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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수희 Dec 05. 2024

3 그녀의 마지막 이별

5년의 연애 그 후 남은 것

사랑을 시작할 땐 아웃포커싱처럼 그 사람 외에 모든 것들은 흐려 보이기 마련이다.


그때의 나도 그랬다. 그 남자를 사랑하고 그 품에 안겨있을 때는 그 빼고 그 의 주변 모두가 흐려 보였다.

심지어 그것들은 그저 이런저런 색을 띠고 있는 묽은 수채화의 배경처럼 읽히지도 않았으며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사실 맞아떨어질 거다.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를..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가해자다. 이 거지 같은 사랑에 종말이 오기 전까진 철저한 가해자이며, 뻔뻔한 사기꾼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을 뺀 나는 머저리가 돼버렸다.

그게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유일한 확인이었다.

내가 손톱이라도 부러진다면 그 사람은 불같이 화를 냈다. 넘어져 다치기라도 한다면 아예 나를 침대 위에 눕혀놓고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걸어서 십분 거리에 본가에도 굳이 데려다주고 내가 운전하는 것을 극도로 불안해했다. 누군가 내게 상처 주는 짓을 한다면 나보다 더 복장 터져했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들을 응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명절이고 부모님 생일이고 큰돈을 써서 나 대신 생색을 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그 사람의 어깨에 매달리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 여자의 존재, 그 사람 부모님의 연락.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난 이 사람과 결혼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5년..

변한 거라면.. 나는 늘 부모님께 미안했고, 그 사람은 점점 내 부모님을 만나는 것도 꺼려했다.


이별을 통보한 것은 내쪽이었다.


그러나 버림받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초라한 노처녀가 돼버린 건 이별을 말하게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선 그의 책임이다.


어렸을 땐 5년? 깊은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고 5년을 함께하고 미래를 약속했던 사람과 헤어지니 종이인형처럼 발가벗겨져 누군가의 손에 무언가 덧입혀지길 바라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람이라도 불어라. 어디론가 날아라도 가게,

불이라도 붙어라. 활활 타오르다 후회없이 사라지게,

물이라도 적셔라 세상에 들러붙을 구실이라도 되게.


나는 지금 그저 누군가 주어가 주길 바라는 초라한 종이인형 일뿐이다.


내 마지막 사랑..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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