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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Nov 26. 2024

8 내가 누구게?

진짜 괴물은 누구?

여전히 삼총사의 가라오케.

은교와 은정이 대화를 나누고 함께 들어오자, 수련이 짓궂게 묻는다.


“뭐야 둘이 나란히 똥 때리다 온 거야? 왜 이렇게 늦어?.”


은정은 그런 수련을 찰싹 손끝으로 치고 좁은 테이블 사이로 들어가 앉으며 새침하게 말한다.


“얘는 쌍스럽게! 나 엉덩이 낯가리는 거 몰라?.”


끊임없이 술을 찾는 수련의 모습을 보고 원교가 급기야 수련의 잔을 음료수 잔으로 바꿔 놓기 시작했다.


그래도 수련은 취했는지 계속 잔을 비워나갔다.


은교는 수련을 잘 안다. 평소 답지 않게 남자에게 감겨있는 수련이 다시 손을 뻗어 술잔을 잡으려 하자 그 손을 덥석 움켜쥐고 낯설고 묵직하게 묻는다.


“김수련 너야?.”


수련이 고개는 가라오케 화면에 고정한 채 은교가 쥐고 있던 손을 빼서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주무른다.


그리고 얼굴을 돌려 다정하게 바라보고 작은 잔 두 잔에 위스키를 채우고 조용히 얘기한다.


“미안하다. 네가 또 그 애를 떠올리게 해서. 아까부터 잔 바꿔주는 것도 알고 있었어. 나 그 정도 조절은 이제 할 줄 알아.”


은교가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쉬는 걸 보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수련이 소곤댄다.


 “나도 결혼 좀 하자. 이 사람 나한테 반했어. 그리고 준 재벌 정도는 되는 거 같아.”


은교의 얼굴에 갑자기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 문디가시나 콱 지기까? 그래 니 는 너무 고리타분해. 섹스고 사랑이고 순서가 어딨어? 하다 보면 정도 들고 사랑도 생기고 하는기지.”


은교의 구수한 사투리를 듣고 키득거리다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수련이 꿰뚫어보듯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너 근데 ‘그거’ 물어볼 때만 표준어 쓰네? ‘그때’도 그렇고…. 선택적 방언 증후군이야 뭐야? 하나만 해 하나만.”


수련은 말을 마치고 바로 몸을 돌렸지만, 은교는 뜨끔한 표정으로 은정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은정은 옆에 남자와 깊은 담소 중이라 그들을 못 보았다.


가라오케는 상당히 컸다. 쓸데없이 컸다.

누군가에게는 긴요하게 쓸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은정은 어느새 자신의 파트너가 된 남자와 거의 한 몸이 되어 구석에서 다른 이들은 신경도 안 쓰고 서로 속닥이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침 수련과 은교가 또 나란히 화장실을 갔다.

은교가 가라오케의 거울을 보며 짜증 섞인 소리를 내뱉는다.


“가스나 내가 니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팔자주름이 벌써 생기따. 아 나 화장실 거울 만 보면 안비던 주름도 이리 잘비나 짜증나구로. 시술 받아야 할때가 됐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온 수련이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원래 그래 그게, 사악하고 어두운 것들은 반짝이고 빛나는 것들 앞에서 여지없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있어.”


은교는 화장을 고치다 말고 잠시 멍해져 있다, 수련을 째려보며 쏘아붙인다.


“거 뭔말? 지금 내가 사악 하다는기가?.”


“거 뭔말? 주름은 노화의 상징이잖아? 노화는 곧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이고. 결국,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지. 그 두려움의 본질을 어둠 속에 감추거나, 화장이나 성형처럼 다른 모습으로 바꾸려는 그 이원론적 접근이야말로 진정으로 사악하다고 보는 거지.”


은교가 거울에 비친 수련을 대놓고 째려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사용할 수 있는 발전된 기술을 와 썪히는데? 돈 있고, 기술 있고, 늙지 않을 수 있는데 와? 사악할 거까지 있나?.”


그러나 수련은 준비된 대답이라도 있었다는 듯 여유로웠다.


“사악하지. 본인한테는 저주 같은거 아니겠어? 어차피 피해 갈 수 없는 건데 어떤 식으로든 다 자기 자신한테 돌아오게 돼있잖아. 사필귀정.인과응보.권선징악.종두득두..”


수련은 한 글자, 한 글자,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내리꽂듯 말했다.


“야. 다 알겠는데 마지막건 뭔데?.”

 

“종두득두? 콩심은데 콩난다고. 요 콩 만한게 어디 옥수수 한테 덤빌라고!.”


수련이 은교의 이마를 콩! 하고 손가락으로 팅겼다.


“이 가시나가 오늘 작정을 했나 기어이 병풍 뒤에서 향냄새 한번 맡아볼끼야?.”


토닥거리며 귀여운 냥냥 펀치를 날리는 은교.


 “어쨌든 어두운 것들은 빛을 피해 다니게 돼 있어. 스스로에게 가혹한 사악함이지.”


“이 가스나 오늘 왜 안 어울리게 잘난 척이지?

