것을 보며, 그가 지금 이 상황을 얼마나 불쾌해하고 있다는 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가 피곤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뻣뻣한 목을 좌우로 비틀어댔다.
“선...? 서희 씨는 오리배를 젓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오리 아니에요?.”
“뭐라구욧?”
“꽥꽥! 못 알아듣겠다고요, 당최! 시간이 안 되면 다음 주 주말에 보면 되지. 뭐가 그렇게 급해서 평일 낮에 일까지 빼고 달려가냐는 말입니다.”
전 팀장의 목소리에 난데없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정곡을 찔린 나는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 단어나 가져다 붙이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맞아요! 그 사람이 그렇게 인물이 좋데요.
키도 크고 대기업 다니고, 목소리도 완전 꿀보이스라나 뭐라나. 암튼 하나도 빠지는 게 없대요!
다음 주면 다른 여자랑 선보고 있을지 누가 알아요? 제가 먼저 채가야죠!”
“서희씬 좀 다른 여자인 줄 알았더니... 쯧!.”
전 팀장의 짧은 혀 차는 소리가 냉동고 같은 차 안을 긁고, 이어 그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거칠게 차를 몰았다. 조수석까지 전해지는 그 서늘한 기운에 나는 슬그머니 안전벨트를 고쳐 잡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빠에게 달려갔다. 12시가 지나 8월 1일이 되었다.
아빠의 숨소리가 잠잠해질 때마다 몸이 떨렸다.
평온한 아침이 밝았고, 나는 아빠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시반의 예고를 비웃었다.
그러나 아직 그 망할 8월 1일은 아직 한참 남았다!
“너 오늘도 늬 집에서 안 자는 거야?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누가 쫓아다녀?.”
“누가 쫓아다녔으면 좋겠네 그런 거 아니래도. 걱정 마 12시 땡 되면 있으래도 갈 거야!.”
유난히도 더디게 가는 시계, 하늘이 붉게 물드는 유시(酉時, 오후 5시~7시)가 찾아왔다.
아빠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그때 아빠의 핸드폰이 울렸다. 오빠였다.
-엄마 잡아먹은 귀신-
어렸을 때 오빠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은 멸칭.
“나 저녁 준비 할게요.”
부자간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아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곧 세차게 틀어놓은 물줄기 사이로 아빠의 날카로운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렸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인간이냐?”
달려가 보니 아빠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함에 아빠는 전화기를 힘없이 떨구더니,
이내 가슴을 쥐어짜며 고통스럽게 쓰러졌다.
“아빠! 아빠!”
나는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다. 신호음이 가는 몇 초가 영겁처럼 길었다.
-보호자분, 심폐소생술 하실 줄 아세요?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상담원의 다급한 물음이 스피커폰을 타고 터져 나왔다.
“네! 할 줄 알아요!”
다행이었다. 아빠가 쓰러졌던 그날 이후,
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보건소며 소방서 교육장을 전전하며 심폐소생술을 완벽하게 마스터해 두었다.
내 손은 이미 머리보다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바닥에 평평하게 눕혔어요! 시작할게요!”
아빠의 가슴 정중앙, 검돌기 위로 양손을 깍지 껴 얹었다. 팔꿈치를 곧게 펴고 체중을 실어 수직으로 내리눌렀다.
“하나! 둘! 셋! 넷!”
상담원의 구령이 들리기도 전에 내 몸은 이미 정확한 리듬을 찾아가고 있었다.
5cm 깊이로 가슴을 누를 때마다 아빠의 굳어가는 흉골이 손바닥 끝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땀인지 눈물인지, 얼굴을 뒤덮고 시야도 흐려졌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아빠의 멈춘 심장 대신, 내 온몸의 근육이 처절한 펌프질을 시작했다.
‘제발, 아빠! 제발 한 번만 뛰어줘……!’
내 손목의 금빛 사슬도 이 비명 같은 박동에 맞춰 요동치며, 내 혈관 속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 넣고 있었다.
2026년 8월 1일 부친상(父親喪)-김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