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 ?친구 결혼식장에서 만난 그 사람은 두 번째 모임에서도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에 코를 박고 처먹기만 하더라고.
스타일도 영 마음에 안 들었어.
정장 속에 깔깔이라니! 진정 아재느낌이 폴폴 풍겼지.
근데 그 사람은 정말 일이 많고 바쁜 거 같았어.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그 친구들이 하는 그의 얘기로 조금 그 사람에게 관심이 생긴 건 확실해.
싸움은**가 제일 잘하지 학교 다닐 때부터 유명했어. 특별한 부대(신분공개 위험 때문에) 대위 출신이잖아.
그러고 보니 떡 벌어진 어깨와 가끔 친구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한마디한마디가 여간 남자답게 느껴지는 게 아니더라고.
나는 이 나이 먹고 왜 그런 게 멋있게 느껴지는 거야?
어쨌든, 둘째 날에는 집에 태워다 줬어. 술이 많이 취해서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쉴 새 없이 나불대는 나를 귀엽게 봐줬던 건 기억해.
나는 과음 후 숙취가 있으면 이상하게 생크림 빵이 먹고 싶더라고. 다음날 카톡 프로필에 생각 없이
생크림 빠아앙 먹고 싶다!라고 썼는데 그날 저녁 그 사람한테 연락이 왔어. 집 근처인데 잠시 나오라고.
난 세상에 태어나서 그토록 많은 브랜드의 생크림빵이 모여있는걸 처음 봤어. 백화점부터 쓸어오기 시작한 각각의 생크림빵이 그 사람 양손에 가득했어.
그렇게 우리는 시작을 했어. 설렘이라는 놈을 동반한 만남을..
그러다 나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구나 싶은 일이 생겼지.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어.
어떤 미친 여자랑 시비가 붙었는데 내 머리채를 그러쥐고 몽땅 뽑을 기세로 달려들길래 바닥에 엎어뜨렸어. 그런데도 머리는 놓지 않더라고.
소중한 내 긴 생머리를 한올이라도 잃고 싶지 않아서 팔로 그 여자의 턱을 짓눌렀어. 목 아니야 턱이야! 그랬기 때문에 그 여자가 내 팔을 물어뜯을 수 있었지. 진짜 세게 물길래 팔을 살짝 놨어.
그때였어! 그 여자가 내 왼쪽 귀를 와그작와그작 씹기시작하는 거야.
나는 비명도 못 지르고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어 그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면 귀 전체가 뽑힐 거 같았거든. 친구들도 그 상황을 보고 가만있었던 건 나의 늘어진 긴 생머리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란 건 상상도 못 했던 거야. 내가 제압하고 있다고 생각했데.
친구들의 찢어지는 비명소리, 의자에 걸터앉은 내 왼쪽 몸뚱이를 뜨거운 피가 발목까지 닿아서야 난 정신을 차리고 떨어져 나간 귀를 찾아보려 했지만 귀는 역시나 이어 붙일 수 없을 만큼 귓볼만 간신히 남기고 연골까지 조각조각 난 상태였어.
잘게 썰어놓은 고깃덩이 같아 보였지.
눈물도 안 났어. 멍하니 이제는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여자를 봤어. 씩 웃으면서 그 입에서 퉤퉤 하며 내 귀 조각을 뱉는 모습을 보고 악귀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그런 생각이 스쳤지. 그리고 당연히 구급차가 오고 그런 경우는 자동으로 사건접수가 된다고 하더라.
나는 엄살이 없어. 통감이 약한 걸 수도.. 그래도 응급실에서 소독약을 퍼부울땐 눈물이 찔끔 나더라고.
그게 문제였어. 그 끔찍한 사진을 친구가 오빠에게 보낸 거야. 내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된 거 같아.
그 사람은 자기가 다친 거보다 더 아파하고 더 화가 났어. 조사를 받고 그 여자는 어디론가 토껴버렸거든. 근데 그날 단 하루 만에 오빠는 그 여자가 사는 집을 찾아냈어. 심지어 그녀의 재정상태뿐 아니라 지금 숨어있는 엄마집 소유자 가 누구인지, 두 분이 혼인관계가 아니란 것도 알아냈어. 한 마디로 텅텅인 거지.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
"어차피 합의해 줄 생각 없었어. 어떻게 서든지 이년 깜빵 보낸다. 한국에 귀 성형 수술해 주는데 두 군데밖에 없데, 한 군데는 수술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고 내일 세브란스로 가자. 거기 사무장도 소개받아놨어. 넌 아무 걱정 말고 치료만 잘 받아."
말을 들어봐. 난 걱정할게 아무것도 없잖아?
그 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사람이 일사천리로 모든 걸 해결해 줬어.
그보다 한 달 반 병원에 있는 동안 단 하루도 그 사람은 집에서 자지 않았어. 불편해도 병실 침대에서 함께 잤어. 매일매일 생크림 빵을 사 오는 것도 잊지 않았지.
지루한 병원 생활을 이토록 즐겁게 보낼 수 있었어.
내가 수술 들어갔을 때 그 사람이 그 여자에게 전화했다더라.
"너 사람이야? 수술하는 날인 거 알면서도 지금껏 사과한마디 없어? 이 여자 수술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장담하는데 네 귀 두쪽 다 뜯어줄게."