영어로 말하던지 짧게 말해줄래?.”


“한마디로 네 주름은 죽음으로 향하는 자연의 순린데. 네가 그걸 끔찍히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순간! 그건 숨고,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주름이라고 인정하지 않게 될 거라고. 주름을 막을 수도 없고, 노화를 막을 수도 없고, 죽음은 더더욱 막을 수도 없는데 말이야. 발악할수록 그것들은 더 끔찍하게 뒤틀릴 거야.”


수련의 눈동자가 길을 잃었다. 그러나 은교에게 전하려는 말에는 절실함이 담겨있었다.


멍하니 수련이 하는 말을 이해 하지 못하고 있는 은교를 내려다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네 주름을 사랑하고. 인정하라고. 주름은 과거야 좋든 싫든 너를 기억하는 너의 지나온 길이야. 받.아.들.여.”


수련이 은정의 입 모양을 흉내 내며 입술을 뽕 터 뜨렸다.


“니 뭐 주름 강연회 갔다 왔나? 근데 내용이 뭐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응 너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은교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얘기한다.


“알았다. 내 생긴 대로 살게. 그렇게 노력해 볼께.”


“흐흐 내가 널 이래서 사랑한다...시술,수술?

죽음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노화를 피해 가려는 일종의 편법. 아니지 50살짜리 여자가 20살처럼 보이는 게 나쁜 거야? 20살로 속이고 20살짜리 남자의 마음을 갖는 게 나쁜 거지.”


수련의 장난처럼 시작한 이야기의 마무리가 어느새 은교의 코앞에 다다랐을땐 더없이 진지한 어조로 마무리 되었다.


은교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가스나 또 뭔소리고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지는 말자고 내 친구 은교. 난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해. 예뻐. 미친 듯이 좋아. 너의 팔자 주름까지 다 사랑해.”


은교가 그제야 피식하고 웃었다.


“가스나 미친거 맞네! 빨리 드가자, 언니 벌써 가뿔수 도 있다.”


그랬다. 가라오케엔 이미 은정과 그의 파트너 자리는 비어있었다.


그들이 화장실을 간 사이 이 둘은 이미 가라오케를 빠져나와 은정에 차에 올라탔다. 이들은 사실 수상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일단 나도 친구들한테는 아직 아무 말 안 했어요 누나.”


엉덩이를 들썩일 만큼 은정이 발작했다.


“야 다음에 만날 때 누나 소리 또 튀어나오면 뒤진다. 어설프게 굴지 말라고. 너희는 재일교포 2세 재벌 집 아들들이고 나랑 동갑이야!

쟤 눈치 장난 아니야. 귀신이라고 생각하면 돼. 걸리면 너 죽고 너희 가족도 다 죽여 버릴 거야.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다. 쫄리면 당장 발 빼.”


은정이 무서운 눈으로 이를 갈며 협박한다.


“아 누나 무섭게 왜 그래요. 별것도 아닌 거로..”


“또 누나?.”


성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꺼내려고 했다. 은정이 그 담배를 뺏어 한 손으로 꺾어 반대편 차창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더니, 성훈의 넓은 가슴에 기대었다. 그 변화는 당혹스러울 만큼 빠르고 수상했다.


“그래 별것도 아니지 너한테 나쁠 게 뭐 있어?? 약 빨고 돈 벌고 떡 치고.. 그치?.”


기댄 몸에서 얼굴만 들어 소름 끼치는 웃음으로 그를 바라본다. 성훈이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것인지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낀다.


“하..하..그중에 뭐 건너뛰어도 되는 것도 있고..요.”


“아냐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근데 제대로 하라고. ‘얘’처럼 쫄아서 네가 제구실 못 하면 그냥 넌 ‘얘’ 되는 거야. 알.겠.어?.”


그녀가 복숭아 같은 입술을 다시 뽕! 터뜨리며 길고 가느다란 손으로 성훈이의 쫄아있는 소중이를 움켜쥐었다.



잠시 후 술자리가 끝나가고 남자들은 아쉬워했지만, 수련과 원교는 다음을 약속하며 밤거리로 나섰다. 팔짱을 끼고 밤공기를 마시며 기분 좋게 걷고 있다.


수련이 먼저 말했다.


“은교야 소주 마시자.”


“니 술 괘안나?. 하긴 아까 봤다. 마시는 척만 하데. 술 그마이 좋아하는 가시나가 니도 참 안됐데이..”


“그러니까. 너랑은 괜찮잖아. 네 앞에서는 미친년 돼도 되잖아. 너니까! 좀 마시자. 응?.”


화통하게 은교가 말한다.


“그래 마 무뿌라! 쳐 무라! 맘껏 마시라! 뭐가 튀나오든 내가 돌려 차기로 다 날려주지 뭐. 니 알제? 내 발차기.”


은교가 힐을 신고도 정교한 발차기를 날렵하게 선보인다.


“하하하하 난 그래서 네가 너무 좋아. 편하게 집에서 먹을까?.”


“그래 느그집 가자.”


