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스믈넷에 만났다. 나는 일산 라페스타에서 가장 큰 BAR 에서 매니저를 하고 있었고 사진은 그때의 모습이다. 그 근처 에는 사법연수원 이 있었다. 어느 날 사장님이 가게문을 닫고 그 사법연수생들의 파티 비슷한 걸 하기로 했으니 매니저인 나와 직원 하나만 출근하라고 했다.
그 남자는 나와 동갑이었나? 어쨌든 나와 같은 스타크래프트를 즐겨했고 운동도 좋아했지만 수능 만점을 받고 연수생 중 2등을 했다는 미친 천재였다.
말수가 많지않았지만 강력하게 나를 원한다는 걸 표현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바보가 아니다. 곧 군대에 가야 하는 이 남자랑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도 나는 늘 쓸데없이 솔직하다.
"너랑 내가 연애를 왜 하니? 그러다 네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 잡을 수도 없는데. 시간낭비 일 뿐이야."
그 남자는 깊이 고민하는 듯했고 이틀 후에 내 앞에혼인신고서를 내밀었다.
나는 사소한 어떤 부분에서도 남자에게 강력한 매력을 느끼곤 한다.
이번엔 그 남자의 대담한 추진력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종이 한 장으로 내가 이 대단한 집안의 며느리가 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두 분 다 교수 셨고 누나는 하버드생이라고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간신히 중학교만 졸업하시고 생업에 뛰어드셨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가난이라는 두 글자를 평생 달고 사셨다.
내가 물었다.
"너희 부모님이 끝까지 인정 안 해주시면? 이깟 종이조 가리가 의미가 있어? 너도 결국 지치고 헤어지자 할게 빤한데?."
그가 말했다.
"어머님 세 번 쓰러지는 거 까진 볼 수 있어."
그 말은 너무 가벼웠고 내게 전달되지 않았다.
당연히 나의 날 선 질문이 뾰족하게 그를 들이받았다.
"그럼 네 번째는?."
그제야 그가 얼마나 바보같이 대답했는지 깨달았는지 침묵하고 돌아갔다. 그 바로 다음날 그가 다시 찾아왔다.
"결혼 허락받았어."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솔직한 내 집안 상태를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내 상황 모든 걸 알고 받아준다고?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그게 그렇게 쉬워? 뭐라고 말했길래? 우리 집안이나 나에 대해 거짓말한 거지?."
난 당연히 떠오른 질문을 했다.
그가 말한 대답은 할 말 없게 만들 정도로 완벽했다.
"아니, 거짓말한 건 하나도 없어. 네 모델일 했을 때 사진 보여줬고 너희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셔서 너와 오빠를 키워주신지 설명했어. 사실 우리 집은 나 포함해서 170이 넘는 사람이 없거든, 우리 가족은 말 그대로 전부 천재들이야. 외모적으로는 엉망이고, 이제는 유전자가 섞일 때가 됐다고 했더니 누나도 내편에서 설득했어. 부모님도 많이 고민하지 않으셨어. 사실 스펙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고 하셨어. 이제 너희 부모님 께 가자.!"
그렇게 우리 부모님 앞에 무릎 꿇고 결혼허락을 받으러 온 그 남자. 어떻게 됐을까?
이 결혼은 반댈세!
이것은 오히려 우리 부모님이었다.
아버지는 군대도 안 다녀왔고 집안차이도 많이 난다며 그를 돌려보냈지만 나 역시 그와의 결혼을 그토록 원했던 건 아니었다.
그 당시 난 어렸고 더 놀고 싶었기에..
그래서 난 좌절 같은 것보다 그가 돌아가고 왜 그토록 조건이 좋은 남잔데 반대하시냐고 물었다.
아빠는 허! 하고 헛웃음을 한번지으시더니 이렇게 되물으셨다.
"결혼? 네가 언놈의 인생을 망치려고 결혼이야? 아빠랑 그냥 평생같이 살아.."
빨래를 시작하신 엄마가 거드셨다.
"그래, 걔랑 결혼하면 우리 집이야 가문의 영광 이겠지만 그쪽에선 가문의 굴욕이 될 거다. 포기해!."
코미디 같이 들리는 이 대사들은 내 목숨을 걸고 두 분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직접 들려주신 말씀이다.
난 알고 있었다. 당장 나를 결혼시킬 돈 도 없고,
그때는사 자 사위 들이려면 열쇠 몇 개 할 때니까 지레 겁을 먹으신 걸테지.. 이해했고 지금도 이해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에 와서야 잊을만하면 그때일을 떠올리시며 엄마가 하시는 말씀
"그때 널 팔아넘겼어야 했는데.."
아빠는
"넌 평생 내 말을 하나도 안 듣더니 아빠랑 살자는 그 말만 이렇게 잘 듣냐? 사지육신 멀쩡한 놈 있으면 아무나 데려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