집에 가는 동안 수련은 발차기를 선보인 은교를 잠시 생각했다.


‘알지…. 나를 향해 거침없이 무자비하게 그 발을 차댔지 짓밟고 욕했지. 괴물이라고.’


미국에 친척 집이 있다던 은교는 방학 때든 언제든 미국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러다 어느날 수련에게도 여름방학 시기였고 원교가 때마침 비행기 티켓을 보내줬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게 신기했고 즐거웠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토요일밤, 미국의 클럽 문화를 알려주겠다던 원교가 할리우드의 한 골목 클럽으로 수련을 데리고 갔다.

수련은 예상외의 그림에 큰 실망을 했다.

음악 빼고 다 이상했다.


어두컴컴한 조명 흐느적거리는 사람들 클럽 안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있던 남자들이 수련을 보고 빼꼼히 눈을 빼는데, 그 눈은 하나같이 괴이했다.


밤톨만 하게 확장된 홍채들.. 그러나 초점을 잃은 듯 부들거린다. 수련을 두렵게 만든 건 그들 중 몇몇이 다가와 손을 뻗어 스킨쉽을 하는것이었다.


질겁을 하고 나가자고 했다.


“가시나야 여기 다 약쟁이들이야. 그래서 그래 우리는 그냥 술마시고 우리끼리 즐기다 가믄 되는기야. 약쟁이들 한테 쫄거없다. 맥아리가 없어 좀비야 좀비 웃기지 않나?”


그들을 보고 키득 거리는 은교를 보고 수련은 조금 안심했다.


“근데 내가 왜 데려와 왔는지 아나?.”


“왜?. 물도 거지 같은데.”


“가끔 여기 헐리웃 스타들도 온데이. 거 대단하다는 헐리웃 스타들도 약빨면 다 저렇게 뒤집어져 있는기야 그란데도 와 소문이 안나는지 아나?.”


“왜? 파파라치? 그런 거 없어?.”


은교가 비장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내가 누구게?.”


“뭐래? 부산 촌년 띨띨이 은교신 왜?.”


“흠! 지금은 니도 내도 멀쩡하니까 나를 알아봤지! 근데 약빨고 디비져있으면 그것이 누구일지라도 잘 몰라. 그냥 다 똑같은 약쟁이야.

저기 저~ 눈까리 훼까닥 뒤뷔져서 있는거 저거 미드 에 나오는 주인공 중 한 명이야. 그라고 서로서로 약쳐묵고 눈까리뒤비져 있는데 못알봐. 즈그 엄마아빠가 와도 못찾을끼야. 궁금하면 니도 쳐묵고 디비져 보든지 나는 니 못찾아.”


수련이 피식 웃었다.


“말도 안돼. 하긴.. 사람들이 하나같이 베베꼬여가지고 너무 어둡고 땀에 쩔어 있고 얼굴도 왜 저렇게 비틀고 있는거야?. 다 똑같이 생긴거 같애 정말.”


그들을 안주 삼아 술을 홀짝이기 시작하다 어느새 흥이 난 이들은 스피커 앞에서 폴짝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춤추다가 원교가 건네준 술을 마시다가 또 춤추다가.. 그러다가 수련이 어느 순간 몸에 변화를 감지했다.


수련이 비틀댄다.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쓴다. 은교의 목소리가 웅웅 거린다.


“야! 너 이거 뭐야? 들고 있는거 뭐야? 이거 누가 줬어? 언제부터 이거 마시고 있었냐고?.”


점점 은교의 목소리가 음악 소리와 철저히 분리되고 뿅뿅대는 소리가 각자 흩어져 고막에 달라붙고 있다. 확실히 이상했다.


‘아.. 안돼.. 내가 정신을 놓으면 안돼! 절대..안된다고! 뭐가 나올지 몰라! 안돼!.’


수련이 아무리 눈을 부릅뜨려 해봐도 클럽에 들어왔을 때 마주쳤던 사람들처럼 부르르 눈이 떨려 왔다. 그리고 곧 정신을 잃었다.



그다음 기억은 사실 은교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수련은 기억하고 있었다.


피떡이 된 백인 남자가 컥컥거리며 수련의 한 손에 목이 조여 가고 있었다.


그 순간, 수련의 마음에는 오차 없이 단 하나, 그 남자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과 차가운 죽음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련의 마음속에서 그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Countdown to death starts. Three.. two..”


정말로 남자의 입에서 거품이 흘러나오고 얼굴이 보라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곧 죽을 것 같았다. 하나만 더 세면.


그때 은교가 달려와 수련에게 하이킥을 날려 남자를 겨우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은교는 수련을 향해 미친듯이 발길질 하며 분노에 찬 욕을 해댔다. 영어로.


“You're a fucking freak!!

you fucking monster !!”


‘아파! 나야! 수련이야. 은교야 나 괴물아니야!나수련이야!’


어쩐 일인지 은교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수련을 봐 주지 않았다. 영어로 계속 욕을 하며 짓밟았다.


후에 수련은 그저 하이킥만 기억난다고 했다.


술래잡기를 시작해서 잡힌 건 자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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